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환 푸른차문화연구원 원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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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1   |  발행일 2015-08-21 제37면   |  수정 2016-06-17

“다도의 마지막 목적은 평화로움”…폼 나는 다도에서 폼 내려놓는 다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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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신라 막사발에 적힌 차 다(茶) 자를 보여주며 고담스러운 미소를 보이고 있는 푸른차문화연구원 오영환 원장. 차의 기본기와 역사를 익힌 뒤 직접 차밭에 차나무를 심고, 그것으로 차를 만들고, 차실에서 회원과 나눠 먹으면서 자연에 가 닿으려고 한다.


명함도 약력도 필요 없는 사람이 있다. 오영환 푸른차문화연구원장(65)도 그런 범주에 들 것 같다. 대구시 수성구 연호동 근교 과수원촌 한 틈바구니에 대숲처럼 자리한 <사>푸른차문화연구원 입구. 오 원장을 닮은 나즈막한 도자기가 수인사를 한다. 입추를 넘겨 대낮 폭염의 기세는 한풀 꺾여버렸다. 연구원 입구는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기자의 방문을 염두에 둔 듯 오 원장이 약속 시간 조금 전에 손님맞이 소제(掃除)를 해서 물기운이 흥건하다. 방금 스콜이 지나간 숲 속 같다. 찬 오미자차로 목구멍을 식혔다. 오 원장이 정갈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진여실(眞如室)로 안내를 한다. 방 앞에서 손을 씻으라고 권한다. 일종의 ‘정화의식’이다. 방 안에 좌정하자 근처에서 직접 수확한 찻잎으로 차를 우려낸다. 굳이 차 이름을 묻지 않았다. 오 원장도 무슨 차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통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살금살금 찻잔을 향해 기어오고 있다.

인터뷰 시작 전 오 원장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최초 차나무는 다도(茶道)를 염두에 두고 성장했을까. 아니다. 인간이 그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핏방울 같은 찻잎을 이리저리 못살게 굴다가 어느 날 억지로 다도를 만든 것이다. 다도는 결국 차나무가 아니라 인간의 전유물이 되고 만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냥 ‘오영환’ 그 이름 석 자만으로 족하다고 했다. 워낙 단아한 표정 탓인지 그녀의 말투에는 허세·허영이 별로 감지되지 않는다. 흰색 저고리에 쪽 찐 머리. 한글 배우기를 막 끝낸 초등학생의 목소리 같은 자태다. 가끔 뿜어 올리는 미소는 위패(位牌) 같은 절조(節操)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갑자기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걸 재현한 신라 막사발을 집어든다. 행서체로 적혀 있는 차 다(茶) 자를 보여주며 빙그레 웃는다. “지하에 파묻혀 있었다면 죽은 유물이겠지만 지금 이렇게 차실에서 사용하고 있으니 생명체라고 봐야죠.” 신라 토기 중에 다(茶) 자가 적혀 있는 건 기자도 처음 본다. 20년째 귀한 분이 오면 방명록에 이름을 받은 뒤 내놓는다는 800년 된 청황빛 고려청자 찻사발에 찻물을 받아 내민다. 테두리 두 곳이 깨어지고 마모돼 있었다. 연구원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차밭이 있다. 2005년부터 심기 시작했는데 보성재래종, 하동재래종 신품종인 참녹, 제일 흔한 야부기다종, 중국 무이암차종 등 20종이 있다.


미술학도에서 다도 전파자 변신

수성구 연호동에서 연구원 운영
품앗이 등 주민과의 소통 중시
마을과 함께 마시는 차축제 열어

다도는 종합문화예술의 결정체
차의 역사와 종류·물성은 물론
한복·예법·요리·공예까지 익혀

커피에도 관대…블랜딩해 마셔
“차 한 잔에 커피 반잔이 딱 좋아”

충남 대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대학교 다닐 때 미술에 빠졌다. 대만에서 한 떼의 스님이 왔을 때 한 달간 전국을 돌며 차를 우려내는 스태프 경험을 했다. 22세 때였다. 차문화가 상업적인 전통찻집으로 내려오기 전이었다. 그때 가슴속에 차가 유성처럼 지나간다.

