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성의 북한일기 .24] 꽃제비 성일에게 장사 밑천을 대주기로 약속했는데 내게 밥먹듯 거짓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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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27   |  발행일 2015-03-27 제34면   |  수정 2015-03-27
[조문성의 북한일기 .24] 꽃제비 성일에게 장사 밑천을 대주기로 약속했는데 내게 밥먹듯 거짓말을 한다

◆1998년 6월11일 목요일 비

사흘을 벼르다 간신히 나진극장에 갔다. 평양에서 온 일급배우로 구성된 중앙예술단의 위문 공연을 구경하게 됐다. ‘피바다가극단’예술인이 주축이다. 특별 곡예, 쇠원통 굴리기는 참으로 훌륭한 묘기였다. 공 같은 쇠를 몇 개씩이나 쌓아올리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서서 하는 아슬아슬한 묘기다. ‘예술의 나라’라고 자칭하는 그들의 말이 빈 말이 아니다. 가수들의 음량도 풍부하고 아름답다. 단지 개인 숭배를 위한 노래 일색인 것이 흠이다. 외국인이라고 나에게 초대석까지 주었다. 어제 캐나다 국적 한국인 5명이 들어왔다가 오늘 떠났다. 날씨 관계로 아무 곳도 구경을 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쉽다. 내 마음에는 아직도 교만이 가득하다. 오후 2시에 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약속시간이 10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슬며시 화가 치밀려고 한다.

“그렇지, 이런 약속 하나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마음은 우월감에서 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약속 시간 10분을 어기는 것은 다반사가 아닌가. 이곳 주민을 형제같이 생각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사귀리라는 내 마음은 전부 거짓된 것이었던가. 조급했던 내 모습이 초라하다. 오! 주님, 용서하소서.

◆1998년 6월13일 토요일

저녁에 꽃제비 성일이와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졌다. 성일이는 같이 꽃제비 생활을 하던 박성심이가 장사를 해서 돈을 잘 번다고 했다. 내가 준 돈과 쌀을 전부 돈으로 바꾼 다음 그 돈으로 고기와 사탕을 사서 부두에 가 고기는 어머니가 팔고 성심이는 사탕을 팔아 돈을 잘 번단다. 듣고 보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성일이도 장사를 해보겠다고 한다. 장사 밑천을 대주기로 약속했다.

◆1998년 6월16일 화요일

김성일. 17세에 키 140㎝의 꽃제비. 이 친구가 나를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고 있다. 멍청한 나는 김성일이가 어떤 아이인 줄도 모르고 그가 말하는 대로 믿고 그를 도와줬다. 그런데 오늘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참으로 기가 막힌다.

얼마전 아버지 제삿날이라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꽃제비가 선친 제사를 걱정하는 것이 기특해 제삿상을 보라고 몇백원을 주었고, 같이 온 이모라는 여자에게도 몇백원을 주어 보냈다. 또 어제는 사탕장사를 해보겠다고 해 돈을 주었다. 장사를 한다니 어떻게 하는지 좀 두고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 류성균에게 아버지 제사 운운하면서 술 살 돈을 요구하다가 나에게 들켰다. 아버지 제삿날 이야기를 하고 집에 다녀온다고 한 지가 며칠 지난 일이다. 괘씸한 노릇이다. 화도 난다. 그들의 말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불쌍한 마음으로 도와 주었는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꽃제비들을 진심으로 대했는데 결과는 이게 무엇인가.

아침에 혼자 밥을 먹을 때 꽃제비 모습이 보이면 밥을 먹는 내 자신이 죄스럽고 미안하고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래서 밥을 먹다 말고 얼른 나가서 있는 음식을 주든지, 밥을 사 먹을 돈을 주고 나서야 안심하고 마음 편히 밥을 먹은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가슴에 슬픔이 몰려온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호통을 쳐서 보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김성일의 행동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나는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던가. 오늘 같은 일들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 터. 화낼 일이 못 되지. 그래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해하고 사랑으로 대하리라.

전 연변과학기술대 건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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