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삼경에 빠진 배우 겸 저술가 명로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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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15   |  발행일 2015-05-15 제37면   |  수정 2015-05-15
“국회의원 출마하려는 사람은 최소한 대학·중용이라도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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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신문 연예 담당 기자, 거기서 다시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저술가로 변신한 전방위 프리랜서인 명로진씨. 현재까지 40여권의 책을 펴낸 그는 고전을 현대생활에 맞게 재해석한 ‘퓨전고전해설서’를 연이어 출간하고 있다. 르네상스맨의 유전자를 누구보다 듬뿍 가진 그는 현재 서울 홍대 근처 집필실에서 고전의 숲을 거니는 나그네로 살고 있다.

‘1인10역’ 같은 ‘멀티맨’. 어떻게 가능하지? 특히 연예인은 다중 재주꾼임에 분명하다. 가수 조영남도 그렇다. 가수는 물론 화가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고, 거기다가 전방위 MC까지. 개그맨 전유성은 광고 카피는 물론 비즈니스마인드로 마케팅 전문가로도 입지를 굳혔다. 청도에 ‘철가방 프로젝트’란 맞춤형 코디미극장을 열었다. 그 이전엔 청도에 짬뽕 전문점 ‘니가 쏘다쩨’를 열고 이어 삼복철을 겨냥해 견공들을 위한 ‘개나소나 콘서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요즘 연예인 사회에도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명로진(49)이다.

명로진은 연세대 불문과를 나와 스포츠조선 연예 담당 기자로 있다가 연기자로 터닝했고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최근에는 고전의 세계에 심취해 ‘공자 팬클럽 홍대 지부’ 등 사서삼경을 토대로 한 ‘퓨전고전해설서’까지 내고 있다. 지금까지 무려 40여 권의 책을 냈다. 그는 지난달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문 연 어린이를 위한 인문학 강좌에 초대받아 공자를 강의했다. 그는 연예계와 거리를 두면서 서울 홍대 앞의 집필실에서 고전을 읽고 글을 쓰면서 유유자적하고 있다. 요즘 팟캐스트 ‘명로진 권진영의 고전읽기’를 진행하는 틈틈이 ‘고전은 드라마다’를 집필 중이다. 그를 통해 연예인의 고전탐독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 효과는 어떤지 알아봤다.

기자생활하다 연기자로 전향

나는 글쓰는 사람이라고 생각
지금까지 40권 출간

2010년 한 출판사 부탁으로
논어 관련 책 저술 청탁받고
논어부터 파고들어 영역 넓혀

1년에 100권 읽는 것보다
1권을 100번 읽는 게 좋아

자녀에겐 스마트폰·명품보다
미래 위해 인문고전 선물하라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글 쓰는 사람입니다. 1990년에 첫 책을 낸 이래로 지금까지 40권의 책을 썼으니까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졸라 아역 탤런트 오디션을 보겠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혹하셨죠. 아들이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런데 담임선생은 ‘로진이는 예능보다는 공부가 더 맞는 아이’라며 반대했어요. 선생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연기자가 됐습니까.

“기자가 된 뒤 연예부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사회부에 발령받았지요. 사회부에 가서도 호시탐탐 연예부에 보내달라고 떼를 쓰니까 1년 만에 연예부에 보내주더라고요. 신문기자 생활을 3년 하다가 SBS 이장수 감독에게 길거리 캐스팅되어 특별 기획 드라마 ‘도깨비가 간다’에서 주연이 되죠. 김혜수, 박상원, 유인촌, 이미숙, 이정길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나오는 미니시리즈였는데 킬러인 김준이라는 배역을 맡았어요. 목욕재개하고 신문사에 사표를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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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가 엄청난 것 같아요. 그럼 이것저것 많이 건드릴 것 같은데….

“눈치채셨네요. 대학에선 연극, 졸업반 시절에는 감성시집을 출간하고, 산이 좋아 6주 코스의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안데스산맥 원정을 가고, 춤이 좋아 살사댄스를 배우러 쿠바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2003년에는 코엑스를 빌려 3일 동안 국제 살사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고요. 세계 6대륙 여행도 감행했죠.”

▲당시 연예 담당 기자의 위상이 지금과는 천양지차일 것 같습니다.

“90년대초, 스포츠 신문도 3개밖에 없었어요. 자연 연예 담당 기자의 위상이 높았어요. 제가 기자를 할 때 이병헌, 최진실, 김혜수씨 같은 톱스타에게 전화를 해서 ‘신문사로 와 달라’고 하면 바로 달려 왔습니다. 총각 때라 취재를 빙자(?)해서 최고의 여성스타들과 데이트도 하고 그랬어요. 이제는 톱스타와 직접 통화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죠. 매니저, 그것도 스케줄 관리하는 로드매니저하고 겨우 통화할 겁니다.”

▲연기자로는 성공했는가요.

“처음에는 PD분들이 기자 역할만 주로 시키더군요. 드라마는 크고 작은 것 30여 편입니다. 연극은 3편, 영화는 참 인연이 없어요. 독립 영화 주연 한 번 했고 단역으로 두어 편 출연했습니다. 도깨비가 간다는 최고 시청률이 18% 정도였어요. 그 당시로서는 2루타쯤 되는 건데, 이 드라마가 나가고 하루에 팬레터가 50통씩 온 적도 있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대학로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더군요. 최민수와 함께 연기를 한 ‘태양의 남쪽’으로 방송사 남우조연상 후보까지 올랐는데 그게 아마 제게는 연기자로서 최고의 역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하고, 연극영화과를 나와서 오직 배우의 길 하나만 걷는 그런 분들이 기자 하다가 갑자기 배우 하겠다고 온 저를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합니다.”

▲고전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요.

