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스파이·와일드 테일즈·참을 수 없는 순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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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2   |  발행일 2015-05-22 제42면   |  수정 2015-07-10

스파이
‘주방 아줌마’급 스파이 수잔, 핵무기거래 막기 고군분투

20150522

한번쯤 이런 영화의 등장을 기대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코믹 첩보액션영화를 말이다. 제목부터 당당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스파이’는 역설적이게도 태생부터 기존 스파이 영화들과 다른 노선을 걷는다. 이야기는 물론 등장인물 모두가 코미디 장르에 최적화되어 있다. 여기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핸섬 가이 주드 로는 물론이고 액션 전사 제이슨 스타뎀까지 웃음을 유발하는 허당 캐릭터로만 존재할 뿐이다. 남성 중심의 첩보액션물의 홍수속에서 ‘스파이’가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다.

자칭 CIA 최고 요원 파인(주드 로)과 포드(제이슨 스타뎀)에게 굴욕감을 안긴 주인공은 ‘주방 아줌마’라는 칭호가 더 잘 어울리는 풍성한 몸매의 수잔 쿠퍼(멜리사 맥카시)다. 수잔은 멋진 스파이가 되기를 꿈꾸며 CIA에 입사했지만,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현장 요원들의 미션 수행을 돕는 내근직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스파이로 활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


여성 중심 코믹 첩보액션물
핸섬 가이 주드 로도
액션 전사 제이슨 스타뎀도 ‘허당’


그녀가 짝사랑하던 현장 파트너 파인이 작전 수행 중 사고를 당하게 되고, 스파이들의 신상정보가 마피아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서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새로운 요원의 투입이 절실한 상황. 한시 바삐 핵무기의 밀거래를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던 CIA는 궁여지책으로 스파이 임무를 자원한 수잔을 언더커버 요원으로 투입시킨다. 이후 내근직에서 한번도 벗어나본 적 없는 수잔의 좌충우돌 활약상이 펼쳐질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역시나 ‘스파이’는 장르 본연의 맛을 살려내기 위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질주한다. 이 과정에서 폴 페이그 감독은 기존 액션영화의 틀을 영리하게 비틀고, 이를 다시 변주하는 방식으로 ‘스파이’를 완성했다. ‘007 시리즈’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등으로 대표되는 스파이 영화들과 일찌감치 차별화를 꾀했지만, 스파이 장르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특유의 긴장감을 코미디로 치환해내는 능력은 특히나 탁월했다.

‘스파이’는 남성 캐릭터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첩보액션물의 중심에 루저에 가까운 여성 캐릭터를 앉혀놓는 흥미로운 발상에서 출발했다. 어떤 사건이든 앞장서지 말고 오직 미행과 보고에만 충실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지만, 홀로 고군분투하는 수잔은 의도치 않게 점점 사건을 확대시켜 나간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건 그를 둘러싼 남자들이 활용되는 방식이다. 최고의 스파이로 추앙받던 파인은 결정적인 순간에 완벽함을 무너뜨리는 황당한 실수를 범하고, 포드는 입으로만 세상을 구하는 허세의 소유자로 등장해 수잔을 번번이 곤경에 빠뜨린다.

그런 두 사람을 대신해 스파이 임무를 완수하는 건 수잔이다. 자신도 미처 몰랐던 실력을 발휘하는 수잔의 액션 시퀀스는 아직 능숙함보다는 소동극에 가깝지만 그 점이 장르적 재미에 충실한 맛깔스러움으로 작용한다. 보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게 만드는 점 역시 이 영화가 지닌 힘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배우들의 열정적인 코믹 연기가 더해진 ‘스파이’는 스파이물의 정통성과 전형성을 통쾌하게 걷어낸 후 맛보는 실로 매력적인 결과물이다.(장르:코미디 등급:15세 관람가)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
“우리가 아는 그 찌질男이 우리가 탄 비행기 조종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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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정말 좁네요.” 막 이륙한 비행기에 탑승한 한 중년 부인, 뒷자리 승객이 나누던 대화에 끼어들며 그들이 화제에 올린 남자를 자기도 알고 있다며 신기해 한다. 그런데 이들의 기막힌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알고 보니 탑승객 모두가 그 남자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 문제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그 능력없고 찌질한 남자가 파일럿이 됐고, 지금 그들이 탄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탑승객들은 순간 불안감에 휩싸인다. 아니나 다를까.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비행기는 인근 주택가를 향해 빠른 속도로 추락중이다.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포문을 연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이하 와일드 테일즈)은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 인물들의 감정 폭발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간 블랙코미디다. 이 과정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지닌 별개의 이야기와 인물이 등장하는 여섯개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겨지는데, 이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는 분노다. 이후 이어지는 에피소드의 주인공 역시 참을 수 없는 분노의 순간과 마주한다.


6개 옴니버스 형식 블랙코미디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음직한 상황
기발한 상상력에 밀도 있는 스토리


주인공이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레스토랑에 손님으로 찾아온 남자. 알고보니 그는 오래전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악덕 사채업자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지만 막상 어떻게 복수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그녀. 동료 주방장은 음식에 쥐약을 넣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한적한 도로에서 고급 승용차를 몰던 마리오. 앞서가던 고물차가 깐죽대며 자신의 추월을 방해하자 해당 운전자에게 욕설을 퍼붓고 지나간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타이어가 펑크 나고, 이를 교체하는 사이 험상궂은 그 고물차 운전자가 다가온다.

불법주차 구역이 아닌 장소에서 차가 견인됐다고 생각하는 사이먼도 억울하긴 마찬가지. 담당 공무원에게 항의를 해 보지만 들은 채 만 채다. 결국 시청에서 난동을 피우는 그의 모습이 신문 1면을 장식하자 직장에서 해고되고, 설상가상 아내는 이혼을 요구한다. 그런가 하면 아들의 뺑소니 사고를 돈으로 무마하려 한 아버지는 이를 기회로 한몫 챙겨보려는 지인들의 행동에 화가 난 상태이고, 결혼식 날 신랑이 다른 여자와 외도한 사실을 알게 된 신부 역시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다.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지만 분노를 유발하게 만드는 요인은 나라와 문화의 차이가 없음을 ‘와일드 테일즈’는 보여준다. 어딜가나 융통성 없는 공무원은 단골이고, 비매너 운전자, 악덕 사채업자, 속물적인 상류층, 상대자의 외도 등 영화가 설정한 대상과 상황은 크게 보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음직한 분노의 기억들과 연결된다. 영화는 그 각각의 에피소드를 20여분씩 할애해 관객이 공감을 얻을 만한 익숙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들 행위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 영화의 미덕은 참신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구성과 이야기의 밀도감이다. 특히 상황을 대처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과잉으로 비쳐질 만큼 극단으로 치닫는 결과마저 통쾌함으로 승화시킨 데미안 스지프론 감독의 필력과 연출력이 빛나는 순간이다. 사회풍자를 블랙코미디 장르로 녹여내 이를 능숙하게 풀어낸 ‘와일드 테일즈’는 그 점에서 대중성으로나, 작품성으로나 흠잡을 데 없는 영화로 탄생했다.(장르:코미디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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