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황태 전문점 ‘황태성’ 김정현 오너 셰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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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27   |  발행일 2015-03-27 제41면   |  수정 2015-03-27
비교할 수 없이 진한 육수에 부드러운 육질…황태영양탕이 ‘삼계탕 같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황태 전문점 ‘황태성’ 김정현 오너 셰프
황태는 바다에서 잡힌 명태를 겨울 설한풍에 말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무려 33번의 손질을 거쳐 탄생한다. ‘황태성’은 무려 6시간 동안 전복껍질과 황태 대가리 등을 넣고 고아낸 육수를 사용한 신개념 황태영양탕을 개발했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황태 전문점 ‘황태성’ 김정현 오너 셰프


사람의 팔자란 참 알 수 없다. 그 자리에 없어도 될 것 같은데 그 자리를 천직으로 알고 사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왜 대구에서 ‘미세스 황태’로 살아가는 걸까? IMF 외환위기 직전 대구에서 처음으로 황태 전문점을 열었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법원 바로 북측 골목에 있는 황태 전문점 황태성.

김정현 오너셰프는 언뜻 영화배우의 아이라인을 갖고 있다. 그녀가 황태를 삶의 축으로 삼기까지 여러 시절이 지나갔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황태 전문점 ‘황태성’ 김정현 오너 셰프
더덕찜처럼 보이는 황태양념구이. 육질관리와 양념관리를 잘 해뒀기 때문에 안주이면서 반찬 구실을 하고 있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황태 전문점 ‘황태성’ 김정현 오너 셰프

황태비빔밥·황태전골 등
관련 메뉴 11가지나 개발
여름에는 황태냉면 계획
탕은 끓이는 데만 40분
육수엔 전복 껍질도 넣어
매일 6시간 동안 고아 내


◆ 가수 꿈꾸던 학창시절

학창시절의 꿈은 가수였다. 부산의 모 라디오 가요제전에 출전해 2등을 차지했다. 부산 YWCA 내 ‘와이틴’이라는 고교 서클이 있었다. 그곳에서 ‘보라매’란 중창단으로 활동을 했다. 실제 부산의 모 극장가에서 노래도 불렀다. 부모의 완강한 만류로 중도하차를 하고 부산의 모 무역회사에 취직한다. 23세까지 일했다. 27세 때 부산에서 대구로 와 양장점에서 양장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요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하숙을 통해 식솔을 먹여살렸다. 그녀는 요리를 등 넘어서 배울 수 있었다. 양장 일이 힘들었다. 갑자기 내면에서 요리본능이 들끓었다. 어머니는 툭하면 부잣집에 시집갈 거란 그녀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해주었다. ‘부잣집에 시집을 가려고 하면 그 집 식모를 부릴 줄 알아야 호강을 한다. 그러려면 요리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시집살이가 편해진다. 할 줄 알아야 사람을 부린다.’

엄마가 없을 때 부침개도 직접 하숙생에게 내놓았다. 다들 모친보다 낫다고 했다.

“솔직히 남보다 자립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저는 늘 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중구 종로 영생덕 근처에서 석천이란 숯불갈비집을 오픈했다. 주방장을 데리고 했는데 경험 미숙으로 망한다. 마흔 앞까지 나만의 요리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쏟은 나날이었다.

고급 한식당도 차려봤다. 그런데 요리만 알아서 안되었다. 꽃꽂이는 물론 식기 디스플레이, 조명, 인테리어 등도 배워야만 했다. 하나를 배우면 모르는 게 두 개가 나왔다. 결국 양식조리사와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한다.

좋은 맛은 좋은 식재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맛보다는 건강을 위주로 식단을 차렸다. 아침마다 칠성시장에 갔다. 오전 6시부터 장에 가서 2시간여 돌아다니고 홍어를 사기 위해 전라도 해남까지 갔다. 밤 12시 자가용을 타고 대구를 떠난다. 현지에 도착하면 오전 6시가 된다. 돌아오면 다시 밤 12시가 된다. 몇몇 홍어 마니아는 내가 만진 홍어가 전라도 홍어보다 낫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배와 식초에 버무려 김가루, 마늘, 쪽파 등에 국수처럼 가는 해삼을 넣은 해삼초무침은 나의 주메뉴였다. 육회, 동치미, 갈치찌개 등도 소문이 났다.

◆ 대구 첫 황태 전문점 오픈

1996년에 당시 대동은행 자리 근처에 외설악 황태식당을 연다. 대구의 첫 황태 전문점이었다.

우연히 인천의 한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황태국을 맛보고 반한다. ‘대구에서 이걸 하면 무조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주방장한테 3만원을 주고 육수 한 병을 얻어 갖고 내려왔다. 육수를 분석했다. 그러면서 혼자 오픈 준비를 한다. 황태 200마리 한 상자를 갖고 온갖 실험을 다 해본다.

