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비슷한 것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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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18 07:59  |  수정 2015-05-18 07:59  |  발행일 2015-05-18 제18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비슷한 것은 가짜다

달사(達士)와 속인의 차이를 어디에서 찾을까? 달사는 어떤 사람인가?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를 들으면 이미 그의 눈 앞에는 그와 관련된 열 가지 형상이 떠오른다. 그가 들은 것은 하나인데 그는 벌써 열 가지를 알아버린다. 열을 보면 마음 속에는 이미 백 가지 일이 펼쳐진다. 그는 사물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한다. 그의 귀와 눈, 그의 마음은 단지 이 사물과 저 사물을 연결지어 주는 매개자의 역할만을 기쁘게 감당한다. 그러기에 어떤 난처한 상황도 그는 당황스럽지가 않고, 어떤 복잡한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런 그를 나는 달사, 즉 통달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속인은 그렇지가 않다. 그는 자기가 아는 세계를 통해서만 창밖의 세계를 이해하려 든다. 그는 사물로써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집착을 우선하여 사물을 재려한다. 검은 까마귀의 깃털을 백로의 그것으로 만들어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검은 까마귀가 무슨 잘못이 있던가? 외다리로 고고히 서 있는 해오라비, 그 청순한 고결을 사람들은 아름답다 하지만 정작 그는 지금 주린 제 뱃속을 채우려고 물 속의 고기를 한껏 노리고 있는 중이다. 까마귀는 검은 날갯빛을 하고도 제 삶을 불편함 없이 잘 살아간다. 그것을 보고 불편한 것은 정작 까마귀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것을 보고 행복한 것은 사실 해오라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왜 까마귀를 더럽다 하는가? 해오라기가 고고할 것은 또 무엇인가? 왜 내가 알고 있는 사실, 내가 믿고 있는 가치만을 고집하는가? 왜 그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을 욕하는가? 까마귀의 날갯빛은 정말 검을까? 아니 그보다 검은 것은 정말 나쁜 것일까? 가만히 보면 까마귀의 날개 속에는 갖가지의 빛깔이 감춰져 있다. 유금빛으로 무리지다가 석록빛으로 반짝이고, 햇빛 속에서는 자줏빛도 떠오른다. 자세히 보면 비췻빛도 있구나. 우리가 검다고 믿어온 그 깃털 속에 이렇듯 다양한 빛깔이 들어 있었구나. 비췻빛 까마귀였다면 우리가 그렇게 미워했을까? 햇살의 프리즘에 따라 바뀌는 까마귀의 날갯빛을 우리는 거부하고 있었구나. 까마귀는 검다. 검은 것은 더럽다. 더러운 것은 지저분하다. 까마귀는 지저분하다. 가까이 가면 물드니 백로야 가지 마라.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는 언제나 불변인가? 변화하는 것은 진리가 아닌가? 피는 붉다. 까마귀는 더럽다. 속인은 모든 판단을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까마귀는 저대로 자유로운데 공연히 제 사명이 다할 줄로 생각한다. 그래서 남을 못 살게 굴고, 비난하고 강요한다. (정민, ‘연암의 예술론과 산문미학’ 중에서)

사막에서 저녁놀을 본 적 있습니다. 시계(視界)가 온통 노랗게 물들더군요. 일행 중 한 분이 그곳 토착민과 통하지 않는 서로의 말과 몸짓으로 대화를 하더니 나중에 헤어질 땐 모자를 바꿔 쓰고 코를 부비며 형제인 양 아쉬워했습니다. ‘이게 시다, 직관이다,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완벽한 시의 결이란 노랗게 물든 사막의 저물녘이다.’ 그날 제 기록입니다.<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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