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5] 김천 고대국가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7> 문학 작품에 담긴 1700년 前 시간

  • 임훈
  • |
  • 입력 2015-06-17   |  발행일 2015-06-17 제13면   |  수정 2021-06-16 17:44
‘땅에 묻힌 금효왕의 흔적…’ 조선 문인들 漢詩(한시)로 아픈 역사 기려
20150617
변화무쌍한 감천의 물길을 따라 번성했던 감문국은 다양한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시대를 이끌었던 당대의 선비들은 감문국의 역사를 인지하고 시로 남겨 후세에 전했다. 작은 사진은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에서 감문국을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금효왕의 무덤(김천시 감문면)으로 알려진 봉분.

 

◇ 스토리 브리핑

김천의 고대 읍락국가(邑落國家) 감문국(甘文國)은 후대의 문학에 큰 영감을 주었다. 옛 소국은 1천700여 년 전 신라에 병합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시(詩)로 남아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히 조선의 선비들은 감문국에 대한 시를 다수 남겼다. 조선 중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은 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한 시의 소재로 감문국을 선택했다. 

 

풍기군수 재직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書院)인 백운동서원을 세운 주세붕(周世鵬, 1495~1554)도 감문국과 관련한 시를 남겼다. 

 

김천 출신의 대문호인 적암(適庵) 조신(曺伸, 1454~?) 또한 자신의 시에서 감문국을 언급, 지역의 자부심을 드높이려 했다. 

 

김천을 상징하는 ‘금릉(金陵)’의 주인은 온데간데없지만, 그 역사는 옛 문인들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 7편은 감문국과 관련한 문학작품에 관한 이야기다.


 

# 실학자 유득공과 감문국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박지원·박제가와 같은 북학파(北學派)의 일원이다. 포천현감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청나라 등 외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흥시키려 했다.

유득공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깊이 있게 연구한 역사학자이기도 했다. 실제로 유득공의 저서 ‘발해고(渤海考)’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건국한 발해(渤海)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그는 조선 곳곳을 유람하며 역사지리에 눈뜨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옛 도읍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대표작인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는 이때의 기행을 토대로 지은 작품이다. 단군 때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연구하며 옛 도읍의 변천과 역사를 시문으로 엮은 한 편의 서사다.

총 43수로 구성된 ‘이십일도회고시’는 ‘단군의 왕검성’부터 ‘신라의 경주’ ‘대가야의 고령’ ‘고려의 송도’에 이르기까지 21개 도읍의 역사를 칠언절구의 한시로 담아냈다. ‘감문국의 개령’도 한 편의 시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감문국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부인은 간 지 오래인데 들꽃은 향기롭다
(獐妃一去野花香)

땅에 묻힌 낡은 비는 금효왕의 흔적
(埋沒殘碑去孝王)

크게 일으킨 군사 삼십명
(三十雄兵酋對發)

달팽이 뿔 위에서 천 번은 싸웠으리
(蝸牛角上鬪千場)


시에 등장하는 ‘장부인’은 감문국의 왕비로 알려진 인물이다. ‘땅에 묻힌 낡은 비는 금효왕의 흔적’이라는 시구는 신라에 패망한 감문국의 뼈아픈 역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 마지막 시구는 실제 ‘동사(東史)’에 전해지는 감문국의 역사를 노래한 것이다. 동사에는 ‘아포(현재 김천의 아포면 지역)가 조공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감문국 본국에서 30명의 대군을 동원해 진압하려 나섰지만, 감천의 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고 되돌아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이 내용을 예로 들며, 감문국의 국격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의 규모로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일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권태을 경북대 명예교수(문학 박사)는 “(유득공이 꼽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고도(古都) 21곳 중 한 곳에 김천 감문국이 포함됐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실학자의 입장에서 전설상 기록에만 의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감문국이 역사에 기록됐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권 교수는 “당시 감문국에 대한 기록이나 유적이 더 남아있었다는 추측이 들기도 한다. 유득공이 감문국을 특별하게 생각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21개 옛 도읍 시로 남긴 실학자 유득공
민족의 뿌리로 ‘감문국의 개령’ 노래

풍기군수 지낸 주세붕의 ‘무릉잡고’엔
비 내리는 감천 뱃길 담은 서정詩 실려

김종직의 처남인 조위·조신 형제도
고향 김천의 자부심 감문국 역사 읊어




# 풍기군수 주세붕과 감문국 유적

조선 중기의 문신 주세붕은 자신의 시문집 무릉잡고(武陵雜稿)에서 감문국을 노래했다. 당시 영남지역의 벼슬아치들은 주로 낙동강의 뱃길로 다니곤 했다. 풍기군수였던 주세붕 또한 마찬가지였다.

