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경주시 동천동 경상도추어탕, 노도근 점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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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10   |  발행일 2015-07-10 제42면   |  수정 2015-07-10
비늘까지 뽀송뽀송하게 벗긴 자연산 미꾸라지와 단배추로 끓인 ‘고향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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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경상도추어탕은 자연산 미꾸라지 확보에서부터 해감, 국 끓이기, 초피 가루, 단배추 선별까지 전과정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모든 가족이 분담하고 있다. 이윤은 갈수록 적지만 ‘한국 추어탕의 본가’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추어탕 이외에는 일절 눈길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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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쯤 한국 추어탕 탐색차 전국을 일주한 적이 있다. 전라도 추어탕의 본가로 불리는 남원추어탕은 솔직히 들깨와 된장이 가미된 ‘시래기국’ 같았고, 서울식 추어탕은 고추기름까지 떠 있어 ‘육개장’ 같았다. 강원도 원주의 추어탕은 ‘매운탕’ 같았다. 전국의 여러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재료로 끓였다는데 도무지 미꾸라지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실망이었다. 6천~7천원급 여느 식당의 저급 추어탕은 ‘채소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추어탕은 역시 경상도’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구의 경우 69년 역사의 ‘상주식당’이 ‘경상도 추어탕 본가’라는 기품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뒤를 들안길 ‘동수미꾸라지’가 바짝 추격하고 있다. 왜관 IC 근처의 ‘장독대’, 영천시 금호읍 덕성리의 ‘영천 할매추어탕’, 안동과 경주의 동명이점(同名異店)인 ‘경상도추어탕’, 경주 서출지 옆 칠불암식당 등도 한 내공을 머금고 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기자에겐 경주시 동천동 경상도추어탕 국물맛의 여운이 가장 깊고 길었다. 일단 추어탕에 미친 부자의 몸짓이 진지했다. 아버지 노민식씨(65)는 아들이 장만한 미꾸라지로 매일 새벽 탕을 끓인다. 아들인 점장 노도근씨(38)는 추어탕대학을 차려도 될 정도로 미꾸라지와 미꾸리, 비린내를 잡는 초피가루에 해박했다. 특히 노 점장은 현재 전국 자연산 미꾸라지 유통을 좌우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 오전 손님이 몰려오기 직전 그의 식당을 찾았다.


향이 달아나지 않게 초피가루 매일 갈아
영양고추 고집하고 특제된장으로
배추·미꾸라지와 맛의 황금비율 찾아


◆ 궁여지책으로 한 추어탕집

노도근 점장은 부산 한미은행 하단지점에 1년, 대구 국민카드 대명동 지점에 2년 정도 근무하다가 추어탕 일을 맡았다.

처음부터 추어탕집을 한 건 아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고 그의 집안은 거덜 났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탑동주유소 옆 부속건물에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허름한 식당을 차린다. 그의 이모부가 딱한 사정을 듣고 주유소 옆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준 것이다. 주유소 직원 식사를 제공하다가 소문이 나면서 나중에는 덤프트럭 기사 등을 위한 백반집으로 성장한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탑동기사식당’으로 불렸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백반정식, 잔치국수 등을 팔았다. 추어탕은 가을의 그 집 별미였다. 동네 수로에서 잡아온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였는데 기사들 사이에 소문이 크게 났다. 공간이 좁았다. 2003년 현재 자리로 옮겼다.

◆ 미꾸라지 구하기의 어려움

그는 매일 미꾸라지와 전쟁을 벌인다. 중국산 미꾸라지가 그를 훼방 놓는다.

중국산에 대한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초창기에는 구하는 방법도 몰랐고 양식 미꾸라지도 드물었다. 중국산 미꾸라지가 등장한 것은 10년 전부터. 중국에서 100% 양식해서 국내로 들어오는 게 국내 유통량의 거의 90%. 모양은 비슷하지만 무늬가 조금 다르다. 중국산의 경우 보통 식빵에 생기는 검은 곰팡이 같은 게 흩어져 있다. 지금은 한 단계 넘어서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씨알을 거기서 키워서 들어오니 전문가도 잘 구분 못한다.

2012년부터 정부는 미꾸라지 원산지표시제를 실시한다. 이때 여러 추어탕집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평소 자연산 운운했지만 실은 거의 수입했다. 자연산을 구할 수 없어 그에게 SOS를 친 것이다.

자연산의 산란기는 4~6월. 성어가 되려면 3개월 정도 자라야 한다. 따라서 입추부터 미꾸라지 시즌이다.

한때 노 점장이 트럭을 타고 마을로 가서 봄나물을 수매해 오듯이 수집해 왔다. 아버지는 이에 앞서 버스와 오토바이를 타고 어렵사리 사 왔다. 추어탕 수요가 늘자 미꾸라지도 더 필요했다. 처음에는 양북장에만 갔다가 부족해서 여러 장을 돌며 구했다. MBC ‘고향은 지금’이란 프로에서 방송인 하일씨가 양북면 용동 1리와 2리에서 동네 사람과 함께 미꾸라지를 잡는 모습이 방영됐다. 경남 지역의 업자가 그 동네를 찾아가 미꾸라지를 싹쓸이하려고 했다. 그가 간청한 끝에 업자들이 양북 쪽 미꾸라지를 거둬 그에게 파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7월부터는 매일 미꾸라지가 들어온다. 경주 지역은 잡은 농민이 직접 갖고 온다. 멀게는 충남 태안, 전남 보성, 장성, 벌교, 영광 등지서도 들어온다.

