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저력 우리는 대구경북인] 중앙로역 화재·상인동 가스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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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8   |  발행일 2015-05-28 제4면   |  수정 2015-05-28
“지하철 참사 ‘기억의 재구성’으로 안전 대구 이미지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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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방화 사건과 1995년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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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과 시민들이 지하철 사고 추모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 대구 지하철1호선 중앙로역에 정차한 지하철 전동차 내부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신병 비관으로 정신지체장애인이 지하철 전동차 바닥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버린 것이다. 불길은 삽시간에 크게 번졌고 승객들은 우왕좌왕했다. 화재에 대한 초동 대응에 큰 문제가 있었다. 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에 화재현장의 상황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고, 그사이 맞은편 승강장으로 또 하나의 전동차가 진입했다. 불은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 지하 1~2층 대합실을 비롯한 역사 전체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승객들은 화재현장을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이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불이 난 후에 이어진 모든 상황은 비극적이었다. 화재의 초동대응은 실패했고, 온통 가연성 소재로 만들어진 지하철 전동차 내부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객차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으며 불구덩이 속으로 새로운 전동차가 진입을 했다. 희생자는 최초 불이 난 전동차가 아니라 화재 현장으로 뒤늦게 들어온 두 번째 전동차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로 가득 찬 지하철역사에서 승객들을 안내하는 어떤 매뉴얼도, 구조자도 없었다. 사고를 막을 어떤 장치도, 일어난 사고에 대처할 어떤 시스템도 찾아볼 수 없었다.

1995년 4월28일 상인동 가스폭발
2003년 2월18일 중앙로역 화재
두 사고로 293명 사망 300여명 부상

세계 지하철 사고 2·3위 하고도
제대로 된 참사 교훈 새기지 못해
지난해 진도 세월호 비극 되풀이

히로시마·광주·제주 사례처럼
아픔을 기억하는데서 교훈 얻고
지역의 긍정적 정체성 만들어야


세계 지하철 사고 가운데서 피해 규모가 가장 큰 것은 1995년 10월28일에 일어났던 아제르바이잔 지하철 화재 참사다. 달리고 있던 지하철에서 전기장치의 문제로 일어난 화재 때문에 대량의 가스가 발생하여 300명이 목숨을 잃었고, 265명이 부상을 당했다.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참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지하철 참사이고, 1995년 4월28일 일어난 대구 상인동 지하철공사 가스폭발사고는 세 번째이다.

대구 상인동 지하철공사 가스폭발사고는 1995년 4월28일 오전 7시52분경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영남고등학교 네거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지하철1호선 제1-2구간 공사장이었다. 사고 발생 지역으로부터 남쪽으로 77m 떨어진 장소에서 대구백화점 상인지점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도시가스 배관을 건드리는 실수가 있었다. 그라우팅을 위한 천공작업을 하던 중 도시가스 배관을 뚫어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새어나온 가스가 인근 하수구를 통해 지하철 공사장으로 유입되었고 이것이 어떤 불씨에 의해 폭발해버렸다. 폭발은 컸다. 무시무시한 폭발음과 함께 대형 불기둥이 솟아올랐고, 지하철공사장에 차량통행을 위해 설치해놓았던 철로 만든 덮개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 사고로 101명이 사망하고 20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는 대형공사장의 지하굴착이 제대로 된 절차와 방법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것이었다. 지하굴착을 위해서는 해당 관청의 도로굴착 승인을 얻은 후 가스관을 매설한 회사와 협력하여 지하가스관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공사를 맡은 회사는 이와 같은 원칙을 지키지 않고 함부로 굴착 작업을 진행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가스관을 파손하고서도 30분이나 지나서야 도시가스 측에 신고를 해서 피해를 키웠다.

세계 지하철 사고 역사에서 두세 번째로 큰 사고의 자리를 대구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담하다. 더 부끄러운 것은 우리가 이 사고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차례의 지하철 참사는 단순히 개인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만일 우리가 상인동 지하철공사 가스폭발 사고의 원인을 작업 도중 가스관에 구멍을 낸 현장기술자 때문이라거나,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참사의 원인을 정신지체장애인의 돌발행동 탓이라고만 말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진단이 아니다. 우리는 그 사고를 일어나게 만든 구조적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압축성장의 모순이다. 경제성장과 물질만능주의 때문에 사람의 생명이라는 가치조차 하잘것없는 것으로 여기는 세상, 이것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이다. 이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의 삶이 안전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상인동 지하철공사 가스폭발 사고에 대한 대책이 고작 지하매설물 ‘지도를 잘 그리자’라든지,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참사 후 안전사고에 대한 대안이 겨우 ‘전동차 내장을 불연재로 하자’라는 등, 그야말로 대증요법에 머무르는 한 우리의 생명은 안전할 수 없다. 대구의 지하철 관련 두 참사에서 우리가 제대로 된 교훈을 얻었다면 세월호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참사로부터 교훈 얻기는 ‘기억하기’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그 고통스러운 일을 똑똑하게 기억해야 한다.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일에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이 그렇다. 기억을 하려는 자와 기억을 지우려는 자들 사이의 힘겨루기가 있기 때문에 역사는 ‘기억을 위한 투쟁’이라는 말이 있다. 두 번째는 ‘기억의 재구성’이다. 그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보편적 가치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억을 우리 시대에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 지역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세월호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음에도 우리 지역사회는 그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20주년이 된 1995년 상인동 지하철공사 가스폭발사고에 대한 기억은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달서구 학산공원의 위령탑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2003년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참사도 마찬가지다. 팔공산 기슭에서 이름도 정체성도 분명치 않은 구조물로 겨우 남아있다. 가족을 잃고, 또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지탱하고 있는 부상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것은 우리 지역 사람들이 특별히 연민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억하려는 자와 기억하지 않으려는 자 사이의 권력 문제다. 기억하려는 자의 힘이 부족해서다.

나는 기억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두 차례의 지하철 관련 사고가 우리 지역으로서는 흑역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 지역의 긍정적 정체성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어두운 역사를 오히려 좋은 자화상으로 만들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히로시마는 원폭이라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이 기억을 재구성하여 히로시마는 평화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제주도는 현대사의 아픈 기억이 있다. 4·3. 제주는 그것을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켜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광주는 5월의 기억을 자유와 인권의 도시라는 가치로 다듬어가고 있다. 아시아의 인권, 세계의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꾸고 있는 것이다. 광주와 제주의 경험은 우리에게 좋은 암시를 준다.

대구는 거듭되는 사고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우리 지역을 ‘안전과 생명의 도시’로 가꾸어가야 한다. 안전과 생명은 그 어떤 가치보다 앞선다. 안전과 생명이 없으면 성장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복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두 차례의 지하철 관련 사고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대구를 ‘고담시티’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듣기 거북한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반발하기보다는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찰을 통해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키고, 그 역사를 우리 지역의 긍정적 정체성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 힘들어서 한동안 내려놓고 있었던 상인동지하철공사 가스폭발사고 추모행사가 올해 20주년을 맞아 학산공원 위령탑에서 있었다는 소식이나, 어려운 고비를 겪으면서 올해 12년째를 맞고 있는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참사 추모 사업이 최근 진전되고 있다는 소식은 ‘기억하기’에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 지역사회가 외로운 재난피해자들과 기억하기와 기억의 재구성에 함께 나섰으면 좋겠다.

김태일<영남대 교수·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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