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화여고 정왕부 과학교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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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17   |  발행일 2015-04-17 제37면   |  수정 2015-04-17
컴퓨터공학 박사…그러나 그는 얼굴에 한시도 웃음 떠나지 않는 ‘학습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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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文武)가 합일될 때 ‘진인(眞人)’이 된다. 학문도 마찬가지. 여러 과학의 길이 있다. 인문·자연·사회과학이 실은 ‘동명이인’인지도 알 수 없다. 학자도 자신의 학문적 출발점이 종착점에 도달하면 어느덧 출발점의 대척점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문은 무가 되고 무는 문이 되는 식으로.

공학박사, 자기주도 학습코치, M&Q 생애진로 코치, 비전코칭 봉사단 리더, 한국 리눅스 유저 그룹 부회장, 대구포스트 편집위원 및 칼럼니스트, ‘행복한 코칭 즐거운 공부’의 저자…. 정왕부 대구 경화여고 과학교사(53)를 지칭하는 말이다.

‘고교 교사가 이렇게 다양한 영역을 원스톱으로 컨트롤해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의 학문적 열정과 청소년의 미래에 대한 열의는 대단하다. 교수도 그의 향학열에 주눅이 들 정도다. 그는 자기를 ‘코치’라고 명명했다.

스포츠계의 전문직인 코치란 말을 교육 현장으로 끌고 들어왔다. ‘마법의 코칭(에노모토 히데타케·새로운 제안 刊)’에서 ‘코칭의 3대 철학’을 배웠다. ‘모든 사람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해답은 모두 그 사람 내부에 있다’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이다. 재차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기술 질문 효과(이언 쿠퍼 지음·대교북스 刊)’에서는 질문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가르치는 코치의 길을 버렸다. 잘 들어주는 코치가 되었다. 아이 얘기를 그냥 들어주면 답은 스스로 발견한다고 주창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표정은 늘 ‘미소만면(微笑滿面)’. 교육심리학 전문가일 것 같은데 실은 공학박사. 2010년 영남대에서 컴퓨터공학 관련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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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Q 생애진로 코치
대구포스트 편집위원·칼럼니스트
비전코칭 봉사단 리더
한국 리눅스 유저그룹 부회장 활동
'행복한 코칭 즐거운 공부’의 저자

아이들 이야기 들어주고 공감하면
자연스럽게 문제해결 가능해져

어른이 학습 주도권 빼앗으면서
왜 주도적 학습 못하냐고 하니 혼란

☞ 정 교사의 학습코칭…충고보다 아이의 말문 열어 신뢰 구축→ 아이의 현실 점검→ 잠재의식 함양 방법 모색

그는 12년간 22편의 각종 논문을 발표했지만 교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는 현재 1만여 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한국 리눅스 유저 그룹의 부회장. 리눅스(LINUX)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대 후반. 리눅스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WINDOW) 같은 컴퓨터 운영체제의 하나로 소스 코드를 공개하지 않는 윈도와 달리 소스코드가 공개돼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거나 변경·배포가 가능한 운영체제다. 91년 리눅스 토발즈가 개발한 리눅스가 전 세계에 배포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리눅스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과학수업에 활용할 그림과 동영상 등 방대한 자료를 담을 서버를 직접 구성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리눅스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하고 2000년 경북대학교 전산센터에서 리눅스 과정을 이수했다. 또 리눅스를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과 2001년 ‘대경리눅스 동호회’를 만들어 커뮤니티 활동을 하게 됐다.

그냥 학문이 좋았다. 물리학에 대한 호기심이 컴퓨터공학에 이어 리눅스 정신으로 진화한 뒤 결국 인문학의 영역까지 건드린다. 사람을 위한 공학, 즉 ‘인문공학(人文工學)’의 내공을 갖게 된 것. 그는 현재 ‘교육코치’의 길을 가고 있다.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다가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뭔가요.

“컴퓨터 공학은 기계와 사람이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매일 모니터를 통해 코드를 보고 개발하고 수정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있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시기에 인문학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바로 이거야!’라는 느낌을 갖게 됐습니다. 이공계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전파하자고 나선 겁니다.”

▲현직 교사가 대학 가서 박사학위를 받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데.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주말에는 연구실에서 생활하고 방학 때는 연구실로 출근했습니다. 추운 겨울 바닥에 라면 상자를 깔고 신문지를 덮고 잠시 눈을 붙이면서까지 공부했습니다. 식당에 밥 먹으러 가는 시간이 아까워 하루에 컵라면 두 개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삶에 대해서 배웠죠. 왜 인내해야 하는지? 관계형성이 왜 중요한지? 박사학위 과정은 삶을 살아가는 한 과정이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박사학위는 인생에 눈을 뜨게 해준 고마운 증서죠.”