◆ 알쏭달쏭 산초와 초피나무의 차이점

추어탕집에서 식재료 때문에 언쟁을 벌이는 이들이 많다. 바로 제피가루를 산초가루로 착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산초와 초피가 헷갈린 이유는 한의학계에서 초피를 산초로 표기해놓은 탓도 있다. 초피의 뿌리, 열매, 줄기 등을 다 구분해서 사용하면서도 정작 표기는 산초로 해놓은 것.

산초와 초피(제피)는 수출 품목에서는 동일한 품목으로 보지만 완전히 다른 종. 산초는 잎이 매끈하고, 제주도와 경상도 방언으로는 재피로 불리는 초피는 잎에 돌기가 나와 있다. 가시 모양을 보고 구별할 수도 있다. 가시가 마주 보며 달린 건 초피, 어긋나면 산초다. 초피는 9월 말에 열매가 다 익는다. 알은 검고 껍질은 불그스름하게 시들어간다. 산초는 10월말~11월 초 열매가 다 익는다.

추어탕집에서는 당연히 초피가루를 사용하는데 이때 열매는 특유의 매운맛이 없어 껍질만 벗겨 사용한다. 초피의 주산지는 경남 거창과 함안 등 지리산 이남이다. 지리산 너머 서울 경기권은 초피가 아니라 산초가 많이 난다. 경주시 양북면에서 구했는데 갈수록 5~6월 갓 익기 시작한 푸른 초피 열매를 염장해 일본 등지로 수출하는 바람에 물량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이젠 한 푸드 회사(만기푸드)를 통해 7월 초 좀 덜 익은 초피를 수매한 뒤 진공포장해서 냉동보관한다.

이 집은 초피가루를 미리 장만해두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향이 증발해버린다. 매일 새롭게 갈아낸다.

◆ 단배추 이야기

문제는 부드러운 단배추 수급. 단배추는 ‘단으로 묶어 파는 덜 자란 배추’를 의미한다. 11월 이후부터는 시장성이 별로 없어서 단배추 재배 농가를 찾기 어렵다. 겨울철에는 진도와 해남에서 생산되는 봄동으로 국을 끓인다. 단, 시래기와 우거지는 식감이 억세 사용하지 않는다.

추어탕 채소 색깔을 보면 국의 신선도를 안다. 흑록색이 아니고 푸른빛이 감돌게 하려면 고난도의 열관리가 요구된다. 처음에는 푸른 기운이 감돌지만 열에 많이 노출되면서 짓무르고 칙칙하고 어둡게 변한다.

◆ 추어탕 요리 과정

미꾸라지 자연산은 양식과 달리 ‘해감’을 통해 이물질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참고로 미꾸라지는 농수로에서 잘 잡히고 미꾸리는 상류 맑은 물에서 서식한다. 서로 다른 종이다.

일단 수돗물에 넣어준다. 지하수 대신 수돗물을 이용하는 이유는 새 물을 만나면 반드시 배설하기 때문이다. 빠르면 하루, 늦으면 3일간 하루 3회 정도 물을 갈아준다. 망에 담아 소금을 치는데 전통방식은 막소금을 뿌리고 호박잎을 덮어두면 수세미같이 까끌한 표면 때문에 미꾸라지 때가 벗겨진다. 소금이 들어가면 삼투압 차이로 인해 미꾸라지 속 진액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죽게 된다. 미꾸라지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비늘이 있다. 그것도 벗겨내야 한다. 망 속 거품투성이 미꾸라지 겉피부가 뽀송뽀송해질 때까지 씻어준다. 그렇게 하지 않고 국을 끓이면 트리오 거품 같은 게 생긴다. 3㎏씩 팩에 담아 최대한 공기를 빼면 진공상태가 된다. 한 냉동고에 400~450㎏ 넣을 수 있다. 미꾸라지가 나오지 않는 4개월 비축 물량은 2t.

아버지는 오전 5시에 국을 끓인다. 하루 딱 150인분만 끓인다. 미꾸라지 삶는 데도 보통 1시간 이상 걸린다. 단배추는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 뒤 3번 정도 씻는다. 단배추는 거의 유기농이라서 간혹 배추벌레도 있어 배추뿌리 안까지 손가락을 넣어 이물질을 제거해야 한다. 씻은 배추의 물기도 30여 분간 뺀다. 물기를 머금고 있으면 칼이 잘 나가지 않는다. 단배추는 어른 중지 세 마디 길이로 썰어낸다. 다 삶긴 미꾸라지의 살과 뼈를 완전히 분리한다. 체를 통해 으깬 미꾸라지 살점 안으로 특제된장을 풀어넣는다. 작업해 놓은 단배추와 숙주나물을 넣고 30여 분간 끓인다.

이 집 특제된장은 시행착오의 산물. 집된장으로 된장국 끓이듯 사용하면 군냄새가 날 우려가 있어 황금비율을 찾는 데 진을 뺐다. 된장 맛이 강하면 절대 안된다. 자칫 시래깃국이 된다. 된장 양이 줄면 국이 희멀겋다. 단배추와 된장맛, 그리고 미꾸라지 향의 균형감각을 찾는 데 3년이 걸렸다. 영양고추만 고집한다.

첫 국물맛? 기자가 어릴 때 칠곡의 한 도랑에서 잡아 온 고기로 갓 끓여낸 바로 그 탕 맛이 어른거린다. 한 그릇 1만원. 054)748-0300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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