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할머니, 매일 꽃단장하고 가요교실로…활기찬 노년 보내는 정귀동씨

  • 김점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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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24   |  발행일 2015-06-24 제12면   |  수정 2015-06-24
가수꿈 놓지 않고 후배들 양성
“노래할 수 있어 외롭지 않아요”
94세 할머니, 매일 꽃단장하고 가요교실로…활기찬 노년 보내는 정귀동씨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대구시 동구 지저동 정귀동 할머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가는 세월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신체 기능과 기억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마음 먹기에 따라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셈이다.

대구시 동구 지저동에는 실제 이런 생물학 법칙을 거스르고 활기찬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이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정귀동 할머니(94). 정 할머니는 매일 오전 9시면 곱게 화장을 하고 쪽머리에 비녀, 한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걸음걸이나 몸매로 봐선 도저히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정 할머니는 이미 음반을 낸 적도 있다. 1986년 65세때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도 가수로서 꿈을 접지 않았다. 매일 음악학원과 가요교실로 출근하며 후배들을 키운다. 동네에서도 할머니는 유명인사다. 이영희씨(57)는 “항상 한복을 차려입고 화장을 하고 다니는 모습이 독특했다. 곱게 늙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고 말했다.

정 할머니의 일대기를 살펴보자. 1922년 포항에서 1남3녀 중 장녀로 태어나 포항여고를 졸업하기까지 문학 전집을 읽는 그저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도 잘 불러서 가수가 되려고 했지만 당시엔 언감생심이었다. 결혼 후 3남2녀를 키우면서 한동안 음악을 잊고 살았다. 안타깝게도 남편이 먼저 이 세상을 뜬 뒤 상심에 빠졌다. 정 할머니에게 한 가닥 위안이 된 건 역시 노래였다. 작곡가 이병주씨와 앨범 제작을 통해 신뢰가 쌓이면서 재혼에 골인했다. 부부는 ‘노래’로 만났다고 자랑하는 잉꼬부부다. 남편 이씨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20대의 사랑보다 더 뜨거웠다고 후배들은 전한다. 정 할머니는 이후 남편 이씨와 황금사회복지관 가요반의 부부 강사로 활동했으나 재혼한 남편마저 3년 전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된 할머니는 그래도 외롭지 않다.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찾아 도시를 누비는 할머니는 여전히 현역이다. 지레 포기한 수많은 꿈들이 할머니 앞에선 부끄러울 뿐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다.

글·사진=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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