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국 네트워크 ‘월드 리포트’] 라트비아, 26% 러시아인과 74% 라트비아인 ‘한지붕 두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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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1   |  발행일 2015-05-21 제14면   |  수정 2015-07-10
“소련군은 해방군” “학살자”…깊은 골 드러나는 승전기념일(5월9일·독일이 항복한 러시아의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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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내 승전기념공원 승전기념탑 앞에는 소련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라트비아내 러시아인들이 가져온 꽃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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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 점령당한 뒤 독일 침공받아
2차 대전 끝나자 다시 소련에 편입
라트비아인에겐 잊고 싶은 ‘악몽’

라트비아는 엄연히 자국의 언어가 있지만 정작 라트비아에 사는 외국인들은 라트비아어보다 러시아어를 배우는 것에 더욱 집중한다. 왜 그럴까.

1980년대까지 라트비아인 34% 정도가 러시아인으로 분류됐다. 소련 붕괴 이후 현재는 26% 정도까지 떨어졌지만, 수도 리가에서만큼은 러시아인 비중이 6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라트비아인들과 라트비아내 러시아인들은 겉으로 보기에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두 개의 다른 집단이 라트비아란 하나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매년 5월9일은 한 사회내 두 집단이라는 현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5월9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한 날로, 러시아에서는 큰 명절로 지켜지고 있다. 라트비아 내 러시아인들 역시 이 날을 기념한다.

하지만 라트비아인들에게 이 날은 축제로 즐길 수 있는 날이 아니다. 과거 소련으로의 병합을 불법적인 일로 규정하고 있는 라트비아에서는 이 날을 축하해서도 기념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이 날 라트비아내 자국민과 러시아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드리워진다.

많은 사람은 2차 대전이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발발했으며, 연합국에 의해 독일이 패배하여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바로 2차 대전은 1939년 8월23일 독일과 소련이 모스크바에서 서명한 독소불가침조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조약의 비밀의정서에서 양국은 폴란드를 중심으로 해서 폴란드 서쪽은 독일, 발트3국을 포함한 폴란드 동부는 소련의 영향권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독일과 소련은 거의 같은 날에 각자가 약속한 국가들을 강제 점령했다. 엄밀히 말하면 2차 대전은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더불어 소련의 폴란드 및 발트 3국 침공으로 시작된 것이다.

당시 소련의 침공은 발트 3국에 악몽을 안겨 주었다. 소련과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처형됐고 농장과 사유재산은 모두 국가로 넘겨졌으며 교회 또한 철저히 금지됐다.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발트3국 국민들은 2차 대전이 소련이 그들을 점령함과 동시에 발발됐으며 소련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의 전범국이라고 생각한다. 소련의 발트 3국 침공 이후, 독일이 소련이 차지한 영토들로 진격하기 시작했을 때, 라트비아인들은 독일이 그들을 소련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라 여겼고 심지어 나치에 협력했다고 한다.

마침내 소련이 연합국에 가담하여 연합국의 승리로 전쟁은 끝이 난다. 하지만 라트비아인들에게 그것은 새로운 공포정치의 시작인 셈이었다. 라트비아는 다시 소련에 편입됐고, 과거 독일과의 협조라는 명목으로 많은 이들이 처형 당했다.

그런데 발트 3국내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인 대부분은 소련이 이 지역을 점령했던 것이 아니라 독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역사적 관점의 차이는 현재까지 보이지 않는 깊은 골이 되어 그들을 깊게 갈라놓고 있다.

소련으로의 병합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라트비아에서 옛소련의 업적을 고무하고 찬양하는 일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5월9일만큼은 그런 모든 것들이 예외가 된다. 라트비아내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난 5월9일 역시 옛 소련 시절 세운 라트비아의 승전기념공원에서는 라트비아의 그 어떤 축제나 행사보다도 많은 인파가 모여 축제를 벌였다. 소련시절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 소련 군복을 입은 이들로 거리가 북적였고 소련의 훈장을 자랑스럽게 가슴에 단 퇴역군인들은 그곳에 참석한 이들로부터 꽃다발을 선사받았다.

글·사진=서진석(경북PRIDE상품 발트3국 시장조사원·라트비아 국립대학교 한국학 담당교수)
영남일보-경북PRIDE상품지원센터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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