“2010년쯤 한 출판사로부터 ‘논어’에 대해 책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고사했지요. ‘제가 논어 같은 책하고 어울린다고 보십니까?’ 하고요. 저는 홍대 앞에 집필실이 있어서 늘 젊음을 호흡하고, 늘 트렌드를 따라간다고 자부(?)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 논어를 한 번 읽어 보니까, 아뿔싸! 이게 어마어마한 책인 겁니다. 국내서 출간된 논어 완역 버전을 거의 다 구입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내용이 무척 재미있어서 완전 공자의 팬이 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결국 책을 썼지요. ‘공자 팬클럽 홍대 지부’라고. 그때부터 고전에 빠져버렸습니다.”

▲논어 다음 독서 방향은 어디로 향했는가요.

“논어 이후에는 신간은 거의 읽지 않고 주로 고전만 읽습니다. ‘맹자’ 역시 6개월에 한 번은 꼭 읽고 있습니다. ‘도덕경’과 ‘장자’ 역시 다양한 버전을 구해 1년에 한 번 이상 읽고요, ‘금강경’도 산스크리트어 완역본을 비롯해 다양한 번역본으로 시시때때로 읽는 책입니다. 그 외 동양 고전으로는 ‘고문진보’ ‘묵자’ ‘순자’ ‘한비자’ ‘사기’ ‘열국지’ ‘서경’ ‘시경’ 같은 책을 좋아합니다. 서양고전으로는 플라톤을 제일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리스 로마 고전을 연구, 번역해서 내놓는 정암학당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간하는 플라톤 관련 책들은 거의 다 구입해서 읽고 있습니다.”

▲사서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읽었는가요.

“논어를 예로 들면 이 책은 춘추전국 시대의 역사적 배경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책입니다. 처음에는 무척 고생했지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요. 일단 신정근, 도올의 논어를 읽었는데 역시 어려웠어요. 그래서 ‘열국지’부터 읽었습니다. 그다음에 ‘사기’를 완역본으로 구해서 읽었어요. 그리고 나서 공자 평전과 ‘공자가어’를 구해 보고 다시 ‘논어’를 읽었습니다. 그제야 조금 이해되더군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사를 통사로 봤습니다. ‘이야기 중국사’ ‘아틀라스 중국사’ ‘케임브리지 중국사’를 읽었어요. 그리고 다시 ‘논어’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논어에 시경, 서경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시경, 서경을 읽지 않을 수가 없어요. 뭐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책을 읽다보면 고전의 바다에 빠져서 일엽편주 타고 룰루랄라 하는 거지요.”

▲사서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한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그래서 최근 류종목의 ‘논어의 문법적 이해’라는 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논어를 필사하면서 한문을 익혀 가는 거죠.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동양고전을 어떤 식으로 적용해서 살아야 한다고 봅니까.

“사서삼경, 그러니까 대학·논어·맹자·중용(주희가 권한 읽는 순서), 그리고 시경·서경·역경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말씀한 대로 이 중 한 구절이라도 삶에 적용하는 겁니다. 맹자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백성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 사직이 중요하고 군주는 하찮다. 군주가 백성을 위하지 않으면 갈아치우면 그만이다.’ 대학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도자는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해야 백성들의 부모라 할 수 있다. 시에 이르기를 ‘휘황찬란한 벼슬아치여 백성들이 모두 그대를 쳐다보네’ 하였으니 나라를 맡은 자는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사로움에 치우치면 천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뿐이다.’ 고전을 현실에 적용하면 당장 혁명해야 해요. 저는 마음속으로는 벌써 혁명했습니다.”

▲요즘 청소년 인문학 강좌 붐이 일고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부작용보다는 순작용이 더 많다고 봅니다. 고전은 어려서부터 읽히는 게 좋습니다. 중요한 건 1년에 100권을 읽는 게 아니라, 한 권을 100번 읽는 겁니다. 뜻을 모르면 읽고 또 읽으면 됩니다. 아이들이라고 쉬운 책만 읽혀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어른들보다 이해는 더 빨라요. 애들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없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나 명품 브랜드를 사 주느니 차라리 인문고전을 사 주는 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낫다고 봅니다.”

▲돈이 전부라는 이 세상에 돌직구를 던져보시죠.

“모두 돈벌이와 재테크에만 관심이 있어요. 저는 재테크에 관심이 없습니다. 책 읽기에도 바쁘거든요. 제가 서른 이후의 삶을 돌아보니까, 100세 시대예요. 20대 때 벌어서 평생 먹고 살 거 마련해 놓는다? 물론 좋지요. 그럼 서른 넘어서는 만날 놀 겁니까? 재테크가 다가 아닙니다. 인문 고전부터 읽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지식기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외모만 가꾸고 기교만 익혀선 한계가 있어요. 내면을 살찌우고 인식의 스케일을 넓게 해 놔야 뭘 해도 제대로 할 수 있죠. 안 그러면 연예인이 되든 스포츠맨이 되든 회사원이 되든 늘 노예로 살게 됩니다. 앞으로는 저술가 못지않게 강연 전문가 시대가 될 것 같아요.”

▲최근 정국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대학’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자이재발신 불인자이신발재(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해석하자면 ‘어진 사람은 몸을 일으키기 위해 재물을 쓰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재물을 모으려고 몸을 망친다’입니다. 최근의 부정부패를 보십시오. 재물 때문에 몸을 망치는 사람이 줄줄이 엮이고 있지 않습니까. 국회의원 출마하려는 사람은 최소한 대학과 중용만이라도 읽었으면 합니다.”

▲최근 감동받은 구절을 소개해주세요.

“최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한 구절에 꽂혔습니다. ‘인간이란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는 나머지 스스로 속는 존재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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