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시리즈 통·나·무]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49호 회원 이재윤 덕영치과병원장

  • 최미애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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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01   |  발행일 2015-08-01 제5면   |  수정 2015-08-01
“왼손 하는 일 오른손 모르게 하라뇨…기부자 널리 알려야 기부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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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대구 중구 덕영치과병원에서 만난 이재윤 덕영치과병원장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 위해서는 기부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기부하는 사람이 인정 받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지난달 29일 대구 중구 서문로2가에 위치한 덕영치과병원에서 만난 이재윤 덕영치과병원장(66)은 ‘나눔이 인정받는 사회’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원장은 지난달 22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년 동안 1억원 기부를 약정해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이 됐다.



4남매 홀로 키운 어려움에도
이웃에 베풀던 모친 영향 커

“금전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직업 통한 봉사가 더 가치…”
33년 동안 로타리클럽 활동
국내외 무료진료 적극 참여
작년 ‘아치 클럼프’도 가입

“기부자 칭찬하고 우대하는
나눔이 인정받는 사회돼야
건물에 기부자 이름 붙이는
대학의 예우문화도 바람직”


◆ 호구지책(糊口之策)하려고 배운 의술, 봉사로 이어져

1950년 대구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서 태어난 이 원장은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6·25전쟁이 일어났고, 돌도 지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이 원장의 어머니는 4남매를 혼자서 키워야 했다.

이처럼 어려운 형편에서도 밤낮으로 공부한 이 원장은 서울대 치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원래 이 원장은 철학, 어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벌이가 될 수 있는 의학을 전공으로 택하게 됐다. 그의 병원 사무실 책장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이 그의 학문에 대한 관심을 짐작하게 했다. 이 원장은 “10년 정도만 치과를 운영하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하다보니 30년 넘게 치과 진료를 하고 있다”며 웃었다.

졸업 후 이 원장은 1982년 덕영치과를 개원했다. 이때쯤 이 원장은 로타리클럽에 가입해 33년 동안 로타리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활동이 이 원장에게는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4년 전 이 원장은 필리핀의 고산지역에 있는 6개 마을을 방문해 무료로 임플란트 시술을 하는 의료봉사를 했다.

이외에도 북한이탈주민, 고아원, 양로원, 다문화 가정을 찾아가 무료 치과 진료를 해왔다. 이 원장은 “금전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직업을 통한 사회 봉사가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내 삶의 터전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이 원장은 로타리 활동을 계기로 기부도 시작했다. 33년 전 로타리 가입 이후 조금씩 기부를 해오다가 지난해 로타리의 아치 클럼프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기도 했다.

아치 클럼프 소사이어티(Arch Klumph Society)는 로타리를 창시한 아치 클럼프를 기리는 의미로 지어졌으며, 로타리 회원 중 25만달러 이상 고액 기부자를 지칭한다. 로타리를 통한 기부 외에 어려운 형편에 놓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게 됐다.

이 원장이 나눔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4남매를 홀로 키운 어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다. 어머니는 38세의 나이에 남편 없이 홀로 남았지만, 마을 사람들과 나눌 줄 알았고 집에서 20리 떨어진 서문시장까지 감을 팔러 갈 정도로 부지런했다.

이 원장은 봉사활동과 기부를 적극적으로 해왔지만 가족, 친척에게도 소홀하지 않았다. 치과의사였던 자신은 아말감 1㎜만 때워도 1만원 정도 벌었기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친척·형제에게 자신이 조금만 열심히 하면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이 원장은 사회로부터 자기가 받은 것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다. 병원을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로타리에 가입한 것도 나눔활동을 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었다. 고향인 대구에 대한 애착도 강하다. ‘보금자리를 떠나더라도 잊지 말자’는 것이 이 원장의 고향에 대한 생각이다. 이 원장은 “삶의 터전은 내가 다 만든 것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 등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받은 것들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 기부자에게도 박수를

이 원장은 이제 더 이상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부자에 대해 대외적으로 칭찬도 아끼지 않고 ‘기부자에 대한 예우’도 적극적이라는 것. 이 원장은 기부를 하면서 기부자가 부각되기보다는 주최 측인 행정기관이 더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이 원장은 일부 대학에서 장학금 등 학교에 기금을 내놓는 사람들을 우대하기 위해 책상· 건물 등에 기부자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그가 활동하는 로타리 클럽도 회원들의 기부 기록을 남겨주는 문화가 있다.

이 원장은 “기부사실을 알리는 것은 기부자의 생색내기라기보다는 기부문화가 더욱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며 “인터뷰도 더 많은 사람에게 기부에 대해서 알리고 전파시키기 위해서 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원장은 앞으로도 기부, 봉사 등 나눔 활동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나보다 좀 더 필요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얼만큼 얼마나 기부하겠다고 약속을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해온 나눔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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