[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20] 영주 괴헌종가 ‘이화주’

  • 김봉규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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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26   |  발행일 2015-03-26 제20면   |  수정 2015-03-26
배꽃 필 무렵의 ‘쌀술’…젖뗀 아이 간식으로 먹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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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헌종가의 이화곡(이화주를 빚는 누룩·위쪽)과 이화주가 익어가고 있는 모습.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우리나라 전통 술 가운데 이화주(梨花酒)라는 아주 독특한 술이 있다. 여느 술과 달리 술 빛깔이 희고 죽과 같이 점성이 높아 그냥 떠먹기도 하고, 물에 타서 마시기도 하는 술이다.

이화주의 ‘이화’는 배꽃을 말하는데, 이화주는 배꽃을 재료로 하는 술은 아니고 배꽃이 필 무렵 빚는 술이라는 의미다.

봄이 오면 매화와 개나리꽃을 시작으로 진달래꽃, 살구꽃, 자두꽃이 잇따라 핀다. 봄이 본격화되면 과수밭에도 꽃들이 다투어 피는데 복사꽃은 분홍빛으로, 배꽃은 흰빛으로 들판을 물들인다. 이 배꽃이 한창 필 때 빚는 술이 바로 이화주다.

이화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빚은 술이다. 다른 술은 누룩을 밀로 만드는 것과 달리, 이화주는 특별히 쌀로 누룩을 만들어 사용한다. 이 누룩을 ‘이화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멥쌀가루로 구멍떡이나 설기떡, 백설기를 만들어 술을 빚는다. 알코올 도수는 낮지만 유기산이 풍부하고 감칠 맛이 뛰어나다. 고급 탁주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술은 걸쭉한 수프와 같다.

이화주는 쌀로만 빚기 때문에 서민층에서는 쉽게 빚어 먹기가 어려웠다. 사대부가에서 노인과 어린이의 간식으로 곧잘 이용되기도 했던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여성이 마시기에도 좋은 술이었다.

이화주는 많은 종가에서 빚어왔는데, 영주 괴헌종가에서는 약 300년 전부터 이화주를 빚어 손님들이 찾아오면 항상 특별한 술로 내놓았다.


◆ 괴헌종가의 손님 접대용 술 ‘이화주’

괴헌종가 종부들은 봄이 와서 배꽃이 필 무렵이면 언제나 특별한 술, 이화주를 담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괴헌종가 이화주는 찹쌀과 멥쌀로 만드는 누룩인 이화곡을 사용해 빚는다. 불린 쌀을 빻은 뒤 동그랗게 뭉쳐 항아리에 담는다. 발효시키고 말리기를 거듭한 뒤 누룩가루를 만든다.

그리고 멥쌀과 찹쌀을 섞어 빻아 떡 찌듯이 쪄 낸다. 송편 빚듯 반죽한 다음 누룩가루와 엿기름을 넣어 여러 번 치댄다. 잘 치댄 것을 한 덩어리씩 뚝뚝 떼어 항아리에 담는다. 쌀 덩어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발효, 말랑말랑하고 죽 같은 형태의 노란 덩어리로 변한다.


유기산 풍부하고 감칠맛 뛰어나
갈증·허기 달래주는 음료로 즐겨
알코올 도수 낮아 여인들도 애음


가을이면 먹을 수 있다.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한 국자씩 그릇에 덜어 물을 타서 먹는다. 여자들이 먹을 때는 설탕을 조금 넣어 단맛이 돌게 한 뒤 내놓는다.

이 이화주는 한 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몇 년을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종가를 찾는 사람에게 대접하고, 가족이나 친척들에게도 나눠준다.

괴헌종가 7대 종부 송은주씨는 “이화주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우리 가문의 술인데, 손님이 찾아오면 대접하던 술이었다. 300년쯤 전부터 빚어온 것으로, 궁궐의 궁녀들이 먹던 술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사대부 가문의 노인과 어린 아이가 주로 즐겼던 술

이화주를 빚어온 여러 가문의 사례를 보면, 이화주는 노인과 갓 젖을 뗀 어린 아이들의 간식으로 곧잘 이용되었고, 부유층이나 사대부가에서는 출가한 자녀의 사돈댁 인사음식으로 장만해가는 풍습도 있었다. 안동김씨 가문의 이화주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예부터 넉넉한 집안에서나 빚어 노부모 봉양에 사용하는 술이었다. 또 출가한 딸이 친정에 오면 딸에게 만들어 주어 사돈집에 보내는 인사 음식으로 쓰는 등 귀한 술이었다. 쌀로만 만들기 때문에 영양식으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겨 마셨으며, 더울 때와 배고플 때 갈증해소와 허기를 달래주는 청량음료로 즐겼다.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나 여인네들도 취기를 조금 느낄 정도여서 다들 애음했다. 이화주는 배꽃 필 때 빚는 술이다. 특히 한여름에 더위를 탈 때 냉수나 얼음물에 풀어서 한 잔 들이켜고 나면 갈증이 말끔하게 씻기는 까닭에 집안 어른들이 즐긴 술이었고, 젖을 뗀 어린 아이가 배고파 할 때는 젖 대신 간식으로 이화주를 떠먹였다.’

