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문경시 가은읍 전곡리 영류정과 소양서원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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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19   |  발행일 2015-06-19 제38면   |  수정 2015-06-19
‘물은 푸른 산 안았고 산은 푸른 물 안았네’…영류정에선 누구나 푸른 마음
주세붕 선생의 영류정 시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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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년 나암 정언신, 인백당 김낙춘 등 지역의 5현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소양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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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가은읍 전곡리 영류정과 소양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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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마야 박물관 입구. 구 문양초등학교를 전시관으로 꾸몄다. 전시실 내부는 1,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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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처사 신숙빈 선생의 재실인 구수재. 전곡리 소양동에 위치한다.


후학 양성 김낙춘 선생
영강 위에 영류정 세워
동그란 연못을 돌아 서면
지역 5현 모신 소양서원

 

소양동 마을 들 가운데엔
신숙빈 선생 재실 구수재

 

옛날 문양초등학교에는
전 볼리비아 대사 부부가
사재 털어 개관한 잉카마야 박물관


산과 들과 나무가 매양 초록이다. 지글지글 타는 초록이다. 세쌍둥이 같은 초록이다. 그 속에서 혼자 하늘로 솟구치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토록 유난스럽지 않았다면 다만 초록이라고 지나쳤을 텐데. 문경 전곡리 소양동의 은행나무는 산골의 무자비한 초록들 속에서 마을의 이정표처럼 서 있다.

◆ 전곡리 소양동의 소양서원과 영류정

수령 150년. 은행나무는 그 시간동안 마을의 나무로 자리해 왔다. 나무그늘 아래 자그마한 우물가에서 사람들은 밭일하던 손발을 씻고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나무그늘 아래 자그마한 마을 회관에서 사람들은 한가한 시간들을 나누었을 것이다. 노랗게 단풍드는 나날들보다 이런 초록의 나날들 동안 나무는 산처럼 마을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 뒤에, 은행나무와 마을과 앞들과 영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멋있는 정자 하나가 서있다. 순천김씨 인백당 김낙춘 선생이 세웠다는 영류정(映流亭)이다. 영강을 바라보기에 영류정인가? 선생은 가은의 산수에 반해 이곳으로 와 소양동 강 위에 영류정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강 위가 아니라 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자의 위치가 바뀌었을 듯하다.

영류정 뒤에는 선생의 재사인 존승재(尊承齋)가 자리한다. 건물의 세부는 많이 퇴락하였지만 전체의 단정한 품격은 남아있다. 선생은 원래 안동 가곡동에서 태어나 퇴계선생의 문인으로 벼슬에 누차 천거되었지만 사양하고 글 읽기와 후학의 양성에만 전념했다 한다. 존승재는 그런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1710년경 후손들이 건립했다.

영류정과 존승재의 왼쪽에는 동그란 연못이 하나 있다. 별다른 장식 없이 몇 그루 나무만이 서있지만 묘하게 마음을 흔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노니는 물고기 하나 없는 물속에 영류정이 흐릿하게 들어앉아 있다. 연못을 빙 돌아 서면 또 다른 건물 하나가 물속에 들어선다. 연못의 왼쪽에 자리한 소양서원(蕭陽書院)이다.

소양서원은 숙종 때인 1712년 향리의 유림들이 지역의 선현들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다. 서원에는 나암(懶菴) 정언신, 인백당(忍百堂 ) 김낙춘, 가은(嘉隱) 심대부, 고산(孤山) 남영, 가은(稼隱) 이심 등 5현이 모셔져 있다. 영조 때인 1745년에 한차례 훼철되었고, 흥선 대원군의 서원 훼철 때도 사당이 철거되었다. 이후 강당과 동재만 남아있던 것을 1990년에 복원하였다. 말끔하고 단정한 강당 뒤로 사당으로 오르는 계단이 엄숙하다. 내삼문과 낮게 둘린 흙돌담이 제향 공간을 엄숙하게 경계 짓는다.

◆ 구수재

소양동 마을 앞 들 가운데 잘 가꾸어진 기와집이 있다. 1610년에 건립했다는 평산신씨 한천처사 신숙빈 선생의 재실인 구수재(龜壽齋)다. 처음에는 후손들이 묘소 아래 모옥(茅屋)으로 세웠는데 이후 1812년에 기와집으로 다시 세우고 칸 수도 늘렸다. 선생은 신숭겸의 17세손이자 신사임당의 종조부로 주부와 사헌부 감찰을 거쳐 거창 현감을 지냈다. 이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선생은 관직을 버리고 고개를 넘어 이곳 문경 가은으로 왔다. 그때부터 평산신씨가 이곳에 정착했다 한다. 이후 중종이 등극하여 선생에게 수차례 벼슬을 권하였지만 그때마다 고사하였다 전한다. 선생의 가은에서의 삶이 시로 전해진다. ‘산도 있고 물도 있는 곳에 / 영화도 없고 욕됨도 없는 내 몸일세 / 밭 갈며 하루해를 보내고 / 약초 캐며 청춘을 보내노라.’

◆ 잉카 마야 박물관

전곡리 소양동 앞 영강을 가로지르는 문양교를 건너면 2층의 작은 옛 초등학교가 있다. 1945년에 개교해 2002년 문을 닫은 구 문양초등학교다. 이곳은 지금 잉카마야 박물관이자 캠프장이다. 박물관은 전 볼리비아 대사 부부가 중남미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사재를 털어 개관했다. 중남미에서 몇십 년 동안 살면서 모은 그림과 가구, 수공예품 등이 빼곡하다. 신비롭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접하기 어려운 이국의 문화를 쉬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 문경 방향 점촌, 함창IC에서 내린다. 3번 국도를 타고 충주, 문경읍 방면으로 가다 901번 지방도로 가은읍으로 간다. 가은읍 사무소 지나 조금 더 가면 전곡리 소양동이다. 마을 앞에서 문양교를 건너면 잉카마야박물관이 자리한다. 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3천원, 아동 2천원.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 일요일은 오후 1시까지 개관한다. 매주 화요일은 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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