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산 태화강 대공원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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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2   |  발행일 2015-05-22 제38면   |  수정 2015-05-22
6천만 송이…푸른 강가에 ‘현기증’ 나는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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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태화강 대공원의 초화단지. 꽃양귀비, 작약, 안개초 등 6천만 송이의 봄꽃이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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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과 현기증. 울산이라는 도시에 들어섰을 때 몸의 반응이다. 사방을 쉴 새 없이 주시하며 빙그르 돌아 알맞은 길로 제때 빠져 나가야 하는 로터리와 좁은 도로들, 그사이 70년대의 상점들과 2천년대의 초고층 빌딩들의 느닷없는 육박과 후퇴는 시냅스를 민감하게 하고 근육을 팽팽하게 한다. 이러한 느낌은 휘어지고 뒤엉긴 길에서 빠져나와 이 도시의 심장부에 안착했을 때 안정된다. 거기에는 명확한 방향으로 흐르는 넓은 길이 있다. 대관식의 왕처럼, 수목과 꽃들 사이를 흘러 바다로 가는 물길, 태화강이다.


꽃양귀비·수레국화·안개꽃·작약…단일규모 전국최대 수변 초화단지
단지별 개화시기 조정…4계절 꽃
소나기처럼 곧은 십리 대숲도 볼 만


◆ 강변에 피어난 6천만 송이 봄꽃

태화강 푸른 강가에 붉은 꽃 피었다. 수만 송이 꽃양귀비가 뜨겁게 피었다. 이른 아침, 물기를 머금은 하늘에 뒤덮여 오싹할 만치 뜨겁게 펼쳐져 있다. 당나라의 양귀비가 이처럼 생겼었는가. 양귀비의 죽음 앞에서 얼굴을 가리던 현종의 혈루일지도. 아니 그보다, 초나라 항우의 애희 우미인의 영혼일지도 모른다. 사면초가의 항우 앞에서 스스로 목을 벤 우미인의 사랑 말이다. 그 무덤 위에 피어났다는 꽃, 그래서 우미인초라고도 하지 않는가. 꽃양귀비의 꽃말은 위로와 위안이라 한다. 그러니 과잉도 재난이라 했던 어느 여류 작가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사랑과 위안은 넘치고 넘쳐야 하니까.

꽃들이 넘쳐난다. 붉은 꽃양귀비와, 청보라 빛의 수레국화와, 눈부신 안개꽃과, 동공을 가득 채우는 함박꽃 작약이 넘치게 피었다. 태화강 대공원에 초화단지를 개장한 것은 2011년. 단일 규모로는 전국 최대의 수변 초화단지다. 지금 강변에는 지난해 10월 뿌린 씨앗이 6천만 송이의 꽃으로 피어 있다. 이곳에서는 사계절 꽃이 핀다. 단지별 개화시기를 조정해 조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함박 만하게 피어난 작약 곁에서 왕원추리가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불었나, 바람 속에 물기가 있었나, 꽃들이 하늘거렸다. 누군가 ‘해하가’를 불렀나, 술잔을 앞에 두고 ‘우미인아, 우미인아, 너를 어찌 할거나’ 탄식했던 항우의 노래를? 지금도 우미인초 앞에서 ‘해하가’를 부르면 꽃은 흐느끼듯 하늘하늘 떤다고 했었다. 송나라 시인 증자고는 시 ‘우미인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임의 술잔 앞에서 슬퍼하던 몸부림 이제는 누굴 위해 저리도 하늘거리는가.’ 그것은 위안과 사랑의 인간을 위해 하늘거린다.

◆ 강 따라 십리, 푸른 대밭

넓은 꽃밭을 마주하고, 조금 물러 선 자세로 대숲이 무성하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4㎞의 대숲, 울산 12경에 속하는 십리 대밭이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대밭에 안기며 생각한다. 이곳에 올 때마다 비가 내렸구나. 소나기처럼 곧은 대나무가 바람처럼 몸을 감싸준다.

태화강 대공원은 이전에 태화강 생태공원, 또는 오산 대밭이라 했다. 자라 모양을 한 명당, 대숲은 이 대지의 중심이었다. 지금 꽃 피는 절정의 시절, 대숲은 잠시 시선을 내어주지만 역시, 여전히, 중심을 탐하지 않는 중심이다.

대밭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시대다. 어느 해의 홍수로 태화강이 범람했고, 그 일대의 전답은 모두 백사장으로 변했다. 그곳에 대나무를 심기 시작해 오늘날 10리에 달하는 대숲이 되었다. 한때는 물의 흐름에 장애가 된다며 대숲을 없애려 한 적도 있고, 도시계획상 개발 예정지가 된 적도 있다. 모든 위기를 막고 숲을 보전한 것은 시민들의 힘이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중년의 어르신이 인사를 건네 오신다. “안녕하세요.” 대나무는 외톨이로 살아가는 법이 없다.

◆ 꽃밭 속 실개천과 습지

초화단지와 대숲 사이에 실개천이 흐른다. 발 담그고 물놀이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2010년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물길이다. 천변에는 창포와 부들, 수련 등 수생 식물들이 무성해 인공의 느낌은 거의 없다. 한쪽에는 작은 습지도 있다. 습지는 지면에서 자연적으로 용출되는 물을 실개천으로 흘려보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꽃밭과 대숲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의 징검다리에서 이제 약해진 빗방울이 만드는 동심원을 본다. 꽃밭에는 사람들이 나비처럼 거닐고, 대숲 앞에는 청보리가 일제히 흔들리고 있다. 붉은 장미꽃 핀 덩굴원 곁에는 어린 국화들이 조르라니 모여 앉아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고요한 움직임들 너머에 동해로 걸어가는 태화강의 준엄한 얼굴이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정보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으로 가다 언양분기점에서 울산 고속도로를 타고 울산IC에서 내린다. 직진 후 신복로터리에서 좌회전해 가다 다운네거리에서 우회전, 태화교 방향으로 가면 된다. 태화강 대공원 초화단지의 꽃은 이번 달 말까지 볼 수 있을 듯하다. 인근 울산대공원 장미원에서는 23일부터 9일간 울산장미축제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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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변의 대숲. 울창한 숲이 십리에 걸쳐 이어지며 울산 12경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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