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옆 한옥 게스트하우스 ‘셔블’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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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24   |  발행일 2015-07-24 제38면   |  수정 2015-07-24
달밤! 그대 잠 못들겠네
마당으로 동산 같은 푸른 왕릉을 끌어들인 2층 한옥
달빛 가득한 밤은 황홀…골수 여행가들 사이 입소문
20150724
처음 만나 사랑을 이루었던 경주에서의 추억을 쉰살에 다시 되살리기 위해 남편은 아내를 위해 한옥을 지어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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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단 하나의 사랑’을 만났다. 부부의 23년 전 어느 날이다. 여자는 ‘갖고 온 차가 실은 회사 차’라고 고백한 남자의 솔직함에 감동해 결혼에 골인. 부부는 늘 쉰 살이 되면 경주로 돌아가자고 했다. 둘의 사랑이 처음 피어난 경주로 돌아와 한옥을 짓고 백년해로하자는 것. 그게 말처럼 쉬웠을까.

약속을 위해 부부는 ‘삯바느질’같이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이제 매일 신라 왕릉을 맘껏 볼 수 있는 자리에 거처를 마련한 ‘현대판 신라 부부’가 되었다.

아내 박수희씨. 그녀는 24세 때 코오롱그룹 사내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삼성·현대·LG·포스코 등 유수 대기업 및 공기업·공무원 연수원 등에서는 톱강사로 알려진 ‘행복·힐링 디자이너’. 요즘 그녀의 슬로건은 ‘당신의 인생 행복으로 디자인하라’. 강연 횟수 3천회 이상.

남편 노진균씨는 쌍용그룹에서 무역 관련 업무를 보다가 독립해 나중에는 PVC, 통나무집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며 전 세계를 돌다가 아내와 함께 경주로 돌아왔다. 틈만 나면 한옥 지을 자리를 찾기 위해 경주로 내려왔다. 어느 날 이 공간을 확보하고 한옥 관련 전문가를 찾아 2년여 집을 세우기까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셔블을 좋아하는 대연 스님은 항상 ‘집보다 사람이 주인이 되게 소담스럽게 집을 지어라’라고 신신당부한다. ‘서동요 선생’으로 불리는 도예가 박종일도 자기 일처럼 셔블의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졌다. 여러 사람의 맘이 포개진 탓에 숱한 궤도수정을 해야만 했다. 경주의 대표적 한옥 게스트하우스 ‘셔블’은 그렇게 해서 탄생된다.

셔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뭘까. 모르긴 해도 전국에서 왕릉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숙박업소인 것 같다. 대릉원의 5기의 야트막한 야산만한 능이 셔블의 대문 앞에 수호신처럼 서있다. 이런 ‘호사’가 어디 또 있을까.

문을 연 지 채 1년도 안 됐는데 네이버 블로그(행복한옥마을 셔블) 등을 통해 정보를 입수한 세계 22개국의 여행가가 다녀갔다. 이 집은 편리함보다 불편함을 더 존중한다. 화려함보다 평화·편함·고요함·사색파에게 더욱 어울린다. 자연스럽게 골수파 여행가 사이에 입소문이 난다. 40년이 된 고물 BMW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를 일주 중인 62세의 캐나다 여행가 샘을 비롯해 경비행기로 세계를 도는 이스라엘 출신 힐렐, 요트로 세상 구경하는 네덜란드 출신 롤란드 교수, 자전거로 세계를 밟는 미국인 블루스, 그리고 국내 대표적 여행작가인 채지형씨 등이 다녀갔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인문학 특강 강사인 노자 전문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도 얼마 전 셔블에 와서 투숙객과 밤늦도록 토론도 하고 아침에 함께 명상체조도 했다. 모두 능 때문이다.

셔블은 꼭 후궁 정원에 감춰진 별당 같다. 그리고 경주에서 능 바로 옆에 지어진 최초의 2층 건물이다. 그동안 고도제한법 때문에 2층을 못 짓게 돼 있었는데 다행히 완화된 것이다.

낮에는 셔블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보름밤이 딱이다. 이날 셔블은 불교인에겐 전설의 꽃으로 통하는 ‘우담바라’처럼 피어난다. 평소 대릉원둘레길 담장 너머로 조금 물러서 있던 능이 앞마당 안으로 다가선다. 달빛과 별빛, 그리고 능의 실루엣이 고혹적인 조화를 이룬다. 다들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쉬 잠이 올 리 없다. 모두 행복동 2층에서 열리는 뜬금없는‘야단법석 번개’에 동참한다. 처음에는 차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술이 달 만해졌다가 대미는 고즈넉이 차로 장식한다.

기자가 찾은 날 한국 여자 친구와 난생처음 한국을 방문해 이곳에 투숙한 20대 영국 남성 매튜는 “왕릉을 바로 옆에 둔 게스트하우스는 처음 경험한다”면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셔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면 TV가 없다는 사실. ‘능과 달빛이 최고의 브라운관’이란 생각 때문이다. 또한 매 순간 행복·평화·힐링·웰빙을 느낄 수 있게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단어로 방 이름을 지었다. 세 동의 건물 이름은 달님동·햇님동·행복동. 그 밖에 치유, 자비, 담소, 첫사랑, 열정, 도전, 용서, 이해, 성찰 등의 단어를 기왓장 등에 적어 툇마루에 세워둔다. 무료한 아침, 바람이라도 훌쩍 불면 행복동 맞은편 컨테이너박스 같은 미소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실 수 있다.

아내는 투숙객을 손님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들도 여기에 투숙하고 있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기본 조식으로 구운 계란, 토스트, 커피 등을 내지만 기분이 좋으면 2·7장이 서는 근처 중앙시장에서 사 온 옥수수, 수박, 토마토 등으로 한턱 쏜다. 손님도 선물로 응사하고 싶어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을 우송한다.

부부가 가장 즐기는 질문이 있다.

‘능 하면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이 드는가?’

답은 제각각. 이어 부부의 ‘셔블찬가’가 이어진다.

“언제부턴가 죽은 자는 우리를 떠났다. 무덤은 무섭다. 경주는 그렇지 않다. 경주에서의 무덤은 풍경이고 놀라움이다. 여기 무덤은 집보다 높고 크고 아름답고 더불어 잠을 잔다. 오히려 익숙해서 편안한 경주의 무덤. 능과 총이라 불리는 이 아름다운 무덤들 사이로 천년의 시간이 내어 준 그 길을 걷는다. 천년을 이어온 삶을 나도 잇는다. 황남동을 치유·사랑·낭만의 길로 만들고 싶다.”

행복동 이층 난간에 선다. 능의 이마가 닿을 듯 말 듯. 비가 오고 손님도 없는 날 부부는 무심히 그 난간에 앉아 대릉원과 다담(茶談)을 나눈다. 여기는 행복이 머무는 셔블. 경주시 황남동 76-10.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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