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희씨 성폭행사망' 다시 미궁…스리랑카인 또 무죄

  • 입력 2015-08-11 11:35  |  수정 2015-08-11 15:58  |  발행일 2015-08-11 제1면
법원 "증인 진술 신빙성 없다" vs 검찰 "상고하겠다"
"성폭행 가능성 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 불가"
유족 "검찰 짜맞추기식 수사" 비난

 17년 전 대구에서 발생한 '계명대 여대생 정은희(당시 18세)씨 사망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 K(49)씨에게 항소심 재판부도 무죄를 선고했다.


 대구고법 제1형사부(이범균 부장판사)는 11일 특수강도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K(49)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 일부를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에서는 특수강도강간 범죄에 포함되어 있는 특수강간, 특수강도 등 혐의를 각각의 범죄로 보고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면소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범죄들을 하나로 보아야 하고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죄'라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공범에게서 범행 내용을 전해들었다는 핵심 증인의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고 설령 증거능력이 있다하더라도 모순점이 많아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 등이 중대한 범행내용을 별다른 친분이 없는 증인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말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증인이 공범들 가운데 한 명에게 1998년 초겨울에 범행 이야기를 듣고 16년이 지난 2015년 3월 검찰에 이를 진술하며 범행 순서와 피해자의 당시 옷차림까지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기억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증인은 피고인 등이 범행 직후 피해자 가방에 있던 학생증에서 사진을 떼어갔다고 진술했지만 피해자 가방, 지갑 등은 정씨가 숨진 고속도로에서 발견되는 등 객관적 사실과 모순되는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속옷에서 나온 정액의 유전자가 피고인 유전자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감정 결과 등으로 볼 때 피고인이 단독으로 혹은 공범들과 함께 피해자를 강간하는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공소시효(10년)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K씨는 같은 스리랑카인 공범 2명과 함께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학 축제를 마치고 귀가 중이던 정양을 대구 달서구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데려가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됐다. 공범 2명은 2001년과 2005년에 각각 고국으로 돌아간 상태다.
 정양은 당시 구마고속도로에서 25t 덤프 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서 정양 속옷이 나왔지만 경찰은 당시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렸다.
 영구 미제로 묻힐 것 같던 이 사건은 13년이 지난 2011년 K씨가 검거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성매매 권유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K씨의 DNA가 정양이 숨질 때 입고 있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항소심 재판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공소장까지 변경하며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특수강도강간 혐의 입증에 주력했다.


 검찰은 변경한 공소장에 피고인 등이 정씨를 만나게 된 과정, 피해자의 사망 직전 상황, 특수강간 외에 특수강도 범행이 동시에 이뤄졌다는 정황 증언 등을 기술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K씨를 비롯한 스리랑카인 세 명은 사건 당일 대구시 달서구 성서공단 인근 마트 앞길에서 술을 마시다가 귀가하던 정씨에게 말을 걸었다. 이어 만취한 정씨를 자전거에 태워 3∼4㎞ 떨어진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데려가 번갈아 성폭행했다.


 몹쓸 짓을 하는 과정에서 정씨 가방을 뒤져 학생증과 책 세 권 등을 챙겼다는 주변 증언도 보강했다.


 검찰이 새로 확보한 스리랑카인 증인은 정씨가 현장을 벗어나 고속도로로 올라가면서 중앙분리대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소리를 듣고 K씨 등이 급하게 자리를 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K씨에게 증거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피해자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달아나는 과정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는 등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무죄가 선고되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은 곧바로 상고 의사를 밝혔다.


 김영대 1차장 검사는 "이번에 제출된 증거는 검찰이 4개월간 모든 역량을 투입한 것이다"며 "법원 판단을 존중하지만 승복하기 어려워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줄곧 검찰 수사에 의구심을 드러내온 정씨 유족은 반발했다.
 K씨를 범인으로 특정하기 어려운 데도 과거 수사발표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짜맞추기식'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제3의 범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정씨의 아버지 정현조(67)씨는 "검찰이 궤도를 이탈해 억지 수사를 하고 있다"며 "짜맞추기 수사에 더 이상 항의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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