이화주가 건강주로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맥이 끊긴 데에는 누룩을 쌀로 빚는 데다 물을 넣지 않는 까닭에 술을 빚기가 힘든데 반해, 알코올 도수는 낮아 막걸리보다도 취기가 오르지 않아서 서민들의 기호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탁주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밀누룩에 가급적 적은 양의 쌀로 빚는 경제적 술로, 대부분 물을 많이 타서 양을 늘려 마셨다. 그래서 이화주처럼 누룩까지 쌀로 빚는 술은 값이 비싼 고급탁주로 분류돼 서민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비경제적인 술로 취급돼 일반화되지 못하고 맥이 끊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 옛날 조리서의 이화주 빚는 법

1450년 경의 조리서 ‘산가요록’ 기록이다.

‘2월 상순쯤 멥쌀 다섯 말을 물에 담갔다가 이튿날 곱게 빻아 깁체에 여러 번 쳐서 물을 적당량 부어 치대서 오리 알 모양으로 만들어 그대로 쑥에 싸되, 쑥 길이 그대로 맞추어 싸서 빈 섬에 담아 온돌방에 놓고 빈 섬으로 덮어 띄운다. 7일이 지나면 뒤집어 놓고 또 7일 후에 뒤집어 놓으며, 다시 7일 후에 꺼낸다. 거친 껍질을 벗기고 서너 조각으로 쪼개서 마른 상자에 담고 홑 보자기포로 덮어서 날씨가 맑은 날이면 매일같이 볕에 말린다.’(이화곡 만드는 법)

‘배꽃이 필 무렵 누룩(이화곡)을 꺼내어 가루로 빻고 깁체에 쳐서 내리고, 다시 고운 모시베로 쳐서 고운 누룩가루를 만든다. 멥쌀 10말을 가루를 내어 깁체에 쳐서 손바닥 크기의 구멍떡을 빚어서 끓는 물에 잠시 두었다가 큰 그릇에 담아 뚜껑을 덮어 밖에 두면 식는다. 떡을 아주 조금씩 떼어 술독에 담는데, 준비해 둔 누룩가루를 쌀(떡) 1말당 5되 분량으로 넣고 두세 번 짓이겨 섞어준다. 떡이 말라 있으면 떡 삶은 물을 조금씩 뿌려주면서 섞는다. 구멍떡은 손바닥 크기로 충분히 식혀서 독 안쪽 가장자리에 돌려 안치고 가운데는 비운다. 빚은 지 3~4일 후에 독을 열어보아 온기가 있으면 바로 밖에 내어 차게 식힌 후 다시 제자리에 옮겨 놓는다.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5월15일쯤 열어 사용하면 그 맛이 매우 달고 향기롭다.’(이화주 빚는 법)

‘규곤시의방’ ‘음식디미방’에는 ‘복숭아꽃 필 때 쌀을 튀겨 작말하여 누룩을 만들어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여름에 백미를 깨끗이 씻어 곱게 빻아 구멍떡을 만들어 익도록 삶아 식거든 쌀 한 말에 누룩 서되 혹은 두되씩 넣되, 누룩가루를 두서너 번 체에 쳐야 부드러워진다. 서되를 넣으면 오래 있어도 상하지 않고, 두되를 넣으면 오래 못 둔다’고 나와 있다.


◆ 괴헌 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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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헌종가를 찾은 손님들이 이화주를 맛보던 괴헌고택 사랑채.

괴헌종가 종택인 괴헌고택(영주시 이산면 두월리)은 두월산 끝자락 경사진 대지에 내성천을 앞에 두고 서남서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터는 외풍을 막아주고 낙엽 등이 모이는 삼태기형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괴헌고택은 연안김씨 영주 입향조(入鄕祖) 김세형의 8세손 김경집(1715~1794)이 1779년에 지은 집이다. 김경집은 아들 괴헌(槐軒) 김영(1789~1868)이 분가할 때 이 집을 물려주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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