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극비수사’ 공길용 형사役 김윤석

  • 윤용섭
  • |
  • 입력 2015-06-19   |  발행일 2015-06-19 제37면   |  수정 2015-07-10
“누가 이렇게 만들라 했어? 다 거짓말이잖아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20150619
김윤석은 다소의 부담감을 안고 ‘극비수사’와 마주했다. 이는 작품을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부담감 혹은 긴장감과는 달랐다. 얼핏 짐작은 가능하다. 복고풍 우려먹기라는 따가운 시선, 식상함이 느껴지는 형사물, 그리고 이미 결론을 알고 있다는 핸디캡에서 오는 부담감이었을 것이다.

“맞다. 게다가 40대 두 배우와 40대 감독, 이 바닥에선 나름대로 베테랑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호흡을 맞췄는데 군내 나고 올드하고 재미없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라는 얘기를 듣는다면 욕이란 욕은 다 먹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긴장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김윤석이 ‘극비수사’를 선택한 건 실화만이 지닐 수 있는 진정성의 힘과 매력 때문이다. 덧붙여 그는 “배경이 1978년이다 보니 지금처럼 첨단 장비, 과학 수사의 도움 없이 범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형사들의 수사 과정이 군더더기 없고,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접근법이 좋았다”고 했다. 김윤석이 ‘극비수사’를 담백한 백숙 같다고 비유한 이유다.

‘극비수사’는 1978년 부산에서 벌어진 실제 유괴 사건을 다룬다. 당시 유괴범 검거의 실제적인 주인공이었던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유해진)를 중심으로 그들의 신념과 소신을 담아간다. 김윤석은 유괴된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극비리에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인 공길용 형사를 연기했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투철한 사명감도 없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수사물이지만 가족이 극의 중심에 있는 영화, 정말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모처럼 연기적 갈증을 풀어났다고 말하는 김윤석.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낯설지 않은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빠로서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극비수사’도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다. 작품을 고르는 남다른 혜안이 있는 건가.

“글쎄. 신인 감독, 베테랑 감독 따지지 않고 작업을 한 편인데, 솔직히 ‘추격자’나 ‘완득이’의 경우처럼 흥행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출연한 영화는 별로 많지 않다. 관객들이 생각하기에 대작이라고 생각한 건 아마 ‘도둑들’ 정도일 거다. 그런데 정말 운 좋게 흥행이 잘 됐다. 혜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 있다. ‘극비수사’도 그랬다.”

▲그 매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굉장히 매력적인 시나리오였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던 유명한 사건을 다뤘는데,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유괴 사건이 빈번했었던 당시 상황들이 생각났고 영화적으로 흥미롭게 연결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기발하고 새롭거나 하진 않지만 주어진 재료만으로 충분히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고, 진정성만 있다면 재미 측면에서도 유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0619



사건 실제 수사담당
공길용 형사도
기분좋게 보셨더라

사주 수학적 측면에
선입견이 사라졌다


▲‘극비수사’를 닭백숙 같다고 표현했는데.

“당시 나에게 들어왔던 시나리오들은 할리우드를 답습하는 듯한 장르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 작품은 한국영화 같았다. 그런 영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극비수사’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장르적인 기교나 겉멋 든 캐릭터, 억지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는 요소들이 전혀 없었다. 일체의 양념 없이 드라마의 디테일만으로 우리가 바라던 것들을 충분히 획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가진 재료만 우려내도 구수한 국물이 나올 수 있고, 거기에 소금만 살짝 치면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의미였다.”

▲또 형사물이다.

“솔직히 한국 남자배우 중에 형사 역할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그만큼 지난 10년간 수사물이 유행했다. 개인적으로는 형사 역을 맡은 적이 있지만 진짜 형사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격자’에서는 전직 형사이자 포주를 맡았고,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형사지만 형사라고 하기에는 게으른 공무원 같은 캐릭터였다. 물론 ‘극비수사’가 하드보일드한 액션 수사극이었다면 출연을 고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공길용은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중년 남자로서의 모습이 강해서 출연을 결정했다.”

▲점이나 사주를 믿는 편인가.

“점과 사주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 있었으나, 이번 작품을 통해 사주에는 과학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굿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퍼포먼스의 느낌이라면, 사주는 수학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공길용 형사를 직접 만나본 적은 있나.

“얼마 전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에 김중산 선생님과 함께 나오셨는데 그때 처음 뵀다. 칠십이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어린애의 눈망울을 가지고 계셨다. 열정도 대단하시고. 공 선생님은 유도 유단자답게 지금도 몸이 좋으시다. 딱 보면 싸움 잘할 것 같은 다부진 체격 있잖나. 사실 그분들을 만나기 전 걱정을 좀 했다. ‘누가 영화를 이렇게 만들라고 했어, 다 거짓말이잖아’라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되게 기분 좋게 보셨더라.”

▲그분과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었나.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 엄마 얼굴을 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하시더라. 62㎏ 나가던 분이 42㎏으로 체중이 줄어드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거지. 공 선생님은 거의 30일 정도를 유괴된 아이의 집에서 먹고 자고 했다. 유괴범으로부터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서였는데 당시의 상황은 정말 말로 설명이 안된다고 하시더라.”

▲당신도 두 아이의 아버지다. 이번 작품에 대한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시나리오를 받다 보면 유괴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종종 있다. 솔직히 부모의 입장에서 결과가 좋지 않은 유괴 사건의 시나리오는 선택이 힘들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 결과가 좋았던 터라 부담감은 덜했다. 또 공길용 형사님의 소신 있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 캐릭터에 대한 매력을 더 느꼈고, 뜻깊게 촬영에 임했다.”

