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HIV에 감염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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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01   |  발행일 2015-05-01 제35면   |  수정 2015-05-01
[기고] HIV에 감염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옛말에 ‘병은 널리 알려라’는 말이 있다. 가족이나 동료에게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림으로써 치료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위로와 격려를 통해 심리적 어려움을 빨리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암이나 당뇨, 고혈압 환자라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우선 인터넷이나 지인을 통해 질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예컨대 어느 병원이 암을 잘 고치는지, 어느 의사가 상담을 잘해주는지, 식이요법을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본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질병 때문에 겪게 되는 다양한 어려움을 나누고 이겨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보편적 상황이 매우 낯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HIV에 감염된 사람과 가족, 친구들이다.

우리 주변에서 암이나 당뇨, 고혈압 환자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HIV에 감염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일상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2013년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국민 0.8%만이 HIV에 감염된 사람을 만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과연 HIV에 감염된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없다고 해서 우리 주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HIV에 감염된 사람의 수는 1만명을 넘어섰으며 신규로 감염되는 사람 역시 증가하고 있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앞으로 더 자주 HIV에 감염된 사람과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과 차별은 그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이 두려움과 차별을 깨기 위해서는 HIV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에이즈 발생 초기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기인했다.

1981년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확산됐다. 우리나라 정부와 언론매체 역시 가세해 죽음과 공포의 대명사로 뇌리에 각인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쉽게 옮는 병’ ‘동성애자병’ ‘걸리면 죽는병’ 등이었다. 그러나 이는 의학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다.

첫째, HIV는 그 감염경로가 명확하게 밝혀져 일상생활에선 결코 감염되지 않으며, 콘돔만 잘 사용한다면 쉽게 예방할 수 있다.

둘째, 동성애자만이 HIV에 감염된다는 말 역시 오해다. 81년 미국에서 첫 HIV 감염인 사례가 보고됐을 당시 미국에서 흑인 및 여성, 성소수자의 인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당시 집권하고 있던 레이건 정부는 HIV/AIDS를 공포의 병, 동성애자의 병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인권운동을 잠재우려고 했고 에이즈는 그 수단이 됐다. 이는 오히려 이성애자 그룹에 대한 HIV 예방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97년부터는 에이즈치료제인 항레트로바이러스요법(HAART)이 도입되면서 생명유지가 가능한 만성질환이 됐다.

필자는 11년 전부터 HIV에 감염된 사람과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화장실을 사용하고, 이야기하고, 함께 일하고 있다. 이는 필자가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HIV/AIDS에 대해 본질적으로 이해하고자 했고 사고(思考)할 수 있는 의식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애가 있을 뿐이다. HIV에 감염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건 생각만큼 그리 어렵지 않다.

최근 필자는 감염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인 ‘레드 리본 사회적 협동조합 커피숍’을 열었다. 감염된 사람과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함께 생활하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백마디 말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쉬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이 일에 동참해주고, 격려해주신다. 우리에게 깨어 있는 의식과 인간애만 있다면 HIV에 감염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김지영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사무국장/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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