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양산 ‘황산 베랑길’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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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08   |  발행일 2015-05-08 제38면   |  수정 2015-05-08
유장한 낙동강가 벼랑 따라 놓은 길…‘이 길에선 모든 것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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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는 낙동강, 오른쪽에는 옛 황산잔도 위에 놓인 경부선 철도. 그 사이에 황산 베랑길이 조성되어 있다. 국토종주 자전거 길의 일부로 자전거 도로와 탐방로를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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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랑길 옆 낙동강 벼랑위에 서 있는 동래부사 정현덕의 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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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베랑길의 시작 점에 위치한 양산 물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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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잔로비’ 안내판. ‘황산 잔로비’는 용화사 경내에 있다.


한 쪽엔 물길 흐르고, 한 쪽엔 철길 달린다. 그 가운데서 가만히 소요하는 길 하나가 있다. 예민한 정신처럼 준동하면서, 호흡과 박동에 맞추어 나아가는 길. 이따금 지나치는 기차는 고요한 가운데 활기를 일으키는 섬광과 같고, 산과 물은 신중하고 신의 깊은 벗으로 함께이니, 이 길에선 누구도 외롭지 않고 오직 호젓하게 풍성하다.

물금 취수장에서 원동 취수장까지 2㎞ 남짓
서울과 부산 잇던 황산 잔도에 경부 철길 놓인 후 잊혀 가던 길
황산 베랑길로 재현길 끝에는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의 배경 토고마을

◆ 강은 황산 길은 벼랑, 황산 베랑길

황산은 삼국시대 낙동강의 이름이다. 베랑은 벼랑의 양산 방언이다. 오래되어 잊혔던 두 이름을 다시 꺼내어 깨끗하게 닦아 나란히 세웠다. 양산의 낙동강가 산 허리 벼랑을 따라 놓인 새로운 길, 황산 베랑길이다.

강 속으로 길고 푸른 다리를 내려 뻗고, 숲이 우거진 벼랑 가까이에 촘촘히 나무를 덧대어 이었다. 물금 취수장에서 원동 취수장까지 그렇게 2㎞ 남짓. 자전거도 달리고 사람도 걷는다. “허허, 나 여기 낙동강 벼랑이야. 벼랑 따라 걷고 있어.” 산적처럼 생긴 중년의 사내에게는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산책길이다.

강바람 산바람 한 번에 다 들이고 햇살마저 오롯이 담아내는 길이다. 나뭇잎 살랑이면 산바람인가 하고, 수면에 그려진 그림자 흔들리면 강바람인가 한다. 수목들은 태양과 가까운 곳에서 반짝이며 눈부시게 흩어지고, 나의 몸은 그 우듬지를 선회하며 열기에 찬 어지러움을 느낀다. 태평으로 자라난 관목이며, 수풀 속에는 낮은 포복으로 전진하는 기찻길이 놓여 있다. 기차가 지나갈 때만 잠시 고개를 쳐들었다가는 이내 숨어버리는 길, 경부선 철길이다.

◆ 메우고 깎아 만든 벼랑길, 황산잔도

1905년 경부선 철길이 놓이기 전, 그곳에는 길이 있었다. 이 벼랑에 나무를 선반처럼 내 매어 만들었던 잔도(棧道), 황산잔도가 그것이다. 황산잔도는 조선시대 서울과 부산을 잇던 영남대로가 양산을 아슬아슬 지나던 길이었다. 물금 잔도라고도 했던 황산잔도는 삼랑진의 작천 잔도, 문경의 관갑천 잔도와 함께 영남대로의 3대 잔도에 속했다.

서울~부산 간 최단거리의 간선도로였던 영남대로는 행정, 군사, 통신, 교통의 중심축이었다. 그래서 잔도는 험했으나 꼭 필요한 길이었다. 과거를 보기 위해 길 떠난 선비도, 크고 작은 짐 짊어진 상인도 모두 그 길을 걸었다. 주막에서 거하게 한 잔 걸친 이들이 그 길을 걷다 무수히 빠져 죽었노라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황산잔도는 경부선 철도를 놓으면서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여년 전까지는 학교 가는 아이들이 소소하게 이용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거의 완전에 가깝게 잊혀가고 있었다. 잔도의 기억을 벼랑에서, 철길에서, 물길에서 끄집어내어 새롭게 재현한 것이 바로 황산 베랑길이다.

◆ 베랑길에서 만나는 것들

황산 베랑길의 시작점에 양산 물문화관이 있고 그 뒤쪽 기찻길 너머에는 용화사가 자리한다. 용화사 석탑 옆에는 ‘황산 잔로비’가 서있다. 1694년 황산잔도를 정비하고 기념으로 세운 비석이다. 군수 권성구가 탄해 스님과 별장 김효의를 시켜 깊은 곳은 메우고 험한 곳은 깎아 평탄한 길을 만든 공을 기린 것이다. 동원되었던 많은 이들의 이름은 전하지 않지만 그이들의 몸 공을 어찌 떠올리지 않으랴.

물 문화관을 지나 조금 가면 강물에 뿌리내린 바위 위에 당당하게 선 비석 하나를 만난다. 조선 말기 동래부사 정현덕의 공을 기리는 불망비다. 위치로나 자태로나 하늘에서도 뿌듯해 할 만한 풍광이다. 베랑길의 중간 즈음에는 시인 묵객이 노닐었다는 경파대(鏡波臺) 바위가 자리한다. 조선시대 선비 매촌 정임교가 스스로 주인이라 자처했다는 바위다.

‘돌을 택해 대를 짓고 경파라 이름하니/ 고운대 아래에 또 한 대를 더하였노라/ 시선(詩仙)이 가고 난 뒤 나머지 땅에/ 유인(遊人)을 기대한 지 허다한 세월이었노라.’ 매촌의 시 ‘경파대’다. 고운과 시선은 모두 최치원을 뜻한다. 경파대 위쪽 오봉산 자락에는 고운 선생이 극찬한 임경대(臨鏡臺)가 있다. 매촌은 고운 선생의 대 아래에 자신의 대를 정하고 날마다 서너 명의 벗들과 더불어 시와 술을 즐겼다 한다.

황산 베랑길의 끝에는 요산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의 배경이었던 토고마을이 있다. 요산은 소설에서 ‘그 당시의 황산베리끝 하면 좁기로 이름난 벼룻길’이라고 황산잔도를 묘사했다. 이름난 벼룻길에 외줄로 늘어선 사람의 모습도 아찔한 장관이었겠으나 오늘의 이 안온한 장관도 그에 못지않을 터.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대구부산 고속도로 물금IC로 나간다. 물금읍 방향으로 가다 물금역 오른쪽 옆길로 들어가면 물금 취수장이 있다. 취수장 정문 옆길로 조금 가면 황산 베랑길이 시작되는 양산 물문화관이 있다. 베랑길은 원동취수장까지 약 2㎞. 양산 물금읍에서 삼랑진 방향 1022번 지방도로 가다보면 왼쪽에 고운 선생의 임경대가 있다. 솔숲을 통과해 잠시 산길을 가면 낙동강을 향해 열린 임경대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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