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매국과 애국의 섬 대마도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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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03   |  발행일 2015-07-03 제39면   |  수정 2015-07-03
지금은 진주 양식장…조선침략 왜군 함대 숨어 있었던 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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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카츠 인근 오우라(大浦)항 내해는 임진왜란을 목전에 앞두고 600여척의 왜군 함선이 숨어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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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이완용이 이토 히로부미의 통역비서였던 고쿠분 쇼타로의 죽음을 애도해 쓴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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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잔지(西山寺)에 있는 김성일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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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하라시에 있는 옛 한국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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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하라시에 있는 옛 표류어민 숙소. 지금은 자위대 대마주재원 사무소다.


지난달 26일 오후 대마도 이즈하라항 입국수속장. 한국관광객이 몰려들자 일본의 세관직원과 입국심사관이 모두 긴장하는 눈치다. 다들 마스크를 낀 채 꼼꼼하게 심사를 한다. 메르스 때문이다.

기자가 대마도를 찾은 건 이번이 네 번째다. 갈 때마다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새롭다. 하지만 익숙한 것도 있다. 항구 위 공중을 날며 먹이를 찾는 물수리, 전주에 앉아 까악까악 울어대는 까마귀소리, 이즈하라시내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신호등 소리.

이번 여정의 가이드는 특별하다. 황백현 발해투어 대표(68)가 직접 일행을 인솔했다. 황 대표는 대마도를 1천여차례 왕복한 대마도 전문가이자 문학박사다. 한국독도대마도아카데미 이사장인 그는 박사학위 논문도 대마도에 대해 썼다.

한반도와 식생이 유사한 대마도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관련 사적지·유물 수두룩

일제침략 앞잡이 흔적도 곳곳에
면암 최익현 순국비 있는 수선사
현판은 日작위 받은 김학진이 써
고쿠분사엔 매국노 이완용이 쓴
일제 통역사 고쿠분 애도 묘비명

◆대마도엔 매국과 애국이 같이 있다

황 대표가 일행을 안내한 첫 번째 코스는 이즈하라시 수선사(修善寺)다. 일본말로 슈젠지. ‘선을 닦는다’는 이 사찰의 현판 휘호는 고종 때 공조·형조판서를 지냈던 김학진이 썼다. 그는 1910년 한일병탄 후 일본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슈젠지에는 구한말 위정척사운동의 거두인 면암 최익현의 순국비가 있다. 그는 74세의 나이로 대마도에 끌려와 5개월간 감금됐다 1907년 단식순국했다. 친일 매국관리가 쓴 사찰의 현판글씨와 애국지사의 비석이 나란히 있다는 게 씁쓸하다. 황 대표의 제의로 일행은 잠시 묵념을 했다.

다음 코스는 뼛속까지 매국을 한 이완용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쿠분사(國分寺)다. 이 사찰은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1862~1921)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다. 고쿠분은 대마도 출신으로 소싯적 부산 초량의 어학소와 도쿄 외국어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의 비서로 한국에 와 을사늑약과 한일병탄늑약 체결 때 통역으로 활약했다. 고쿠분은 1906년 통감부 서기관 겸 통감 비서관, 1910년 조선총독부 인사국장 겸 중추원 서기관장 등을 거쳐 1917년 1월에는 이왕직(李王職) 차관까지 올랐다.

1921년 9월7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그는 9월5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서모씨 결혼피로연에 참석했다 술을 두어 잔 마신 후 토사를 하다 장에 구멍이 뚫려 사망했다고 보도됐다. 그의 시신은 이듬해 대마도로 옮겨졌다. 매국노 이완용은 그의 죽음을 애도해 비명을 써줬다. 묘비는 고쿠분사 뒷산에 있는데 지금은 천택사(天澤寺) 소속 공동묘지다. 옛날엔 고쿠분사와 천택사 가는 길이 연결돼 있었으나 지금은 막혔다. 천택사 입구를 지나 산으로 약 5분간 오르면 공동묘지 정상부근에 고쿠분의 묘비가 있다.

