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옥자 미국 워싱턴 정신대 대책위원회 고문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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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24   |  발행일 2015-07-24 제35면   |  수정 2015-07-24
“위안부문제 헌신 에반스 前 美연방하원의원, 연인이자 대의 함께한 동지”
(2014년 11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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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자 미국 워싱턴 정신대 대책위원회 고문이 지난 17일 영남일보를 찾아 2층 정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아름다운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배우였다. 특히 말년에 그가 아프리카에서 보여준 선행은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다. 서옥자 미국 워싱턴 정신대 대책위원회 고문은 오드리 헵번을 닮았다. 그녀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한 헵번과 같이 밝고 명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더 맘에 든다고 했다. 역경을 이기고 진취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산 오하라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했다. 서 고문은 지난 17일, 미국에서 일본군 강제위안부의 인권을 위해 함께 싸웠던 최봉태 변호사와 이용수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대구를 찾았다. 그녀는 이튿날 오전 광복절에 개관 예정인 대구시 중구 서문로 강제위안부할머니 역사관도 둘러봤다. 서 고문은 2007년 7월30일 일본군강제위안부 결의안(HR121)이 미국 의회에서 만창일치로 통과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를 한 레인 에반스(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의 연인이자 동지, 친구였다. 에반스 의원이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그대의 목소리가 되어’라는 책을 내고 에반스 의원과의 인연과 사랑에 강제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책에는 HR121이 통과되기까지 미 의회에서 벌어진 막전막후에 대한 비사도 담았다. 그녀는 현재 미 버지니아주 컬럼비아대 칼리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87년 공부하러 미국 갔다가
강제동원위안부 신문기사 보고
위싱턴 정신대대책위 활동 참여
사무총장·회장 역임

 

피해 할머니 미국 초청
대학과 의회 증언·세미나 등  활동
2007년 美의회 결의안 통과에 기여

 

공공외교 측면서 로비스트 키우고
연방의원 가능한 인물을 지원해야


▲대구는 처음 왔는가.

“아니다. 몇 해 전 왔고 이번이 두 번째다.”

▲에반스 의원은 어떤 인물인가.

“해병대를 전역하고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31세에 미 연방하원의원(일리노이주)에 당선된 인물이다. 24년간 12선을 했다. 한국의 일본군강제위안부 결의안을 비롯해 고엽제 문제, 영주권 신청자의 방문비자 문제, 혼혈아의 시민권 취득 문제 등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를 위한 법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발의한 열혈 사나이자 휴머니스트였다. 나에겐 사랑하는 연인이자 대의를 위해 함께 투쟁했던 동지이면서 세상의 비정함에 대해 함께 슬퍼한 친구였다. 그는 46세 때 파킨슨병에 걸려 병마와 싸우면서 10년간 하원의원을 했다. 에반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무명이었던 시절 오바마를 키운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오바마가 ‘오늘 우리는 미국의 한 위대한 영웅을 잃었다’고 슬퍼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그에게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다.”

▲에반스 의원이 강제위안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에반스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사람의 환경과 배경에 전혀 개의치 않고 발 벗고 나선 사람이다.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일본군강제위안부 문제에도 선두주자로 횃불을 들었다. 그는 1999년 11월,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군강제위안부 문제에 관해 미 의회 회의록에 기록을 남겨 한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어떤 내용인가.

“미 헌법은 ‘모든 인간은 신으로부터 동등하게 창조됐으며 그들은 떼어놓을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자명한 진리를 우리 모두 신봉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 권리를 개인이나 각자, 우리 모두는 침해해선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본인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일어서야 할 의무가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소리를 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정의롭고 올바른 일들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의 힘을 그들에게 빌려주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행동에 옮기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결국 사람들은 적의 말보다 침묵을 기억할 것이지만 우리는 침묵을 지켜선 안 된다”는 명연설이다. 내 책 제목(그대의 목소리가 되어)과도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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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자 미국 워싱턴 정신대 대책위원회 고문이 오는 광복절에 개관 예정인 대구시 중구 서문로 강제위안부역사관을 찾았다.

▲서 고문이 정대위에 들어간 계기도 궁금하다.

“1987년에 미국으로 와 뒤늦게 공부한다고 세상일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1992년 한 신문에서 강제위안부와 관련한 기사를 봤다. 버지니아주 매클린시에 소재한 한 교회에서 뜻있는 한인이 모여 앞으로 미국 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논의하고 있었는데 먼 발치서 지켜보다 돌아왔다. 그해 워싱턴 정대위(초대회장 이동우)가 발족했다. 1998년 5월, 미 국회의사당에서 강제위안부사진전과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다.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도저히 침묵할 수 없었다. 나는 생각이 서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정대위를 찾아갔다. 1999년 워싱턴 정대위 사무총장을 맡고 2001~2008년까지 회장을 했다.”

▲회장 재임 때 어떤 활동이 기억에 남는가.

“서울에서 강제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모셔와 미국 동부지역 아이비리그를 비롯해 중서부 지역에 있는 45개 대학을 함께 다니며 학생이 증언을 듣게 하고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서 강제위안부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설명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교의 사회학 수업시간에 할머니를 모셔 증언을 하도록 했다. 많은 미국 학생들이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눈이 벌게지도록 울었다.”

▲일본 측의 방해공작은 없었나.

