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낙동정맥 트레일 분천역∼승부역(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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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08   |  발행일 2015-05-08 제39면   |  수정 2015-05-08
한폭의 산수화 같은 기암괴석의 산들이 구름속에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비·강물·새 소리는 발소리와 어우러져 오케스트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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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천역을 출발해 포장된 마을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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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승강장에서 양원역으로 향하는 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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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역을 지나 승부역까지 비경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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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비를 피할 곳도 세평이다.


☞ 길잡이

분천역-(50분)-체르마트 갈림길-(30분)-용골쉼터-(25분)-양원역-(1시간30분)-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이정표-(30분)-승부역

대중교통인 기차를 타고 이동해 배바위산 산행을 할 수도 있고, 낙동정맥 트레일 코스를 갈 수도 있다. 또 무리가 따른다면 분천역에서 양원역까지 간 다음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고 승부역까지 갈 수도 있고, 양원역에서 하차하여 승부역까지만 걸을 수도 있다. 반대로 승부역에서 내려 분천역까지 역방향으로 걸으면 20분가량 시간을 벌 수 있다.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는 12.4㎞로 4시간30분 정도 소요되고, 양원역에서 승부역까지는 5.6㎞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체르마트 갈림길에서 배바위재를 오른 뒤 승부역까지는 5.9㎞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연한 봄이다. 부지깽이를 땅에다 꽂아도 꽃을 피운다는 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화사한 봄꽃소식에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써도 기차여행을 앞두고서는 몸도 마음도 들썩인다. 학창시절 주말이면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본 경험이나, 설악산을 가려고 밤기차를 타고 대구를 출발해 영주역까지 간 다음 두 시간가량 기다렸다가 강릉까지 가는 기차를 타본 기억이 아니더라도,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기찻길을 따라 걷는다는 그 자체가 설렘이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도 험준한 산에 가로막혀 기차가 아니면 드나들기 힘든 오지마을인 봉화군 소천면 배바위산(해발 968m) 둘레에 영동선 분천역, 양원역, 승부역이 있다. 낙동정맥이 강원도 태백시의 구봉산에서부터 부산의 다대포 몰운대에 이르는 총 길이가 370㎞에 달하는 산줄기인데, 낙동정맥 구간의 산줄기나 산자락을 잇는 낙동정맥 트레일 제2구간에 속하는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를 걷는다.

동대구역을 출발한 기차가 세 시간여를 달려 분천역에 멈춰 서자 한 무리의 승객이 내려 역 광장을 가득 메운다. 경북대 사범대학 부설 중·고등학교 동문 산악회인 군성산악회 회원들이다. 군성(群星). 별들의 무리와 이번 특별산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기찻길과 나란한 마을길을 따라 양원역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대구에서는 벌써 지고 없는 목련이 몇 채 안 되는 집 마당마다 활짝 피었고, 철길 옆으로 애기똥풀이 흐드러져 노랑 화단을 이루며 오지마을에도 완연한 봄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25분을 걸어 낙동강을 가로질러 건너는 비동1교를 지날 즈음 흐리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 예보가 있었던 터라 너 나 할 것 없이 비옷과 우산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15분을 더 걸으니 비동2교를 지나고 철교와 만나는 지점에 자그마한 쉼터가 마련되어있다.

빗방울은 더욱 거세져 잠시 쉼터에 들어가 배낭 덥개까지 중무장을 하고 다시 출발.

강을 따라 나란한 시멘트 포장길을 7분을 걸으면 ‘승부역 5.9㎞, 배바위고개 3.3㎞, 분천역 4.0㎞’라고 적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승부역과 배바위고개는 진행방향의 정면을 가리키고 있고, 그 아래에 자그마하게 ‘비동승강장, 양원역(체르마트길 출발점)’이라 적어두었다.