묘비에는 ‘종삼위훈일등국분상태랑지묘(從三位勳一等國分象太郞之墓)’라 쓰여 있고 작은 글자로 ‘후작 이완용 서(侯爵 李完用 書)’라고 뚜렷하게 표시돼 있다.

◆오래되고 질긴 한국과의 인연

대마도에는 고대로부터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과의 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부산에서 맑은 날 대마도가 보일 만큼 가깝기도 하거니와 한국과 관련된 사적지와 유물이 많다. 식생도 한반도와 유사하다. 대마시의 시화는 현해진달래, 시조는 고려꿩, 시목은 이팝나무다. 고려꿩 모습을 닮은 새의 문양이 도로 곳곳에 보인다. 대마역사박물관에는 한반도와 교류를 한 역사적 자료와 유물이 전시돼 있다.

히타카쓰 북단에 있는 와니우라 포구는 백제 왕인 박사의 일본어 발음이다. 조선역관사 순난비를 비롯해 박제상 순국비, 고구려성 가네다, 학봉 김성일 시비, 조선통신사비, 덕혜옹주와 쇼 다케유키 결혼봉축기념비, 면암 최익현 초당지, 고려산, 한어사(韓語司), 통신사 황윤길 현창비, 왕인박사비, 여·원연합군 비석 등 수두룩하다. 이 가운데 임진왜란과 관련한 곳을 찾았다.

◆임진왜란 속 대마도

서산사(西山寺), 즉 세이잔지는 이즈하라시청 옆 언덕배기에 있다. 임진왜란 이전 조선통신정사 황윤길과 부사 학봉 김성일이 묵었던 곳이다. 임란 후에는 사명대사가 일본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사절단을 이끌고 탐적사로 세이잔지에 도착해 일본 본토에 들어가기까지 3개월간 머무르기도 했으며, 이후 통신사들이 이곳을 거쳤다. 세이잔지 정원 잔디밭에 학봉의 시비(詩碑)가 있다. 이곳 뒷산 이름인 학익산도 학봉이 지어주었다.

‘한 집에 의관 갖춘 두 나라 신하(一堂簪蓋兩邦臣)/지역은 달라도 식과 의리는 균등하도다(區域雖殊義則均)/정성을 다해 접대하므로 긴장이 풀리고 환대에 족하니(尊俎雍容歡意足)/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묻지 마시오(傍人莫問主兼賓).’

학봉이 대마도에 들러 선위사인 게이테쓰 겐소(玄蘇)승에게 지어준 시다. 하지만 겐소는 후일 침략군의 역관으로 활동한다. 왜와 선린우호를 도모했던 학봉에게 겐소가 배신을 한 셈이다. 세이잔지 앞에는 대마도에서 한글을 가르쳤던 한어사(韓語司)가 자리잡고 있다.

덕혜옹주 봉축결혼비가 있는 가네이시조(金石城) 스미즈 공원 부근 언덕배기에 역대 대마도주의 부도(浮屠)가 즐비하게 안치돼 있다. 부도 옆 800년 수령의 스시나무가 있어 눈길을 끈다.

히타카츠로 가는 도중에 오우라(大浦)항을 들렀다. 이곳은 1592년 4월13일 오전 8시에 출발한 왜선이 오후 5시 부산 앞바다에 도착하기 전까지 정박해 있던 내해다. 현재 진주양식을 하고 있는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궁처럼 오목하게 들어간 이곳에 대함대가 숨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 여행 팁

대구 삼성여행사(www.123tour.co.kr)는 1박2일 대마도 상품으로 ‘KTX 타고 떠나는 임진왜란 속 대마도’를 출시했다. 12일부터 매주 화·목·일요일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며 요금은 20만8천원대다. 단 휴가성수기인 7월26·28·30일, 8월9·11·13·16일은 1인당 6만원의 추가요금이, 8월2·4·6일에는 1인당 11만원의 추가요금이 발생한다. 한편 부산에서 합류해 출발하는 1박2일 상품(7월9·14·16일)은 1인당 13만9천원이다. 문의: 대구(431-3000)/부산(33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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