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써드 퍼슨·차일드 44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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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9   |  발행일 2015-05-29 제42면   |  수정 2015-05-29

써드 퍼슨
여섯 남녀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중심엔 ‘로맨스’

20150529

로맨스와 미스터리 장르의 만남.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조합이지만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각본과 ‘크래쉬’를 연출한 폴 해기스 감독의 작품이라면 식상함은 곧 흥미로운 기대감으로 바뀐다. ‘써드 퍼슨’은 폴 해기스 감독이 50여차례의 수정을 거쳐 완성한, 그가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베스트 3위에 올려 놓은 작품이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신작소설을 집필 중인 퓰리처상 수상작가 마이클(리암 니슨). 그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파리까지 날아온 연인 안나(올리비아 와일드)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안나는 밀당이라도 하려는 듯 방까지 따로 쓰며 그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한편 미국인 사업가 스콧(애드리안 브로디)은 출장차 로마에 왔다. 모든 게 낯선 이곳에서 ‘아메리카노’라는 바를 발견한 그는 그곳에서 매력적인 집시 여인 모니카(모란 아티아스)를 만나게 된다. 스콧은 모니카가 두고 간 가방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그녀의 딸이 납치되어 있고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뉴욕에 살고 있는 줄리아(밀라 쿠니스)는 아들의 양육권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하지만 아들을 돌보고 있는 전 남편 릭(제임스 프랭코)은 그녀와 거리를 두려 하고, 줄리아는 양육권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마다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해 더욱 괴로운 상황에 빠진다.


파리·로마·뉴욕 배경의 세가지 테마
리암 니슨 전사에서 로맨틱 가이 변신
감독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 돋보여


‘써드 퍼슨’은 폴 해기스의 전작 ‘크래쉬’처럼 다양한 사연을 지닌 여섯 남녀를 설정해 그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그만의 화법으로 풀어간다. 다만 ‘크래쉬’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36시간을 향해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며 달려갔던 사람들의 삶의 날카로운 면에 주목했다면, ‘써드 퍼슨’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갈래는 다소 좁혀진 대신 좀더 복합적이다. 그 중심에 로맨스가 있다.

파리, 로마, 뉴욕을 배경으로 각각 출발한 세 테마는 시작과 동시에 궁금증을 유발하는 장치로 자극을 주고, 미스터리 방식으로 차츰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캐릭터의 동기 생략과 여백을 남겨두는 서사 방식이 이 과정에서 흥미롭게 작용했다. ‘써드 퍼슨’은 주인공을 소설가로 설정해놓음으로써 감독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하지만 그는 제3자의 입장에서 이들의 관계를 응시할 뿐 일체의 설명도 간섭도 하지 않는다. 옴니버스 영화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연결고리도 없다. 때문에 캐릭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개별적 서사를 완성해 나가게 되는데, 감독은 이를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열린 결말로 유도했다.

언제나처럼 다양한 개성을 지닌 화려한 출연진은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중 인상적인 건 액션 전사에서 로맨틱 가이로 돌아온 리암 니슨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드레스를 직접 선물하고, 방 한가득 흰 장미를 선물하는 모습은 왠지 낯설지만 신선하다. 미스터리한 매력을 보여준 올리비아 와일드는 그런 리암 니슨을 상대로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한다. 사랑과 의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스콧 역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보여준 애드리안 브로디와 사랑을 믿지 않는 집시 여인으로 분한 모란 아티아스의 심도 있는 연기도 눈길을 끈다. 스토리텔러로서 폴 해기스 감독의 천부적인 능력이 다시 한번 의미있게 발현된 작품이다.(장르:로맨스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차일드 44
러시아 연쇄 살인사건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음모

20150529

1952년 소비에트 연방. 전쟁 영웅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엘리트 군인 레오(톰 하디)는 절친한 전우의 아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완벽한 국가에서 범죄란 없다’는 스탈린의 기치를 지키기 위해 전우를 설득한 레오는 이를 단순한 기차 사고로 종결짓는다. 한편, 그의 상관인 쿠즈민(뱅상 카셀)은 레오의 아내 라이사(누미 라파스)가 스파이로 의심된다며 그에게 조사를 지시한다.

누군가의 모략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거스를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레오. 결국 사랑하는 아내를 고발할 수 없었던 그는 네스테로프(게리 올드만)가 대장으로 있는 지방 민병대로 좌천된다. 레오는 이곳에서 모스크바에서 발생했던 전우의 아들과 유사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아이의 시신을 발견하고, 동일범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53명 살해한 치카틸로 사건 모티브
스파이 누명 쓴 아내 지키기 위해
엘리트 군인, 공산주의 시스템에 반기


‘차일드 44’는 러시아에서 발생한 희대의 연쇄살인마 안드레이 치카틸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톰 롭 스미스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식인괴물’ ‘로스토프의 살인마’ 등으로 불리었던 안드레이 치카틸로는 1978년에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 후 12년 동안 53명 이상의 어린 아이와 여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범죄 스릴러물로서의 장르적 접근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하지만 ‘차일드 44’가 주목한 건 잔혹한 범죄 행각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보다는 사건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이다.

범죄가 일어날 수 없는, 또 일어나서도 안되는 완벽한 국가를 꿈꾸었던 소비에트 연방과 희대의 연쇄살인마라는 두 이질적인 요소의 만남은 이 영화의 흥미로운 출발점이 된다. 원작의 팬을 자처하며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작자로 나섰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원작의 풍부한 캐릭터 묘사와 시대적 관점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사실 ‘차일드 44’가 기존 스릴러와 차별되는 지점은 선악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천착하면서도 사회적 대립 구조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잔인함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일 것이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발생한 희대의 연쇄살인사건. 개인의 인권과 알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진실에 침묵해야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스템에 안주해 누구보다 편안한 삶을 누렸던 레오가 반기를 든다. 그 발단은 아내에 대한 억울한 스파이 누명에서 시작됐다. 이후 “누군가는 아이들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사건의 진실을 쫓게 된다. 국가 정의에 의심을 품고, 반역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며 결국에는 범죄자로 낙인이 찍힌 그는 이제 혼자 감당하기 힘든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엄혹했던 시대상을 전시하던 영화의 흐름은 이 순간 아동 연쇄살인범을 잡는 스릴러적 긴장감으로 채워진다. 다만 이 과정에서 아쉬운 건 이야기의 밀도감이다. 캐릭터에 대한 불친절한 배경 설명과 동기가 결과적으로는 이야기를 헐겁게 만들었다. 이를 상쇄한 건 톰 하디와 게리 올드만, 누미 라파스의 연기 조합이다. 특히 게리 올드만의 카리스마까지 잠재운 톰 하디 특유의 아우라는 시종 매력적이면서 인상깊게 영화에 녹아든다. 그런 그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차일드 44’는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장르:스릴러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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