▲현재 한국 박사학위 문화가 아주 척박해요. 심지어 지도교수가 제자의 논문을 대리작성해 주는 식으로 흘러간다는데….

“학벌 중심적 사회로 변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학문이 재미있어 하기보다는 직장에서 승진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사업을 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한국의 학벌숭상문화의 이면을 절감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리눅스 유저그룹 세미나를 위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야 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제가 박사학위를 받기 전에는 반응이 신통찮았습니다. 그런데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의 만남에서는 첫 인사할 때 그 표정과 어감과 어투가 너무 달랐습니다. 그래서 박사학위의 위력이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논문 대리작성도 근절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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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과 인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만나야 옳은지 알려주세요.

“아인슈타인은 ‘E=mc2’란 공식을 발견했습니다. E는 ‘에너지’, m은 물질의 ‘질량’, c는 ‘빛의 속도’입니다. 에너지를 변화시키는 것은 물체의 질량입니다. 즉, 물체의 질량에 따라 에너지가 변하는 거죠. 불교의 반야심경에 관련 구절이 나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色)은 곧 에너지(空), 에너지(空)는 곧 물질(色)이다’라는 겁니다. 결국 E는 곧 공(空)이고, 물질의 질랑 m은 곧 색(色)으로 본다면 기가 막히는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50년대에 ‘레이저총’이 만화에 나왔는데 지금은 그것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발단은 공학자가 아니라 한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겁니다. 상상력과 기술력의 융합, 바로 인문학과 공학의 융합을 말하죠.”

▲국내에서 학습코치의 신지평을 열었다고 하는데….

“뭘요. 그냥 학습코치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각종 멘토링, 컨설팅 등과 코칭은 개념이 다릅니다. 전자는 전문가가 비전문가에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고 코칭은 스스로 문제해결 방안을 찾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 공교육의 위기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고 해법을 제시한 바가 있는데 뭔가 1%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해주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와서 많이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자기 주도’입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집이나 학교에서 자신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다가 갑자기 자기 주도적으로 하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너는 공부만 하면 돼’라고 하는 바람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겨버린 겁니다. 어른이 학습주도권을 빼앗아 놓고 되레 왜 주도적으로 학습을 못하느냐고 다그치면 결국 어른이 병 주고 약 주는 꼴이죠.”

▲요즘 교사는 사면초가 심정일 것 같습니다.

“선생님부터 행복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업무 탓에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조차 부족합니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찾아왔을 때 ‘얘야, 지금 선생님이 너무 바빠서 그러는데 이따가 이야기하면 안되겠니?’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아이의 맘은 어떻겠습니까.”

▲선생님은 미소가 체질화된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 학생이 무표정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그 아이가 아주 예쁜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제가 아이 옆으로 가서 ‘미소가 예쁘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아이가 저를 볼 때마다 미소를 짓는 겁니다. 웃는 횟수도 많아졌어요. 저도 신이 났습니다. 저는 아이를 만나면 우선 칭찬부터 합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먼저 미소를 짓는다는 건 결국 공감과 경청이겠죠.

“맞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해주거나 저의 가치관과 신념을 가르치고 교육시키려고 했습니다. 교사는 갑, 학생은 을의 입장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제 이야기보다 질문을 주로 합니다. 자살하고 싶다는 아이와의 대화에서도 ‘자살하면 안된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자연스럽게 자살하고 싶다는 말도 사라지더군요. 공감과 경청에 80% 이상 할애하고 나머지는 질문입니다.”

▲가르치지 않고 경청한다는 것, 힘들 텐데….

“그렇죠. 어떤 아이는 제 질문에 무려 40여 분 침묵하기도 합니다. 기다려야죠. 어떤 얘기라도 무조건 인정부터 해줍니다. 제 생각과 다르면 순간 뭔가를 지적하고 충고해주고 싶지만 참아야죠. 아이와 헤어지고 돌아올 때 저도 몸살을 앓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스트레스가 먼저 풀려야지, 상담을 통해 코치의 스트레스가 더 풀린다고 하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죠. 덕분에 제가 인격적으로 더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

▲학습코칭의 순서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일단 신뢰부터 구축해야 됩니다. 코치가 아이를 위한답시고 이런저런 조언과 충고를 하면 아이의 말문은 거의 닫혀버립니다. 코치의 말문은 닫고 아이의 말문을 여는 것, 이게 학습코칭의 첫 단추입니다. 그다음은 아이의 현실을 점검해야 됩니다. 이후 잠재의식을 함양시킬 수 있는 대안을 실행하는 방법을 모색하죠. 그런데 아직 상당수 코치는 아이보다 더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이부터 말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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