▲당신은 센 캐릭터의 이미지로 대중에 각인돼 있는데 실제의 모습은 어떤가.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 두루뭉술하고 힘이 더 빠져있다고 보면 된다. 영화에서처럼 평소에도 막 힘주고 다니면 피곤해서 어떻게 사나. 집에 가면 러닝셔츠에 반바지 하나 입고 축 늘어져 산다. 영화 초반 TV 보면서 누워있는 모습이 딱 집에서의 내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20150619





러닝셔츠에 반바지
집에선 늘어져 산다
귀찮아서 운동 안해

김호정·김소희씨와
호흡 맞춰보고 싶다

 


▲감독의 특별한 주문은 없었나.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별다른 디렉션이 없었다. 그냥 믿고 맡겨주셨다. 오히려 오케이를 빨리 하는 바람에 내가 ‘한 번 더 해봅시다. 더 좋은 게 나올지 어떻게 압니까’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그러면 ‘그렇게 하이소, 하이소’ 한다.(웃음) 감독님도 속으로는 땡큐 했을 거다. 사실 이런 조합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주연 중에 10대도 있고 여자들도 끼게 되는데 이번에는 딱 40대 남자 세 명이 만났으니까. 그런 재미가 있더라. 안 통하는 말이 없었으니까.”

▲이런 작업이 처음은 아닐 텐데.

“흔치는 않다. 전에 ‘해무’나 ‘화이’ 등은 무리 속에 있었다. 나 혼자 전면에 등장하는 작품은 ‘남쪽으로 튀어’ 정도다. 우리나라는 주연으로 한번 올라서면 차기작에 조연급으로 출연해도 자꾸 주연으로 올리는 것 같다. 나는 늘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왔다. 주연을 하면 다음에도 또 주연을 해야 한다? 모르겠다. 주연을 안 하면 자기가 깎여 내려간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대한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나는 내 필모의 대부분은 조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비중 있는 조연이다. 선배 소리를 듣는 우리들이 먼저 프리하게 풀어줘야 밑에서 올라오는 후배들이 유연성을 가지게 된다. 왜 피곤하게 사나. 내 이름이 두 번째, 세 번째로 나오면 어떤가. 연기하는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한 거 아닌가. 비중에 대한 강박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한다.”

▲캐릭터 준비를 따로 한 건 있나.

“그냥 걷기만 해도 형사 같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옛날 흑백 TV 속 드라마 ‘수사반장’ 형사들의 모습을 기억할 거다. 최불암 선생님이 ‘안 나가고 뭐해’라고 호통치면, 마지못해 일어나서 어슬렁어슬렁 나간다. 그러고는 한마디 하지. ‘왜 아침부터 나한테 신경질을 부리고 그래.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런다. 당시 형사들의 모습이 그랬다. 굳이 멋을 낼 필요도 없었고, 펜과 수첩, 점퍼 하나 걸치면 끝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스로 가장 운동을 안 하는 중년배우라고 했는데 운동을 일부러 안 하는 건가.

“귀찮아서 안 하는 거다.(웃음) 그리고 액션물에 출연을 많이 했지만 특별히 근육질의 몸을 요구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추격자’에서 전직 경찰 출신의 포주로 나온다. 포주인데 무슨 운동을 하겠나. 맨날 술이나 마시고 자장면 시켜 먹으면서 화투나 치고 살겠지. 그런 사람을 운동한 사람처럼 보여주면 리얼리즘이 살겠나. 물론 개인적으로 운동은 한다. 제일 자신 있는 운동이 수영이고, 꾸준히 하고 있다. 산에도 가끔 가고. 그래도 내가 좀 운동신경이 있는 편인 것 같다. 내 생각은 아니고 나하고 작업을 한 무술감독들이 그렇게 말하더라.”(웃음)

▲한때는 힘들어서 연기를 포기할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고맙고 감사하게 연기를 하고 있다. 사실 나이 40 중반이 넘으니까 더 무섭게 생각되는 게 있는데, 혹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런 의문이 들 때면 소름이 끼친다. 나는 내 인생의 반 토막을 살았다. 그래서 지금은 검증을 하는 중이다. 물론 이 일이 너무 좋다. 다양한 사람하고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인 직업이다. 웃긴 얘기인데 지방 촬영을 가면 여관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배우와 스태프가 다 들어간다. 밤에 복도를 다니다 보면 그들끼리 술 마시고 노는 모습을 보는데 마치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나이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늙어서 큰 집으로 이사 가는 놈이 제일 바보라고. 크고 거창한 것보다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즐겁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면 제일 좋은 것 같다. 아직까지는 그게 연기다.”

▲특별히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배우가 있나.

“김호정씨다. 최근 영화 ‘화장’에 출연했는데 인상 깊었다. 함께 작업을 한 적은 없는데 같은 연극배우 출신이고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다. 그분과는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 또 개봉을 앞둔 ‘파스카’에 출연한 김소희씨가 있다. 예전에 나와 (송)강호씨, 소희씨와 함께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대학로의 보석 같은 여배우였다. 그런 배우들이 다시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고 함께 작업을 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오롯이 연기력만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 동력을 뭐라고 생각하나.

“그 동력은 동료들의 힘이다. 나보다 더 좋은 작품을 하고 나보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경쟁심이 생기고, 나도 더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줘야지 하는 자극을 받게 된다. 내 연기적 동력은 그렇게 시너지가 발생하면서 더불어 성장하는 것 같다. 특히 요즘은 연기 잘하는 후배들이 너무 많아서 계속 자극을 받고 있는 중이다.”(웃음)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김현수(프리랜서) dada2450@hanmail.net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