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도긴개긴이건 도찐개찐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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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22 08:04  |  수정 2015-06-22 08:04  |  발행일 2015-06-22 제15면
[행복한 교육] 도긴개긴이건 도찐개찐이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는 ‘시도’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말하는 것, 그대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듣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듣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이해하는 것, 내 생각과 그대의 이해 사이에 이렇게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의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것’과 ‘그대가 듣는 것’이라는 사실 사이에 이처럼 많은 오해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지, 학교에서도 참 갑갑할 정도로 소통이 잘 안 될 때가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끼리도 불통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 걱정이다.

근무하는 학교가 학생 수에 비해 유휴 교실이 부족하여, 3학년 담임선생님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한 교무실을 쓰고 있는 데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저마다의 볼일을 가지고 아이들까지 교무실에 찾아와서 교실 2칸짜리 교무실이 늘 복잡하다. 그런데 학창시절에 다들 경험해 보았듯이 아이들, 특히 중 1학년 아이들의 교무실 방문은 목적이 두어 가지에 한정되어 있다. ‘고자질하거나’ ‘따라오거나’….

그런데 문제는 이 아이들이 하는 말이 참으로 어렵다는 데 있다. 달리 어려운 게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정도는 되게끔 말을 해야 함에도 이들의 말은 너무 짧아서 어렵다. 고자질하는 아이의 말을 다섯 가지 이해하려면 다섯 번의 질문을, 열 가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 번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사이에 따라온 아이가 제 딴엔 도와주겠다고 입을 열면, 이 열 번의 질문은 열다섯 번으로 늘어나면서 배는 더욱 산으로 가고 만다.

모든 의사소통의 기본단위는 두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인(對人) 간의 의사소통이다. 그러나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필요할 때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의사소통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여러 개의 연결점을 갖는 네트워크를 만들게 되는데, 이러한 네트워크 사회를 더 빨리, 더 쉽게 다가오게 만든 것은 당연히 스마트폰이다.

우리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심지어 연인이 찻집에서 마주 앉아 마시고 싶은 것을 서로 스마트폰에서 말하고 있다. 불과 5년도 안 된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 스마트폰 속의 가상 생활에서는 의사소통이 거의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 할 말을 마구 쏟아 내어도 앞에서 못하게 말리는 상대가 없다 보니 내 욕구, 내 요구만 일방적으로 표시한다. 물론 상대방도 다 마찬가지다. 때로는 열 명이, 스무 명이 각자의 말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많은 말을 하기 위해서 자연히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어 축약어도 생겨나고, 말줄임표도 남발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지금은 ‘어색하지만 정확한 도긴개긴’을 써야 하는가, 아니면 ‘입에 짝 달라붙는 도찐개찐’을 써야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아이들이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상대방의 눈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최소 두 문장 정도라도 펼쳐내게끔 하는 지도를 게을리하다가는 곧 대한민국 대표 축약어 ‘ㅋㅋ, ㅎㅎ, ㄴㄴ, ㅇㅇ’가 빨라지고 진보하는 현대 사회에 걸맞은 언어로 자리매김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베르베르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장성보<대구 성서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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