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독립운동사에서의 여성역할 큰 資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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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14   |  발행일 2015-08-14 제23면   |  수정 2015-08-14

대구여성가족재단이 대구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7명의 이름과 신분을 공개적으로 찾아 나섰다. 생소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그동안 근대적 여성운동의 효시로 평가 받아왔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와는 별도로 회원들의 이름이나 신분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학계의 아쉬움이 컸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공개적으로 회원이름 찾기에 나선 것은 의미가 있다.

잘 알다시피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대구 광문사 부사장 서상돈이 ‘2천만 동포가 담배를 끊어 그 돈으로 국채를 갚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됐다. 국가가 진 빚 1천300만원을 백성들이 갚자는 애국운동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에는 남녀노소, 사농공상, 노비, 거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면서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는 남녀의 차이가 없는 것인데, 여자는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방법을 논하지 않아서 우리는 폐물로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대구여성들의 이런 진취적인 움직임은 전국적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서울, 부산, 인천, 진주,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몇 개월 만에 30여개의 국채보상운동 관련 여성단체가 결성됐다.

아쉽게도 취지문에는 패물폐지부인회의 회원명단이 모두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정도로 기록돼 있을 뿐이다.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화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리씨, 김수원 처 배씨’ 등으로 적혀 있다. 여성들은 각자 은지환, 은장도, 은연화 등 총 8돈쭝의 패물을 내놓았다.

남성 독립투사의 활동에 묻혀서 그렇지 우리 독립운동사를 보면 여성들의 역할이 대단했다. 이 지역에서도 많은 여성 애국지사들이 항일투쟁 대열에 합류했다.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만 12명에 이른다. 이들은 3·1운동을 비롯해 국내 사회운동, 한국광복군, 만주지역 무장투쟁단체에 가입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독립운동가 집안의 며느리로, 아내로, 어머니로 살며 이름 없이 광복의 밑거름이 된 여성들도 많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이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회원 이름찾기에 나선 것처럼 역사 속에 묻혀있는 여성 애국지사들의 업적을 하나하나 발굴해내고, 이러한 자산이 후대에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전 국민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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