권태을 경북대 명예교수는 “상주가 본관인 주세붕이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뱃길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상주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 지류인 감천을 따라 개령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문국 옛 터에 초가을 비 내리는데
(甘文故國新秋雨)

백발의 풍기군수 이곳을 지나네
(白髮豊基太守行)

동루에서 진중히 술잔 나누니
(珍重東樓雙酒)

한 생에 친한 벗 사군의 정일세
(百年靑眼使君情)


시에 나온 ‘술잔’과 ‘친한 벗’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간다. 김천 지역에 주세붕과 교류를 나눌 만큼 학문이 깊은 선비들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조선시대 영남 인재의 절반을 배출했다는 선산 또한 감문국 도읍으로 가는 길목인 감천의 하류에 위치해 있다.

드높은 학풍과 더불어 유서 깊은 명승지는 선비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옛 소국의 아련한 흔적을 배경으로 감천변에서 풍류를 즐기는 것이 당시 선비들이 즐겼던 최고의 유희(遊)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 김천의 문풍(文風)을 엿보다

조선 전기의 명문장가이자 김천 출신인 조신은 자신의 시에서 감문국을 읊었다. 조신은 성종의 총애를 받았던 매계(梅溪) 조위(曺偉, 1454~1503)의 서제다. 형 조위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학문에 출중하였으나, 신분의 한계 때문에 큰 벼슬에는 이르지 못했다.

조위는 외국어에 능통한 덕분에 역관이 된 후 7차례나 명나라에 다녀왔다. 안남국(베트남) 사신과 시를 주고받은 일로 조선의 국격을 높였다는 평가가 있다. 1894년 무오사화로 형 매계가 유배당하자 김천에 은거했다.


일찍이 감문국의 한 고을이더니
(曾屬疳文一附庸)

비로소 도첩을 나누어 현이 되었네
(始分圖牒作雷封)

오늘날 군민이 극히 번성함은
(于今劇郡民繁庶)

선왕의 태실봉을 두어서였네
(爲有先王胎室峰)


조위의 시에는 고향 김천에 대한 자부심이 한껏 묻어나 있다. 시는 김천이 감문국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번성’이라는 시어와 함께 직지사 뒷산에 위치했던 조선 2대 왕 정종(定宗)의 태실까지 등장한다. 이러한 지역에 대한 자신감의 배경에는 영남사림의 종주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1431~92)과의 인연이 있다.

김종직의 본관은 선산이지만 김천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김종직의 아버지는 개령(김천시 개령면) 현감을 지냈기에, 김종직은 어린 시절 상당부분을 개령에서 보낼 수 있었다. 1452년에는 김산(김천) 봉계 현감 조계문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다. 조신·조위 형제는 바로 김종직의 처남들이다.

김종직은 말년이 되자 김천에 머무르며 후학을 양성했다. 58세 때 김천으로 낙향한 뒤 서당인 경렴당을 지었다. 전국의 선비들이 모여들었고 김천은 한동안 문예 부흥을 일궈낼 수 있었다.

이 밖에도 감문국과 관련한 문학작품은 여럿 있다. 개령현감이었던 장진환·이민보·이종상은 감문국의 옛 영화를 시로 표현했으며, 진사 박영무 또한 자신의 시 속에 감문국의 흔적을 그렸다.

글=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참고문헌= ‘유적으로 고찰한 감문국’ ‘(진·변한사 연구)진·변한의 성립과 전개’ ‘계명사학 제23집’ ‘국역 김천역사지리서’ ‘디지털김천문화대전’ ‘대구·경북 신석기 문화 그 시작과 끝’ ‘신라문화 제38집 별쇄본. 삼국사기 열전에 보이는 4~5세기 신라인의 활약상’ ‘김천시사’

▨ 자문단 △문재원 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이석호 김천향토사학회 회장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권태을 경북대 명예교수

공동기획 : 김천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