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시인의 시골에서 .6] 옻음식의 계절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5-06-19   |  발행일 2015-06-19 제39면   |  수정 2015-06-19
“옻은 인삼·돼지고기·어류와 함께 먹으면 뒤탈…요리엔 고춧가루 피해야”
20150619
옻나무 성분 중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플라보노이드 계통 성분이다. 항산화 물질로 알려진 이 성분은 옻나무 심재에서 나온다.
20150619
옻을 넣어 개발한 냉채
20150619
옻을 넣은 메밀국수
20150619
옻을 넣은 칼국수

유월이 시작되면 옻음식이 본격화된다. 시중에 있는 옻닭과 오리집 매상이 급속히 올라간다. 더위와 함께 우리 민족이 보양식으로 닭과 오리에 옻을 넣어 먹는 풍습이 낳은 결과다. 국내 옻 소비량은 이때를 기준으로 해서 9월 말 더위가 물러날 때까지 급속하게 늘어난다. 국내 옻 소비의 절반 이상이 이 기간에 일어난다. 국내 옻 식품은 아직도 두 가지 시장이 양분되어 있다. 식품위생법상 합법적인 식품 원료와 전통적인 원료를 쓰는 방법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식품 허가를 얻어 사용하는 식당과 업자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우루시올을 제거해야 되고 옻나무도 특정 부위만 사용해야 한다. 옻의 독성을 제거하지 않으면 섭취한 사람은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심한 간손상을 입는다. 동물 실험을 해보면 독성을 제거하지 않고 옻 추출물을 장기 투여한 실험 쥐들은 간경변 현상을 일으켰다. 몸 속에 들어온 독성을 해독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간기능이 혹사 당해서 생긴 현상이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은 옻을 즐긴다.


여름철 옻닭은 냉병에 효과 뛰어나

옻을 식용하는 데 독성제거가 과제
효소 이용하는 방법 등 다양

옻나무엔 100여가지 천연물질 함유
신약 개발 시도해 볼만

북한선 옻나무·닭발로 관절염 치료

◆ 하절기 보양식의 리더 옻 음식

사람들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옻닭을 찾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대부분 속이 찬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흔히 말하는 ‘냉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다. 그다음이 장이 안 좋은 사람들이다. 옻은 장을 좋게 하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옻에는 헬리코박터를 죽이는 성분이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옻 음식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년도 되지 않는다. 옻나무에서 채취하는 도료용 칠이 수출되지 못하면서 본격적인 옻의 식용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탓이다. 농림수산부 시절, 서울대와 산림청이 주축이 되어 국내 학자들이 대대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옻나무의 독성을 제거하고 식품 활용의 합법적인 근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나온 것은 옻나무와 여러 가지 한약재를 섞어 독을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그다음이 옻나무에서 우루시올 성분을 추출하는 기술들이었다. 나중에는 방사선을 활용하는 기술까지 개발되었지만 방사선 때문에 활용되지 못했다.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숱한 실험과 분석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법적인 근거도 마련되었다.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옻이 식품의 원료로 등재되고 일반화되면서부터 전통 옻식품도 다양한 모습으로 그 형태를 바꾸어 왔다. 그저 단순히 닭과 오리를 옻나무로 삶던 방식에서 해산물이 들어가고, 밀가루와 결합된 형태도 나타났다. 고기를 구울 때 옻으로 만든 장류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보급되었다. 옻이 들어간 술과 식초 제품도 등장했다.

◆ 옻 제독 방법

정부가 방법을 찾아 나서기 전부터 민간에서는 나름대로 옻 제독 방법들이 전승되고 있었다. 대구 지역만 하더라도 일부 승려들은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옻나무를 땅속에 파묻었다가 사용한 것이다. 팔공산 거조암에 거주하던 스님 중에서는 수행 방법 중 하나로 옻을 이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60년대까지만 해도 특정한 흙에 옻나무를 묻었다가 한두 해가 지난 뒤에 톱질을 해서 옻죽을 끓여 먹었다는 이야기를 한 노스님에게 들었다. 절에서 수행하다가 기가 위로 치솟는 ‘상기병’이 들었을 때 쓰는 비방이었다.

사찰의 그런 방법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있었다. 북한에서는 옻의 독성을 다스리기 위하여 명태를 섞어 끓이는 방법이 있었다. 명태의 해독성을 이용해 옻나무의 알레르기 물질을 제거하겠다는 방편이었지만 독성이 감소할지언정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는 단점이 있다.

이런 방법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사용하여 옻 식품 업자들은 우루시올을 제거하여 식품 원료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효소를 이용해 옻의 독소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농진청에서는 아까시 버섯의 균주를 이용해 옻나무의 독성을 제거한다. 이 방법으로 독성이 제거된 옻나무는 술·장류·식초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최근에 선보이는 옻술이나 식초, 장류가 그것이다. 이 방법은 생산과정이 복잡하고 전문화된 기술이 필요하다. 그보다 더 쉬운 방법은 맥주 효모를 이용해 옻의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옻나무를 분쇄하여 톱밥을 만들고 여기에 맥주 효모균을 넣어서 우루시올을 제거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장수를 이용해 옻나무 독성을 제거하기도 한다. 지장수에 있는 미생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식품위생법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열을 이용하여 옻의 독성을 휘발시키는 것이다. 보다 정밀하게 하기 위하여 추출물을 정제하기도 한다. 관련 특허만도 10여 가지에 이를 정도다.