황태 관련 메뉴를 11가지 개발한다.

황태해장국, 황태양념구이, 황태전골, 황태비빔밥, 황태보푸라기, 황태찹쌀수제비, 황태콩나물, 황태감자찜, 황태초무침 등이다.

한번은 어머니 발명협의회 관계자가 요리연구가 하선정씨와 함께 내 음식을 먹었다. 하씨도 황태비빔밥에 반했고 자기 모임에 가입하라고 권유해 가입을 했다. 사람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IMF 외환위기 때 대동은행이 날아가면서 그 일대 상권이 초토화된다. 단골도 거의 다 끓겨 버린다. 첫날에 해장국 18그릇을 팔았지만 3개월 뒤 100그릇이 넘었다. 탄탄대로일 것 같았는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출이자는 저승사자처럼 방문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백기를 들고 말았다. 황태전문점 대구1호는 그렇게 허무하게 붕괴되고 만다.

세상이 온통 검은빛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뿌리 깊은 신앙심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다시 황태 이야기를 적어나갔다.

대구은행 본점 근처에서 빚을 내 다시 외설악 황태 재건에 들어간다. 당시 주 단골은 법조인. 2년을 하고 접었다. 실력은 모두 갖추었는데 찬모가 나의 빛이 되어주지 못했다. 혹독한 교훈이었다.

“식당의 성공 요소는 교과서에 나오는 것으론 다 알 수 없다. 부딪혀 여러 상처를 입어야 새살이 난다. 그 새살이 자기 것이다. 누구도 사업 준비단계에는 그걸 알 수 없다.”

다시 종잣돈을 모은다. 잃어버린 ‘황태’를 재탈환하기 위해 대대적인 준비를 한다. 3차 황태 대장정에 나선다.

작년 7월 현재 자리에 ‘황태성’을 차렸다. 질긴 황태와의 인연이었다.

◆ 삼계탕 같은 황태영양탕

입소문 난 황태영양탕(2만원)을 시켜봤다.

끓이는 데만 40분이 넘는다. 기자가 평소 생각했던 황태국과 비교할 수 없이 진한 육수의 힘이 느껴졌다. 황태 육질이 스펀지처럼 부슬부슬했다. 좋지 않은 황태는 바짝 마른 대구포처럼 딱딱하다.

육수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정성스럽다. 황태 등뼈와 황태 대가리, 다시마, 대파, 갖은 채소류 등을 넣고 6시간 동안 매일 고아낸다. 이때 전복 껍질도 함께 넣는다. 그녀는 황태의 기운이 좋다는 걸 직접 단골에게 보여주기 위해 10여년째 황태 육수를 아침 공복에 마신다. 그래서 그런지 피부가 무척 맑아보였다.

“10년 새 우리 국민의 건강지수가 너무 안 좋아진 것 같아요. 당뇨에 노출된 사람이 1천만명에 육박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저는 경상도 사람이 그동안 즐겼던 얼큰하고 화끈하고 매콤한 육개장문화에 종지부를 찍어드리고 싶습니다. 퇴원한 환자가 맘 놓고 먹을 만한 보약 같은 탕과 국을 황태로 끓여보고 싶었습니다.”

삶을 걸었기 때문에 황태영양탕은 그녀에겐 일종의 ‘자서전’인 셈.

여러 식당을 경험한 덕에 그녀의 음식 차림새는 여간 정갈하고 깔끔스러울 수가 없다.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멜라민수지 접시를 거부했다. 장방향 접시에 3~4가지 제철 나물과 채소류를 내고, 대나무 채반에 볶음, 무침류, 해초류 등 5가지를 낸다. 샐러드 물김치, 서비스로 녹두전을 내놓는다. 잔반은 100% 폐기한다.

다들 대구에선 황태 전문점이 대구 체질상 잘 맞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기름투성이인 숯불갈비, 막창곱창, 삼겹살에 질린 사람이 점차 황태 요리를 통해 슬로·웰빙·힐링푸드의 가치를 재발견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다. 황태요리 리더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명태가 영하 10℃ 이하의 한랭한 고지역에서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면서 겨우내 덕장에서 서서히 제 살을 불리고 이듬해 봄바람에 마른 걸 ‘황태’라고 한다. 황태는 식탁에 오르기까지 무려 33번의 손길이 가야 한다. 전국 황태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서 직거래로 공급받는다. 12월부터 4월이 제철. 중국산은 하얗고 국내산은 노란빛이 감돈다. 3천원짜리 잡곡밥은 당뇨치료쌀인 가바쌀, 귀리 등 17가지 잡곡으로 만든다. 현재 황태해장국, 들깨탕, 영양탕, 양념구이, 황태전골, 황태감자찜을 내고 있고 여름에는 황태냉면도 낼 계획이다.

그녀의 음식철학은 뭘까?

“실력이 된다면 인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수성구 동대구로 74길 47. (053)751-336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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