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이 매일 오갔을 중구 자동차부속골목 ‘전태일路’로 이름짓자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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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17   |  발행일 2015-04-17 제35면   |  수정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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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이 1963년 대구에 와서 살던 옛집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는 이곳에서 살던 때가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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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수 <사>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상임이사가 남산로 8길을 가리키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
청옥고등공민학교서 공부하며
내생애 가장 행복했다던 시절
남산로 8길 25-16에서 1년 살아
고향도 대구…중구 동산동 311


전태일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한국의 노동사는 전태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만큼 그의 이름에는 무게감이 있다.

전태일은 1970년 11월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만 22세의 나이로 불꽃 같은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가수 김광석이 대구에서 태어난 것은 알아도 전태일의 고향이 대구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전태일 동상, 전태일 다리, 전태일 문학상, 전태일 기념재단 등 전태일과 관련한 모든 콘텐츠가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는 다만 2013년 발족한 전태일 장학회가 있을 뿐이다. 이 장학회는 3년째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9일 기자는 김찬수 <사>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상임이사, 권상구 자문위원(시간과 공간 이사)과 함께 전태일이 태어난 곳과 살던 집을 찾았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 출신 아버지 전상수와 성서 출신 어머니 이소선 사이에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는 중구 동산동 311번지다. 지금의 주소로는 계산오거리 교통섬이 있는 분수대 일대다.

동산동에서 50년 이상 거주한 이홍로 홍도스튜디오 대표(77)에 따르면 “지금의 교통섬에는 메리야스 공장을 비롯해 5~6개의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70년대 초까진 교통섬이 서편 주택단지와 붙어있었는데 홍도스튜디오 앞에 2차로를 내면서 삼각 교통섬이 됐다”고 했다. 교통섬에는 분수대를 비롯해 ‘바르게 살자’ 표지석이 서 있다. 누구보다 ‘바르게 살기’를 원했던 전태일의 생가터에 ‘바르게살기’ 돌만 덩그러니 서있는 게 아이러니하다.

전태일이 두 살 되던 해 6·25전쟁이 일어나 가족은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이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간다. 가난으로 그는 남대문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다 중퇴하고 신문팔이와 구두닦이를 하며 거리를 전전했다. 전태일이 가출한 사이 그의 아버지는 다시 고향 대구로 왔다.

전태일은 만 15세가 되던 1963년 3월 대구로 와서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한다. 청옥고등공민학교는 지금의 대구 명덕초등학교 운동장 동편 명덕관에 위치했다. 명덕관은 2·28민주운동기념회관과 붙어 있다. 당시 고등공민학교는 초등학교나 공민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과정의 교육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이 다니던 야간학교다.

전태일은 일기에서 이 학교 학창시절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그는 그해 12월 자퇴했다.

전태일의 동생 태삼씨(65)는 “아버지가 동산병원에서 나온 미군 구호 의복을 뜯어다 점퍼를 만들어 팔았다. 아버지께서 엄마하고 함께 2년만 고생하면 다시 학교에 보내줄 테니 형에게 같이 점퍼를 만들어 팔자고 했으나 형이 거절했다”고 증언했다. 태삼씨는 “형이 나에게 지금 공부를 하지 못하면 공부할 기회가 없다며 나를 책임질 테니 같이 서울로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전태일은 64년 동생과 함께 상경했다.

전태일이 대구에서 1년 남짓 살던 집은 천주교대구대교구청과 가톨릭교육원(옛 효성여고 운동장 동편 담벼락) 후문 근처다. 현 주소는 중구 남산로 8길 25-16이며, 이전 주소는 중구 남산3동 2178-1 13통 1반이다. 낡은 한옥의 담장에는 누군가 ‘Peace’라고 영문을 써놓았다. 김찬수 상임이사는 2년 전 전태일기념재단 관계자와 동생 태삼씨 등과 전태일의 생거터를 확인했다. 그는 “집 앞 골목은 60년대나 지금이나 그대로”라고 했다.

태삼씨는 “방 1칸에 가족 6명이 함께 셋방살이를 했다. 여섯 명이 누우면 딱 맞았다”고 증언했다. 태삼씨는 가족이 살던 집이 판잣집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한옥이다. 마당엔 라일락이 꽃을 피워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전태일 가족이 살던 공간은 지금 텃밭으로 변했다.

전태일은 집에서 청옥고등공민학교까지 걸어다녔다. 지금은 복개됐지만 명덕초등학교 서편엔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전태일 생거지~명덕관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 500m 남짓이다. 60년대 명덕초등 서편엔 담장이 없었다. 80년대 학교운동장 서편 일부를 잘라 상가를 냈다. 전태일은 남산로 8길~명덕로35길(자동차부속골목)~남산로2길을 따라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전태일이 지나다녔던 자동차부속골목(명덕로 35길)에선 2010년부터 매년 가을 남산동 모터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길을 ‘전태일로(路)’로 지정한다면 전태일이 대구 출신이란 것도 전국에 자연스레 알려질 것이고, ‘수구 꼴통의 도시 대구’라는 모멸스러운 이미지도 퇴색시킬 수 있다.

한편 김찬수 상임이사와 권 위원은 계산오거리 교통섬에 전태일이 출생한 곳이라는 표석을 세우고 명덕초등학교 뒤편 2·28길을 ‘전태일 골목’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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