◆ 옻을 이용한 신약

사람들은 이런 재료를 두고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독성이 사라지면 옻 고유의 효능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옻나무에는 100여 가지 천연물질이 함유돼 있다. 그중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푸시틴, 셀퍼레틴 등과 같은 성분들이다. 일부에서는 이것을 이용해 천연신약 개발을 검토하기도 했다.

옻나무의 성분 중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플라보노이드 계통 성분들이다. 대표적인 항산화 물질로 알려진 이 성분은 옻나무의 심재에서 나온다. 옻나무를 자르면 목재 안에서 보이는 노란 성분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성분은 토코페롤보다 2배 더 높은 항산화 성향을 보인다. 이 성분들은 사람들의 면역력을 높이고 혈장을 풀어내는 특성을 보인다. 옻닭이나 오리에서 잡내가 나지 않는 것은 이 성분들이 작용해 근육 사이에 있는 핏기를 제거하고 노폐물을 분리해 내기 때문이다.

옛 어른들은 옻나무의 이런 특징을 이용해 보양식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또 짐승의 치료에도 이용했다. 닭이 병들면 옻밭에다 던져 놓고 스스로 치유되어 나오기를 기다렸다. 바이러스에 약한 닭은 옻밭 속을 하루이틀 거닐고 나면 생기를 얻어 살아 나왔다. 옻이 가진 항바이러스 성분들이 낫게 한 것이다. 이런 옻의 특성을 이용한 조류들의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해도 옻나무 소비 시장은 급속하게 팽창할 수 있을 것이다. 감기 치료제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강, 계피와 함께 독성이 제거된 옻나무를 끓여서 마시는 것이다.

◆ 옻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

옻을 이용한 음식들도 민간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이용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 사람들이 즐기는 ‘옻개’다. 개고기와 옻을 함께 삶아서 보양식으로 먹는다. 산토끼와 돼지족발을 이용한 음식도 일부 민간에서는 먹고 있다. 이들이 정식 식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식약청의 제약 때문이다. 옻은 옻닭과 옻오리 원료로만 사용해야 된다.

문제는 옻닭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는 규격화된 조리법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옻과 닭을 넣어 끓이는데 여기에 해물이 들어가도 옻닭이 되고 오리 요리를 할 때 옻물에 재웠다가 구워도 옻오리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기존의 옻닭과 다른 방법으로 옻을 활용한 사례들이 있다.

20150619

북한의 사냥꾼들은 옻나무와 닭발을 이용해 자신들의 관절을 다스린다. 닭발이 가진 콜라겐과 옻의 항염성이 결합돼 약효가 생긴 때문이다. 나이 들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인들의 건강식으로 이용됐던 것이다. 최근에는 옻나무 추출물에서 갱년기 장애를 조절하는 물질이 발견돼 식약청에서도 개별 인증 건강식품으로 허가해주었다.

옻닭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옻의 항바이러스 성분을 널리 알려 달라고 이야기한다. 체력이 떨어지는 여름철 옻닭이 보양식으로 널리 먹히는 것은 면역력이 강화된 증거 아니냐는 이야기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제도권 기관들은 생각보다 보수적이며 다른 나라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을 선뜻 채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옻을 연구하던 일부 학자들은 초창기에 옻을 투여한 실험용 쥐에서 백혈구 증가 현상을 두고 다양한 견해를 보였다. 그들은 이를 바탕으로 면역력 강화 현상을 연구하려 했지만 정부 지원이 끊어지자 지속적인 연구를 하지 못했다. 정부 지원 정책에 매달려 연구하는 학자들의 한계였다.

옻 음식도 궁합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루시올 독성이 제거되지 않은 옻나무를 취급하는 사람은 해산물과 상극을 이루는 옻의 특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쉽게 상할 수 있는 재료는 옻과 같이 섭취하면 안 된다. 위장에서 산패가 일어나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옻과 오징어, 고등어 등과 같은 생선류의 섭취를 막았다. 돼지고기 역시 마찬가지. 옻을 먹을 때 또 피해야 하는 것은 인삼이다. 삼의 기운이 기운을 머리 쪽으로 이끄는 데 비하여 옻은 사람의 열을 장 쪽으로 이끌어 혼용을 금지시켰다. 참고로 옻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할 때 피해야 하는 것은 고춧가루다. 고추의 매운맛은 옻과 만나 항산화성이 강조되어 맛이 어디로 갈지 모르게 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옻으로 된장·간장을 만들지만 고추장은 만들지 못하게 했다. 옻 요리가 단품으로 조리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