“일본은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로비스트를 동원해 강제위안부 결의안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은 그런 점에서 집요하다. 정대위 회장을 맡게 되자 주미일본대사로부터 나와 레인에게 각각 편지가 왔다. 요지를 말하자면 사과와 배상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으므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레인은 ‘아시아 여성기금의 문제점과 과거 일본군 강제위안부 사과문제는 일본정부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일본정부는 피해 생존자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절박성을 고려해 조속히 사과하고 피해자에 대한 적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한국인은 고(故) 에반스 의원에게 깊이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이 밖에 그가 한 일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2000년 하원결의안 357호, 2001년 7월 175호, 2003년 6월 226호, 2005년 2월 68호, 2006년 2월 759호 등 총 5차례의 결의안을 냈다. 그는 미 의회가 개회할 때마다 일본군 강제위안부 공식사과와 배상 문제를 발의하고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마지막 발의를 했던 759호는 공화당 크리스토퍼 스미스 의원과 함께해 법안 통과가 유력했다. 의안이 국제관계위원회로 상정돼 통과하고 의회에서 음성투표로 최종 통과할 수 있었는데 일본 출신 로비스트의 개입으로 실패했다. 당시 국제관계위원회 의장인 헨리 하이드는 처음엔 반대했다가 동향 출신인 에반스의 설득으로 생각을 바꿨다. 에반스가 ‘나도 지병으로 얼마 안 있으면 의회를 떠나고 당신도 떠날 사람인데 마지막 간청을 들어달라’고 했다.”

▲미 의회 인물 중 당시 강제위안부결의안 통과를 반대했던 인물은 누구인가.

“일리노이 출신인 데니스 헤스터트 국회의장과 현 미 하원의장 존 베이너다. 수천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고, 팩스머신이 망가질 정도로 피땀 어린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원내총무였던 베이너가 의안을 내놓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2007년 7월30일 강제위안부 결의안이 미 의회를 통과했다. 결의안의 요지는 무엇이며 어떻게 통과가 가능했나.

“요지는 일본이 성노예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수용하며 공식 사과하라는 것이다. 일본인 3세인 마이크 혼다 의원(민주당)이 2007년 초 에반스가 정계은퇴를 한 뒤 결의안 횃불을 이어받았다. 혼다는 캘리포니아 17구(실리콘밸리 지역) 하원의원으로 그곳엔 아시아계 미국인이 주류다. 혼다 의원이 2007년 민주당 공화당 양당과 함께 결의안을 내며 ‘이 결의안이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일본정부를 공격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강조했다. 마이크 혼다, 에니 팔레오마베, 톰 렌터스 의원 등의 노력으로 HR121이 통과됐다.”

▲결의안 통과 이전 의회에서 청문회를 열고 증언을 했는데.

“대구에 사는 이용수 할머니, 나눔의 집 김군자 할머니, 호주에서 온 얀 오혜른 할머니, 그리고 내가 증언했다. 혼다 의원이 모두 발언을 하면서 결의안이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고 모든 공을 에반스 의원에게 돌렸다. 이용수 할머니의 호소력 있는 증언이 청중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다. 강제위안부의 아픔을 눈물로써 증언할 때 듣던 사람도 눈물을 흘렸다. 네덜란드 출신 얀 오헤른 할머니는 ‘성노예’였던 자신의 과거를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동안 준비했던 자료를 넘기며 차분하게 증언했다. ‘사람들은 적의 말보다 당신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란 에반스의 말을 인용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청문회가 끝나자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졌던 중국인이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준 천사’라고 격려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에반스는 물론 혼다 의원과 서 고문이 HR121이 통과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독신이었던 서 고문과 에반스 의원은 40대 중·후반에 만나 연인과 동지의 인연을 이어갔으나 에반스의 임종 8년 전부터 만남을 지속적으로 갖지 못했다. 파킨슨병에 걸린 에반스를 간호한 이야기, 결혼이 성사될 뻔했으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절절함, 한국에서의 학창시절과 외국항공사에서 스튜어디어스를 한 이야기, 그리고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한 이야기, 클린턴과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인연 등이 그녀의 저서 속에 담겨 있다. 특히 클린턴이 그녀에게 ‘나는 한국 사람을 무척 좋아합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악의 축이라고 발언했는데 나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북한이 원하는 건 식량과 관심이에요’라는 말은 곱씹을 만하다.

▲강제위안부 관련 워싱턴 정가에서 이뤄지는 한·중·일의 로비 방법에 특징 같은 게 있나.

“한국과 중국은 같은 피해자다. 같이 손을 잡고 한다. 차이니즈 아메리칸은 압도적으로 수가 많다. 연방의회, 주의회에 차이니즈가 많이 진출해 있다. 인권문제뿐만 아니라 무역, 지적재산권 등에도 공동전선을 펼친다. 일본은 외무성 산하 재팬 파운데이션(JF)과 사사카와 재단 등이 주도하고 있다. 정계는 물론 학계, 언론계 등에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이들의 대미 로비 연간 예산만 117억원이 넘는다. 한국의 8배다. 아베가 미국을 방문하기 전 수백 개 대학에 돈을 뿌렸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처럼 결집력이 없다. 미국 주의회 의원은 한국계가 있으나 연방의회에 한국계가 없는 현실이다. 한국에서 관심을 가지고 가능한 인물을 지원하고 키워야 한다. 우리는 막강한 로비스트가 없다. 술 마시고 저녁 식사하고 돈 건네는 것보다 공공외교란 측면에서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미국사람 믿지 말고 소련사람 속지 말라는 말을 절감한다.”

▲서 고문께선 앞으로 강제위안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국사람은 격동은 잘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안 된다. 쿨하게 싸워야 한다. 이성적, 논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편으론 문화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안젤리나 졸리를 찾아갈 생각도 있다.”(웃음)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an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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