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뮤지션 나는 버스커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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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19   |  발행일 2015-06-19 제33면   |  수정 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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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구 동촌 구름다리의 대표적 버스커였던 손영찬씨. 지난해부터는 마음껏 버스킹을 하기 위해 수성못 동쪽 무대로 거점을 옮겼다. 하루 평균 5시간 이상 노래를 해도 박수갈채를 보내는 행인 때문에 더없이 행복하단다.

지난주 토요일(13일) 오후 7시30분쯤 대구시 수성구 수성못. 낮과 밤이 교차하는 풍광은 목가적이면서 감각적이었다. 석양이 소금쟁이처럼 수면 위를 돌아다녔다. 못 주변 커피숍과 상가의 불빛은 수면에 황홀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한 바퀴 30분 남짓 걸리는 산책로에는 싱그런 바람이 수런댔다. 시민들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못가로 100여m 데크형 산책로까지 갖춘 수성못은 유럽의 여느 호수 못지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영상음악분수가 환상적인 쇼를 벌였다.

하지만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못의 풍경보다 ‘거리의 무명 뮤지션’인 ‘버스커((Busker)’였다. 버스커는 ‘길거리 연주’란 의미를 가진 영어 ‘버스크(Busk)’에서 유래했다. ‘버스킹(Busking)’은 ‘버스커의 연주’를 뜻한다. 7080세대에겐 다소 생소할 버스커. 그 시절 대표적 버스커는 남사당, 판소리꾼, 악극단의 유랑악사, 각설이, 약장수 등이었다. 거리음악은 ‘설움’이었다. 버스커는 자신의 기예(技藝)가 생활에 위축되고 있었다. ‘결핍’의 이미지가 강했다.

국민 생활이 나아지면서 버스커도 따라서 진화했다. 소극적인 버스커에서 당당하고 적극적인 버스커로 발돋움했다.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은 남성 2인조 듀오 ‘수와진’이었다. 안상수·안상진 쌍둥이 형제는 86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심장병 어린이와 어려운 이웃돕기 공연을 시작했다. <사>수와진 사랑더하기 법인을 만든 둘은 국내 거리공연의 시발점이었다.

80년대 후반에는 서울 대학로가 ‘대한민국 젊은이의 문화 해방구’ 역할을 했다. 국내 버스킹의 출발지였다. 90년 어느 날엔 가공할 파워를 가진 두 명의 버스커가 샘터 파랑새 극장 앞에 등장했다. 바로 윤효상·김철민씨. 둘은 앰프도 사용하지 않고 맨목소리로 노래했다. 행인과 농담식 토크쇼도 벌였다. 대박이었다.

아쉽게도 대학로는 너무나 상업적으로 바뀌었다. 실망한 거리예술가들이 서울 홍대 앞 거리로 이동했다.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한 클럽 중심의 무명 뮤지션들이 인디밴드 문화를 일으켰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이 대낮에 ‘난장형 번개콘서트’를 열었다. 전문 연주자의 독자적 버스킹 문화가 조금씩 정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 거리에서 명실상부한 버스킹이 태동했다. 그 흐름에 불을 지핀 건 2000년대 중반 등장한 ‘좋아서 하는 밴드’였다. 2009년 연습실이 없어 홍대 앞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기 시작한 듀엣 버스커 ‘십센치(10㎝)’에 이어 2011년 슈퍼스타K3 준우승자였고 ‘여수 밤바다’ ‘벚꽃엔딩’으로 유명한 버스커버스커는 ‘버스킹 신드롬’의 주역이 됐다. 슈퍼스타K에 출연한 장재인, 로이킴 등의 영향으로 전국 곳곳에서 어쿠스틱 기타 배우기 열풍도 일어났다. 대구의 경우 6인조 인디밴드인 마쌀리나가 2009년부터 동성로에 이어 방천시장 등에서 버스킹을 전파시켰다.

버스킹 열풍에 재빨리 편승하는 지자체도 생겼다. 여수시는 지난 5월22일부터 오는 10월까지 여수엑스포역과 하멜전시관, 해양공원, 이순신광장, 돌산공원 등 도심 12곳에서 전국 버스커 1천300여명이 참가하는‘낭만 버스커 여수밤바다’축제를 열고 있다. 여수를 ‘버스킹의 성지’로 만드는 데는 버스커버스커의 힘이 컸다. 부산 해운대구도 전국에서 쇄도하는 버스커를 효율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거리공연 활성화 조례’를 제정해 하반기 시행할 예정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수성못 버스커의 눈빛은 초롱거렸다. 이날 밤 2.2㎞ 수성못 산책로에 무려 7팀의 버스커가 동시다발적으로 버스킹을 했다. 시민들은 자기가 원하는 포인트에 앉아 박수를 보냈다. 전국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자연발생적으로 ‘수성못 버스킹 존’이 형성된 것이다. W2면에 계속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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