이 지점에서 정면은 배바위산, 배바위고개를 넘어 승부역으로 가는 길이고, 양원역을 지나 승부역 방향의 낙동정맥 트레일 코스는 잠수교를 건너야 한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배바위산을 올랐다가 승부역으로 가는 길을 잡아도 괜찮을 법한데 빗줄기가 강해져 아무도 이 길을 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얼마쯤 들어서다가 포기하고 내려와 체르마트 길을 따라 잠수교를 건넌다. 체르마트길 명칭은 스위스 알프스산맥에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게 솟아있는 마터호른을 오르기 위한 베이스캠프가 체르마트인데 이곳 낙동정맥 트레일 구간과 자매결연을 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잠수교를 건너 8분을 가 철교 아래를 지나 오른쪽 언덕을 오르면 비동승강장이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지만 단선인 선로에서 서로 교행하기 위한 장소다. 비동승강장에서 철교 위 가장자리에 보도를 달아내어 만든 길을 따라 계곡을 건너면 곧바로 작은 능선에 올라붙는다. 5분 정도로 짧은 오르막이지만 비가 내려 진흙으로 변한 길이라 미끄러지기 일쑤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도 미끄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우산을 쓰고도 지날 만큼 넓어 위험하지는 않다. 언덕을 내려서면 정자와 간이매점이 있는 용골쉼터다. 철로 옆 강을 따라 약 300m를 가면 오른쪽으로 잠수교를 건너고, 10분을 더 가면 다시 잠수교를 건너 강 반대편 길이 이어진다. 철교 아래를 두 번 지나 10분이면 양원역에 닿는다. 간단한 식사와 먹거리를 파는 매점이 있고, 매점보다도 작은 건물인 양원역 대합실.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 백두대간 트레일을 따라 걷는 손님, 백두대간 협곡열차(V-train), 중부내륙 순환열차(O-train) 승객이 몰려 자그마한 대합실을 구경하느라 출입구가 비좁다.

분천역에서 양원역까지는 조금 밋밋한 풍경이었다면 여기서부터 승부역까지는 협곡을 따라 걷는 비경길이 이어진다. 철로를 따라 난 시멘트 포장길을 걷다가 강바닥으로 내려서서 자갈길, 바윗길을 따른다. 비에 젖어 반질거리는 반석과 계곡, 좌우로 병풍처럼 펼쳐지는 기암괴석의 산들이 구름에 덮였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하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돌단풍이 그렇고, 복주머니를 주렁주렁 단 금낭화가 봄비를 머금어 눈물 젖은 속눈썹처럼 애잔하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강물소리, 산새소리가 합쳐져 어지러운 화음 같지만 자갈길에 서걱거리는 발자국소리가 더해져 박자가 되고 오케스트라 연주가 된다.

30분을 지나니 기찻길은 터널 속으로 숨어버리고 계곡은 왼쪽으로 크게 휘어지면서 절벽 옆으로 데크와 계단으로 연결된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면 다시 철길과 만나고 옹벽 위를 지나는 구간이 이어지는데 바닥에 물이 고여 등산화가 물을 먹는다. 우산을 든 팔이 저려 바꿔 들기를 여러 차례. 비옷을 입었지만 처음부터 우산을 쓴 터라 끝까지 우산을 쓰고 걸어보자는 알 수 없는 오기 같은 게 생긴다.

옹벽구간이 끝이 나자 철길은 다시 터널 속으로 숨어버리고 잠시 계단 길과 출렁다리를 지나면 강바닥 길로 이어진다. 계곡 건너편으로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이정표가 세워진 지점인데 건너가는 길이 없다. 헤엄쳐서 건너지 않고는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이정표는 있다? 궁금증이 일면서도 꾸준히 걷는다. 약 30분 걸어 왼쪽으로 크게 휘어지는 강을 따라 난 길을 따르면 경운기가 지날 만한 오솔길이다가 잠수교를 건너면 차가 지날 만큼 넓은 비포장 길이다. 여기서부터 승부역 직전 철교 아래를 지나 승부역까지는 10분 거리다.

승부역 내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승부역 승무원이던 김찬빈씨가 어느 날 역 주위를 둘러보니 하늘은 넓고 높은데 역 주위는 너무나 작고 고요하여 지은 글이라 한다. 짧은 글이 지금은 승부역의 대명사가 되었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지만 비를 피할 곳도 세평이어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우산을 쓰고 기다려야만 했다.

우리 기술로 최초로 뚫었다는 승부터널을 지나며 구름 속으로 점점이 사라지는 세평 승부역 주변 풍경을 가슴속 깊이 한 폭의 수채화로 남겨두고 자연과 문화, 역사를 잇는 낙동정맥 트레일을 마감한다.

대구시산악연맹 이사 apeloil@hanmail.net

☞교통

동대구역 오전 6시15분 정동진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분천역에 도착하면 오전 9시43분. 승부역에서 동대구행은 2편이 있다. 오후 3시36분 부전행 열차를 타고 영천까지 간 다음 영천에서 오후 7시7분 무궁화호로 환승하는 방법과 승부역에서 동대구행 오후 7시49분차를 이용해도 된다. *오후 3시36분 부전행 열차는 양원역 무정차 통과. 요금: 동대구~분천역(1만3천800원), 승부역~영천(1만2천200원), 승부역~동대구(1만4천400원)문의: 코레일 콜센터 1588-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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