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뇌가 느끼는 제5의 맛, ‘감칠맛’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5-04-13 08:49  |  수정 2015-04-13 08:49  |  발행일 2015-04-13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뇌가 느끼는 제5의 맛, ‘감칠맛’

우리가 시원한 우동국물 등을 즐기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미각(味覺)에 빠진 한 일본인 교수의 연구 덕분입니다. 일본 과학자 기쿠나에 이케다 박사는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음식 맛에 흠뻑 빠집니다. 맛을 느낀다는 것은 혀 속의 맛봉우리에 있는 맛세포가 음식속의 화학물질을 감지하고 이 정보를 신경세포에 전달해 뇌가 맛을 인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짠맛은 음식 속의 나트륨을, 신맛은 수소이온을, 단맛과 쓴맛은 각각 당분과 마그네슘·칼슘 등의 무기염이나 담즙산 등의 유기물질을 감지할 때 뇌가 느끼는 맛입니다.

이케다 박사가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 뇌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짠맛, 신맛, 단맛과 쓴맛 네 가지밖에 느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던 때입니다. 그런데 다양한 음식을 접하던 중 이케다 박사는 이 네 가지 맛 외에도 일본에서 자신이 경험한 어떤 다른 맛이 있다는 것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케다 박사는 이것이 기존에 알려진 네 가지 맛이 아닌 새로운 맛일 것이라 생각하고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하자마자 일본요리에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말린 다시마를 끓인 국물 맛에 주목합니다. 그리곤 드디어 1908년 이 국물 맛의 정체가 ‘글루타민산’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이 5번째 맛을 ‘Umami(우마미)’ 즉 ‘감칠맛’이라 명명하고 이에 대한 특허를 취득합니다. 이후 일본인 과학자들에 의해 또다른 ‘감칠맛’인 이노신산(1913년 고다마 신타로 박사)과구아닐산(1957년 구니나카 아키라 박사)도 발견됩니다.

이케다박사는 ‘감칠맛’ 특허를 기반으로 상품화를 추진하였고, 특허취득 1년 후인 1909년 드디어 세계적인 감미료회사인 ‘아지노모토’사를 세우고 세계 최초의 ‘감칠맛’ 화학합성조미료를 출시합니다. 이 조미료가 바로 ‘Monosodium Glutamate’, 즉 ‘MSG’입니다. 아지노모토사는 처음 회사를 열 때부터 감칠맛의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수출시장 개척에 노력했고, 1917년에는 드디어 미국 뉴욕에서 판매를 개시합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MSG의 부작용이 퍼지게 된 것은 미국의 중국요리 때문이라 합니다. 미국인이 중식당에서 요리를 먹고나면 뒷목이 뻣뻣해지고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문에 이런 증상은 ‘Chinese Restaurant Syndrome(중식당 증상)’라고도 불렸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원인을 조사하던 중 미국 중식당에서 짧은 시간에 좋은 맛을 내기 위해 ‘감칠맛’ 조미료를 너무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감칠맛’ 조미료가 듬뿍 뿌려진 음식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온 MSG가 뇌로 전달되어 우리 몸의 흥분성 신경전달체계를 조절하는 글루타민산 활동에 혼란을 가져와 두통과 어지럼증을 가져온다는 보고가 발표되면서 MSG는 몸을 망치는 조미료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MSG는 생물 내에 존재하는 20가지 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루탐산의 카르복실기에 나트륨을 붙여 단순히 물에 잘 녹도록 만든 것이라 MSG 부작용에 대한 연구결과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실제 많은 연구를 통해 EU 식품과학위원회는 1991년 MSG의 안전성을 추인했고, 미국도 95년 MSG의 안전성에 대한 검증을 마쳤으며, 호주-뉴질랜드는 2002년 안전성 평가를 통해 MSG가 인체무해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MSG의 부작용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감칠맛’에 대한 기초연구를 통해 최근 ‘감칠맛 수용체’가 발견된 이후 많은 식품회사는 MSG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체 조미료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 과학자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맛의 여행은 세계적인 조미료회사를 탄생시켰고, 전 세계 130여개국 사람들이 ‘감칠맛’을 쉽게 즐기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최근 조미료시장은 새로운 맛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로 ‘Kokumi(코쿠미)’, 즉 ‘깊은맛’입니다. 우리나라 음식에 흔한 맛, 주로 종갓집 간장이나 묵은지 등에서 나는 맛이죠. 우리 대구 미래 영재들 중 누군가 ‘깊은맛’의 비밀을 풀어 ‘깊은맛’ 조미료를 만든다면, 갓 결혼한 새댁도 안동 종갓집 간장의 깊은 맛을 낼 수도 있고, 신랑은 1년된 와인을 사서 1초만에 깊은 맛이 우러나는 100년산 와인으로 만들어 분위기를 잡을 수도 있겠죠.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