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한때‘한국영화의 메카’였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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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15   |  발행일 2015-05-15 제33면   |  수정 2015-05-15
즐비한 최신시설 멀티플렉스·연인원 1천만 영화관객…市 지원 등 정책 보완되면 ‘부활’ 기대해볼 만
20150515
올해 2월 개관한 독립영화 전용극장 오오극장의 상영관 출입문 외벽에 쓴 영화 관련 문구들. 대구 영화인들의 외침 같이 보인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경상도 방언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있다. 극중 배경이 대구이고, 대구사람이 주연인데도 부산 사투리를 쓴다. 왜 그럴까. 이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지속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영향이 크다. 영화 ‘친구’나 ‘해운대’ ‘국제시장’등을 통해 ‘경상도 사투리=부산 사투리’로 각인돼 버렸다.

영화는 예술이며 동시에 산업이다. 혹자는 미래 산업의 총아라고도 한다. 굳이 할리우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영화의 힘은 막강하다. 영화주제가 한 곡으로 대박 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화 세트장 하나로 유명 관광지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자체가 수억 원을 들여 홍보하는 것보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대구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전후 ‘영화의 메카’로 불렸다. 춘사 나운규가 주연 한 ‘임자 없는 나룻배’(1932)의 이규환 감독은 계성학교를 나온 대구 출신 인사다. 달성군 가창(냉천)에서 촬영한 그의 작품 ‘춘향전’(1955)은 당시 대박을 터뜨렸다. 또 ‘미망인’(1955)을 만든 경북여고 출신의 박남옥(1923~ )은 한국 최초의 여류 영화감독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제작사인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첫 작품 ‘해의 비곡’(1924)은 대구를 배경으로 촬영됐다. 1933년 대구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종로’의 시나리오와 주연도 나운규가 맡았다. 국내 첫 키스신으로 유명했던 영화 ‘옥단춘’(1956)의 감독 권영순도 대구에서 성장했다. ‘황진이’를 만든 조긍하 감독, ‘태양의 거리’를 감독한 민경식 감독, ‘시라소니’의 이혁수 감독도 대구 출신이다. 또 한국영화 중흥기 신성일은 한국영화계의 별이었으며, 한국의 남자배우를 대표했던 안성기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김수용 감독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는 명덕초등 출신 이윤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이 밖에 이창동, 배용균, 봉준호, 강우석(경주), 김기덕(청송), 박철수, 배창호, 조진규, 김지훈 등의 영화감독이나 이준동(나우필름 대표), 원승환(인디스페이스 이사) 등의 영화인이 대구·경북 출신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구영화계는 심각하게 침체돼 있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영화가 한 해 100여편을 넘지만 대구를 배경으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왜 이럴까. 가장 큰 이유는 지역의 영화진흥에 대한 정책적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2001년 대구시가 투자한 ‘나티프로젝트’가 사기로 판명되면서 대구는 영화 정책에서 손을 뗐다고 봐도 될 만큼 무심했다. 경북 역시 다를 바 없다. 전국 광역시·도에는 거의 다 있는 영상위원회가 대구·경북에는 없다. 영상위원회는 영화제작에 관한 행정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핵심기구다. 또 대구·경북에는 내세울 국제영화제 하나 없다. 서울을 제외하고 부산국제영화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16회), 광주국제영화제(15회) 등이 있으며 부천과 제천 같은 중소도시에도 국제영화제가 있다.

대구영화인협회가 열고 있는 대구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보다 역사가 더 길지만 처지는 천양지차다. 그나마 영화를 사랑하는 지역의 영화인이 만든 독립영화협회가 대구의 체면을 살리고 있다. 2000년 3월 설립한 대구독립영화협회는 영화애니메이션, 극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망라한다. 2002년 창립한 대구시네마테크도 동성아트홀을 기반으로 영화상영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대구에서 개인과 그룹의 영화제작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남태우 대구시네마테크 대표는 “대구는 연인원 1천만명의 영화관객이 있는 도시다. 도심에 최신시설의 멀티플렉스가 즐비하다. 전국 영화시장 점유율의 7%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좋은 조건이 있음에도 정책적 지원이 되지 못하고 있는게 아쉽다”고 했다.

대구에선 지난해 노인층을 대상으로 한 실버영화관이 개관했다. 올해 초엔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에선 처음으로 독립영화 전용관인 오오극장이 문을 열었다. 또 폐관됐던 예술영화전용관 동성아트홀이 다시 개관했다. 이처럼 작으나마 대구지역에서 영화부흥의 싹이 트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번호 위클리포유는 대구지역 영화와 영화인에 관한 이야기다. 신재천 대구영화인협회 회장과 장우석 물레책방 대표, 현종문 영화감독, 권현준 오오극장 프로그램팀장 등을 만나 그들의 삶과 영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또 대구 영화 발전에 대한 토론회도 가졌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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