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읍성 옆 한옥카페 겸 야생화 식물원 ‘꽃자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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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24   |  발행일 2015-07-24 제38면   |  수정 2015-07-24
城과 꽃…입 못 다물겠네
읍성에 바짝 붙은 기와집…식물원엔 500여종 야생화
운영 비용 마련하려 카페 문열었다가 손님 몰려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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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야생화를 사랑했다. 그 여자는 가야금을 좋아했다. 꽃과 선율이 만난 자리에 ‘꽃자리’ 한옥카페가 피어났다. 2010년 6월이었다. 그 카페 옆에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명물 하나가 좌정하고 있다. 청도읍성이다. 2007년부터 복원작업(총연장 1.9㎞)이 시작돼 모양을 가다듬고 있다. 근처에 청도 석빙고와 청도향교가 있다.

땅거미가 밀려올 때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기 딱 좋은 시골길이 바로 옆에 있다. 읍성 성곽 위에 올라서면 탄성이 절로 난다. 사방 어느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먼 산의 동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읍성 바로 뒤는 낙대폭포가 있는 남산. 대구 쪽으로 보면 멀리 비슬산 북사면의 연봉이 노을에 잠겨있는 모습이 압권이다. 화양읍의 널직한 들판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본다. 읍성 옆에 바짝 붙은 꽃자리 카페는 언제나 대숲처럼 일렁거린다. 점차 읍성이 꽃자리의 정원이 돼버렸다.

남편 이태호씨는 평소 말수가 적고 늘 빙그레 웃기만 한다. 소처럼 우직하다.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 원예학과를 나왔다. 인생 1막 때 농축산업에 푹 빠진 그는 왜관에서 육계 2만 수를 키우기도 했다. 80년부터 한우사육에도 뛰어들어 왜관에 52만8천㎡(16만평)의 초지를 조성하고 소를 키웠다. 그걸 바탕으로 대구 도심으로 나와 숯불갈빗집도 운영해본다. 나중에는 화양읍으로 옮겨 한우 사육에 더욱 전념한다. 하지만 소를 키우는 건 갈수록 힘에 부쳤다. 각종 파동 때면 불면의 나날이었다. 10년 전 소를 모두 처분했다. 꽃이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거기에 부부가 살 집을 짓고 싶었다. 읍성과 궁합이 맞으려면 아무래도 한옥이라야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지은 지 1년도 안돼 각종 균열이 가고 하자 보수를 해야 하는 날림 한옥은 절대 짓지 말자고 다짐한다. 남편은 한옥을 제대로 몰랐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한옥 주인이 될 수 없다. 지척에 있는 한옥학교 변숙현 교장을 찾아갔다. 입교해 기초 공부를 했다. 나중에 한옥학교 학생들이 한옥 지을 때 많은 도움을 준다. 여느 한옥과 조금 다르게 갔다. 세월이 가도 균열이 가지 않는 단단한 고재를 구했고 전통 우물마루 기법으로 마루를 짰다. 1년 만에 H자 카페인 ‘끽다헌’, 그리고 부부가 기거하는 ㄷ자 ‘청향정사’를 만들었다. 아내의 닥종이인형과 선비 사랑방 용품을 갖춘 사랑방은 외국인에게 인기 짱이다.

그가 아내(장영순)와 함께 꽃자리를 꾸려나가게 된 것은 순전히 야생화 때문. 소는 원도 한도 없이 키워봤으니 인생 2막은 꽃과 함께 살고 싶었다. 처음부터 한옥카페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당초 읍성 근처에 6천600㎡(3천평)의 초지가 조성돼 있었다. 어느 날 청도읍성 복원 소식을 접한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쳐갔다.

일단 식물원부터 만드는 게 급선무였다. 대학시절 식물분류 작업까지 해봐서 야생화 키우기는 자신이 있었다. 큼지막한 비닐하우스부터 만들고 그 안에 식물원을 차렸다. 씨앗을 받아 증식하고 식생을 분류하는 나날이었다.

현재 카페 옆 탐방로까지 갖춘 식물원에는 500여 종의 각종 야생화가 있다. 6천600㎡(2천평) 넓이다.

꽃자리 입구에 고사목처럼 서 있는 두 그루 소나무가 장승 같다.

청도의 한 도로공사장에서 구해 온 이 두 소나무는 요즘 나리와 함께 한창인 능소화의 차지가 돼 버렸다. 초입 마당에는 겹물망초의 자잘한 흰 꽃이 안개처럼 노닐고 있다. 카페인 끽다헌 곁에는 꽝꽝나무, 수련, 비누풀, 산국, 해국, 돌단풍, 좀눈향, 산수국, 꿩의비름, 옥잠화, 목백일홍 등이 보인다. 백합과 나리도 60여 종. 이 밖에 좀작살나무, 청화쑥부쟁이, 층꽃, 무릇, 상사화, 마타리, 참좁쌀풀, 낮달맞이, 장수락, 이스라지, 눈향나무, 장수매, 장구채 등이 깔려 있다. 여느 야생화 동산보다 훨씬 풍부한 식생을 자랑한다. 딸은 부모를 위해 서정주 등 유명 시인의 명시를 나무판에 적어주었다. 10여 개의 벤치와 100여 개의 새집도 만들었다. 식물원 복판에 정자도 지었다.

아차차, 식물원 운영비용이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꽃자리 카페다. 처음에는 식물원에 힘이 실렸는데 이젠 주말에 600여 명의 손님이 들이닥쳐 카페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다.

아내는 아침같이 일어나 빙수 재료인 딱딱한 감말랭이를 먹기 좋게 채를 썬다. 빙수의 대미는 붉은 베고니아 잎 몇 장.

그녀는 국악인으로 대성할 수 있는 자질을 가졌는데 남편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하루 12시간 이상 손님을 맞이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처음엔 자신을 머슴으로 만든 것 같은 남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안 쓰던 근육도 자꾸 사용하니 편해졌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전통차도 교육할 정도로 안목이 늘었다. 남편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야생화의 향연을 사진으로 담아 ‘꽃밭에서 노닐다’란 네이버 블로그에 매일 포스팅한다.

부부가 가장 기다리는 건 매월 둘째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열리는 꽃자리음악회.

클래식 기타리스트 노동환씨가 주도하는 이 음악회는 지역에서 음악 좀 한다는 뮤지션은 한 번쯤 초청받았다. 2010년 10월에는 숙진 한복갤러리 박성이 원장이 동네 사람과 다문화가정 주부, 원어민강사 등을 모델로 세워 한복패션쇼도 열었다.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46-2.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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