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절벽 중턱서 칠흑의 동해를 응시하다

  • 최나리
  • |
  • 입력 2015-06-18 07:25  |  수정 2015-06-18 07:25  |  발행일 2015-06-18 제2면
■ 호국보훈의 달 - 50사단 해룡연대 고포소초를 가다
밤 10시, 절벽 중턱서 칠흑의 동해를 응시하다
16일 울진군 북면에 위치한 육군 50사단 해룡연대 고포소초에서 최나리 기자(맨 왼쪽)가 장병들과 함께 해안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육군 50사단 제공>
밤 10시, 절벽 중턱서 칠흑의 동해를 응시하다
육군 50사단 해룡연대 고포소초 내 19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던 장소.
<육군 50사단 제공>

수심 깊어 잠수정 침투 쉬운 곳
무장공비 침투장소 지나니 섬뜩
파도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해변
수상한 움직임 매의눈으로 경계

육군 ‘강철부대’, 대구·경북의 방위를 맡고 있는 보병사단이다. 50사단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륙수호 외에 해안 경계 임무도 맡고 있다.

50사단이 담당하는 해안 경계 구간은 울진~영덕~포항까지 이어지는 동해 해안선으로, 총 연장 152㎞에 달한다.

동해안은 수심이 깊어 잠수정 운행이 용이하고, 해안만 통과하면 바로 산으로 진입할 수 있는 지형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50사단 해안경계 지역이 후방에 위치하면서도 최전방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오는 20일 50사단 창설 60주년을 맞아, 해안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해룡연대를 찾았다.

15일 오후 4시 울진군 북면에 위치한 육군 50사단 해룡연대 고포소초는 평화로워 보였다. ‘군부대’라는 단어가 주는 긴장감보다, 넓게 펼쳐진 바다와 소나무숲이 푸근한 인상을 안겨줬다.

하지만 막사에서 벗어나자마자 생각이 달라졌다. 해변에 설치된 철책 뒤로 붉은색의 ‘무장공비 침투지점’이라는 섬뜩한 글씨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군부대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곳은 1968년 10월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던 장소다. 당시 120명의 무장공비가 들어와, 107명이 사살됐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해안을 지키는 장병들의 의지는 결연했다.

고포소초장을 맡고 있는 이동수 중위는 “과거의 경험을 교훈삼아 소초원들은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적의 재침투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안 경계에 임하고 있다”며 “특히 해룡연대는 50사단 해안구간의 77%를 담당할 만큼 주어진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해룡연대 예하 부대 장병들은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해안경계에 힘을 쏟는다.

매일 밤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위에서 매복 근무하고, 일출 후에는 직접 해안철책 구간과 방파제, 해수욕장 등을 걸으며, 철책 상태와 적의 침투 흔적 여부 등을 육안으로 점검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근무에 나선 철책점검조는 시작점부터 철책을 일일이 확인하며 지나갔다. 의심스러운 곳은 여러번 흔들어보기도 했다.

일부 구간은 암석이 튀어나와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날 정도로 비좁았다. 파도가 덮쳐 철책 곳곳에 녹이 슬기도 했고, 일명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는 가파른 구간도 나왔다.

이마에는 이미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점검조를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강병훈 하사는 “밤 사이 철책이 훼손된 구간이 있는지, 적의 침투 흔적은 없는지 등을 직접 확인하는 절차다. 최근에는 병사들의 인력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안복합감시체계를 도입해 원격으로 감시하기도 한다”며 “고포소초는 50사단에서 최초로 해안감시카메라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후 경계 근무를 마친 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야간 경계근무에 나섰다.

시곗바늘은 밤 10시를 가리켰고, 주위는 이미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가파른 동해 절벽 중턱에 자리잡은 경계진지에서 밤바다를 살피는 병사들의 눈빛은 사뭇 날카로웠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암초를 때리는 파도소리뿐, 희미한 달빛에 해무까지 더해져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철모에 장착된 야간감시경을 쓰자, 밤바다는 조금씩 실체를 나타냈다. 암초의 위치는 물론 파도의 움직임 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날 함께 근무를 선 병사는 “야간 경계근무의 주된 목적은 야간감시경을 통해 적의 수상한 움직임을 잡아내는 것이다. 적이 언제든 침투해 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근무하고 있다. 기상여건 등에 의해 시야가 좋지 않은 날은 특히 더 집중한다”고 했다.

정연우 해룡연대장은 “북한의 도발에 대구·경북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언제든지 동해안을 통해 적이 침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해안 경계작전에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나리기자 choi@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