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 황재환 소리예술단 단장

  • 글·사진=문순덕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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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19   |  발행일 2015-08-19 제12면   |  수정 201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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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예술단 황재환 단장이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눈과 한 팔로 피아노 연주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자신감 심어주다

6·25때 수류탄 갖고 놀다 사고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독학
국내외 오가며 공연 500여회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도 올라

‘소리예술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연주하는 단체다. 이 소리예술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황재환씨(68)의 인생은 6·25전쟁의 상처와 눈물로 얼룩진, 드라마 그 자체다.

황씨의 고향은 강화도 교동이다. 그는 1950년 네 살 때 전쟁으로 부모, 형제를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고아로 남겨진 그는 갈 곳이 없어서 낮에는 늘 혼자서 바닷가에 가서 놀았다. 어느 날 모래사장에서 수류탄을 주웠다. 신기하게 생긴 수류탄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노는데 핀이 빠지면서 폭발했다. 미군의 도움으로 헬기로 후송되어 미군 야전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으며 6개월 동안 죽음을 넘나드는 치료를 한 끝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눈을 잃고, 오른팔을 잃고, 한쪽 귀 고막이 터져서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된다.

고아원을 전전하며 떠돌이처럼 생활하던 그는 미국 군종목사의 도움으로 열 살이 되던 1956년 대구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대구 특수학교는 1946년 지금의 대명동 자리에서 장애인들의 교육과 자활을 돕는 기관으로 설립됐다. 지금의 대구대 특수학교다.

방학이 되면 다른 친구들은 각자 집으로 떠나갔지만 그는 갈 곳이 없어서 기숙사에 혼자 남아 긴 방학을 보냈다. 어린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것은 기숙사 옆 교실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였다.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피아노를 치고 싶었지만 두 눈과 한 손이 없는 장애인이 무슨 가당치 않은 소리를 하느냐고 오히려 야단을 맞았다. 어쩔 수 없이 밤마다 몰래 교실에 들어가 피아노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밤마다 울려퍼지는 피아노 소리에 학교에서는 ‘피아노 귀신이 밤마다 나타나서 피아노를 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당시 학교 주변은 공동묘지였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잠복한 교사들에 의해 피아노를 연주한 주인공은 세상에 밝혀졌다.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 피아노를 앞이 보이지 않고 한 팔이 없는 황씨가 연주하는 모습에 교사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후부터 황씨는 당당하게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점자도 없던 시절에 독학으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는 1967년 대구대 특수학과에 입학해 4년 전면 장학생으로 공부를 하였다. 대학졸업 후 1977년 광명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학생들은 황씨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황씨는 “학생들이 내 모습을 보면 불굴의 의지와 노력이 있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가장 큰 교육”이라면서 “세상의 모든 장애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황씨는 교사 생활 중이던 1986년 ‘예광성가단’을 발족했다. 예광성가단은 1991년 ‘소리예술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황씨는 2009년 광명학교 교장직을 마지막으로 38년의 교사생활을 마치고 퇴직했다.

지금까지 500여회 국내외 공연을 했으며 교도소, 군부대, 학교 등에서 1천여회의 특강도 했다. 1991년 예술의 전당과 199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인 공연 ‘장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2007년 유엔본부와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계장애인의 날을 기념한 공연, 달성군 100인의 피아노 연주회 등은 특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글·사진=문순덕 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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