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를 통해 본 현대사] <8> 6월항쟁과 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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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14   |  발행일 2015-05-14 제6면   |  수정 2015-05-14
6·29선언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교묘한 타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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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군부독재 타도, 대통령 직선’을 내걸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 헌정사상 가장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저항운동은 6·29 선언으로 이어졌다. <영남일보 DB>

1987년 6월항쟁은 군부의 재집권으로 인한 ‘지연된 민주화’에 대한 저항이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와 1972년 유신쿠데타에 의해 계속되었던 군부정권이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서 끝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정치화된 군의 일부가 1979년 12·12, 1980년 5·17 두 차례의 군사적 행동을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함으로써 국민들이 바라던 민주화는 무산되고 말았다.

이는 국민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특히 군부의 재집권이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이루어진 터라 그것에 대한 반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교수, 변호사, 신부와 목사 그리고 승려,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여성, 청년, 야당 등 다양한 부분에서 저항이 이어졌다. 여기에 중산층을 상징하는 넥타이 부대까지 가세했다. 이들 화이트칼라의 참여는 뜻밖이었다. 왜냐하면 이 계층은 군부 권위주의가 추진한 경제발전의 수혜자들이며 안정을 바라는 사람들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넥타이 부대까지 함께한 신군부에 대한 저항은 전국민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억압·부패 군부통치 끝장내자”
87년 민주항쟁 들불처럼 번져
‘대통령 직선’ 항복얻어냈지만
군부 정권의 기만 선언 시각도

민주화 과정서 지방자치도 도입
91년엔 지방의회 구성되고
95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 실시

자치부활 역사 20년 지났지만
중앙집권 강화…지방은 더 종속
권한 활용못해 무능력 평가도


◆ 민주주의 결실 6·29 선언

6월항쟁은 ‘최소강령, 최대연합’이라고 부르는 정치과정으로 축약할 수 있다. 그것은 ‘군부독재 타도, 대통령 직선’이라는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목표를 가지고 가장 많은 사람이 함께 행동했다는 뜻이다.

억압과 부패로 얼룩진 군부통치를 끝장내자고 하는 목소리를 가로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대통령을 우리 스스로 뽑겠다는 주장을 거부할 시민도 없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어야 하고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모든 국민들은 알고 있었다. 신군부가 총을 들고 국민을 협박해서 만든 헌법을 민주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군부정권의 경찰이 자신들이 찾고 있는 대학생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친구를 물고문하다 죽여버린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백만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987년 6월10일 저항시위는 절정에 이르렀다.

헌정사상 가장 많은 시민이 참여한 저항운동을 해산시키기 위하여 군부정권은 군대 동원을 불사할 생각이었다. 다시 한번 큰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군대는 동원되지 않았다. 다음 해에는 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었고 따라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군부정권은 의식해야 했다. 광주항쟁에서 돌이킬 수 없는 아픈 경험을 했던 터라 군대 내부의 동의도 얻기가 쉽지 않았다.

군부정권은 6월29일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6·29선언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어떤 이는 군부정권의 항복선언이라 하고, 어떤 이는 군부정권의 기만선언이라고 한다. 나의 판단은 두 주장의 가운데 있다. 6·29선언은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힘과 위에서 권위주의를 유지하고자 하는 군부정권의 힘이 교착상태를 이루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도, 권위주의를 유지하려는 군부정권도, 어느 쪽도 상대를 압도할 수 없는 힘의 균형상황에서 두 힘이 타협한 결과가 6·29선언이라는 것이다.

◆ 무늬만 자치인 ‘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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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돼 광역 및 기초 의원과 자치단체장을 선출함으로써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다. <영남일보 DB>

이런 민주화 과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분수령이 있었다. 그것은 지방자치의 실시다. 흔히 지방자치를 민주주의의 두 수레바퀴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하나의 수레바퀴는 권력의 기능적 분립을 가리키는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으로 권력을 수평적으로 나누고 서로 견제와 균형을 하게 만드는 제도다. 다른 하나는 권력의 수직적 분할이다.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을 적당히 나누어서 지방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주자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자치의 실시는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의 실시는 순조롭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타협에 의해 민주화가 시작되었다는 구조적, 역사적 성격을 반영이라도 하듯 권위주의를 승계한 노태우정권은 지방자치의 실시에 소극적이었다. 야당세력의 정치와 생명을 건 투쟁이 아니었더라면 지방자치의 실시는 더 지연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군부정권의 등장 이후 30여년간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졌고 1991년 지방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의 의회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1995년 6월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실시하여 광역 및 기초 의원과 자치단체장을 선출함으로써 지방자치 시대를 열었다.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후 20년이 지난 지금 지방자치는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하나는 ‘자치 명목론’이다. 지방자치는 허울뿐이고 중앙집권은 더 강화되고 있으며 지방은 여전히 중앙집권적 국가에 종속되어 있다는 평가다. 제대로 된 권한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하나는 ‘자치 과잉론’이다. 지방자치를 실시했더니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고 지방의회는 나태하여 집행부를 견제하거나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데 무능하다는 평가다. 제도는 주어졌으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두 가지 지적이 다 일리가 있다고 본다. 우선 자치명목론이 말하고 있듯이 지금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무늬만 자치’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재정, 조직, 입법에 관한 주요한 권한은 중앙권력이 가지고 있다. 지방재정 문제는 심각하다. 재정자립도가 첫 지방의회가 출범하던 1992년 69.6%, 첫 단체장을 선출하던 1995년 63.5%였는데 현재는 오히려 50%까지 떨어져 있다. 중앙정부가 일은 넘겨주고 돈은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결정한 기초연금, 보육비, 기초생활보장 등과 같은 복지비용의 지속적 지방전가로 지방재정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입법권 역시 마찬가지로 허울뿐이다. ‘조례제정범위’를 법령의 범위 안으로 제한하고 권리제한, 의무부과 등을 법률의 위임에 따라야 한다고 규제하고 있어서 지방의 조례제정 입법권은 껍데기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직에 대해서도 지방의 자율성은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지방이 자신의 실정과 필요에 맞게 조직을 만들고 인사제도를 디자인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는 아주 좁다.

자치과잉론은 주어진 제도적 권한도 다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지방정치의 능력에 관한 질책이다. 한 해 동안 조례 재개정 발의를 한 건도 하지 않는 지방의원이 부지기수이고 회의록에서 발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지방의원 또한 부지기수라는 보고는 우리를 절망케 한다. 선거부정, 업무와 관련한 부정부패와 독직으로 처벌받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소식 역시 자치능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비판에 대해 ‘자치를 실시할 제도적 권한을 제대로 주고 잘 하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제도적 권한이 충분치 않은 것도 사실이나 주어진 권한조차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는 자치권력의 나태함이나 능력부재, 무책임은 그것과 별개로 냉정하게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민주주의로의 대장정을 시작한 6월항쟁이나 민주주의의 심화 과정으로 실시된 지방자치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이런 형식적 민주주의를 채우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생활세계의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
자료조사= 조사팀 박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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