1978년 대구로 왔다. 미술학원을 경영하면서 다도 속으로 더 침잠한다. 대구지역 여성난우회의 하나인 ‘유란회’에 들어간다. 그 어름에 대구·경북 원로차인인 배근희 청백다례원장을 만나 더 구체적으로 차를 공부할 수 있었다. 96년부터 푸른방송 문화센터에서 차생활과 예절 강의를 5년간 맡는다. 2000년부터 수성구 황금동에서 푸른방송 산하 ‘푸른 예다회’라는 예절원을 만든다. 2002년 수성구 범어동에서 ‘푸른차문화연구원’으로 개칭된다. 2005년 연호동으로 이전한 뒤 2009년 현재 <사>푸른차문화연구원을 그랜드오픈 한다.

연구원 건물 짓는 과정에 차문화에 대한 모든 열정과 안목이 총출동된다.

처음에는 친환경 건축으로 한옥을 짓고 싶어 청도 한옥학교도 다녔다. 부지가 너무 좁고 건물도 시대성을 감안해야 될 것 같아 한옥을 포기한다.

이 건물의 중심은 진여실. 정말 공들여 만들었다. 시스템 창호회사 모델에도 없는 크기의 통유리창을 주문제작한다. 세라믹 카본이라는 힐링 벽돌을 사용한다. 벽돌 하나하나에 동다송 문구를 전서체로 적어 상감으로 찍어냈다. 채 한 평도 안 될 것 같은 이 자그마한 공간을 위해 무려 2년 공을 들였다. 비 오고 눈 오고 바람이 특별한 날 그녀는 그곳에 곧잘 감금된다. 먹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족했다.

차실별 디스플레이 방법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다들 차 교육장과 다실의 공간을 헷갈려 합니다. 일단 교육공간은 공부하는 관계로 뭔가 단정한 이미지여야 해요. 다실은 돈과 명예와 지위를 내려놓은, 자기 본연의 자리로 돌아올 수 분위기라야 됩니다. 차실에서는 다식 외 자극적인 음식도 먹어선 안됩니다.”

그녀는 왜 차를 마실까?

“다도를 하는 마지막 목적은 평화로움인 것 같아요. 집안에 별 문제 없고 남편과 잘 지내는 것은 일상의 평화이지만 제가 원하는 평화는 그런 게 아니죠. 돈도 명예도 지위도 남편도 자식도 이웃도 아닙니다. 그냥 마음의 평화를 다지는 겁니다. 내가 평화로우면 그게 주변 평화의 출발이란 생각을 해봐요. 진정한 평화로움은 자연의 일부가 되고, 그럼 곧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차실의 기운을 하늘로 되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달맞이명상’. 지난 7년간 50여 개국 외국인이 다녀갔다. 2년 전부터 매월 보름밤 옥상에서 이웃과 인연 되는 사람과 함께 가장 편한 포즈를 취한다. 독일 수사 12명도 다녀갔다. 하얀 수사복을 입고 연구원 입구 골목으로 들어올 때 천사인 줄 알았다.

폼 나는 다도에서 ‘폼 내려놓는 다도’로 터닝했다.

문제는 이웃 사람이었다. ‘이웃과 눈맞이 대화를 못하는 다도는 허물’이라고 여겼다. 근처에 모두 17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이 연구원이다. 그곳 원장이니 이웃은 솔직히 부러울 수도, 시기하고 질투할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주차 문제로 적잖은 민원도 생겼다. 이웃의 소리부터 들었다. 그녀는 채식주의자라서 마을 사람과 식사를 함께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웃은 되레 산해진미를 먹는 줄 오해한다. 이웃을 초대해 함께 식사를 했다. 찻물에 밥을 말아 반찬 하나만 놓고 먹는 장면을 보곤 그녀를 살갑게 대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소통의 장이 마련됐다. 먼저 귀를 열고 도움을 주니 그들도 차츰 맘을 열었다. 마을과 함께 차 마시는 축제도 시작했다. 올해로 4번째다. 매월 10월이 되면 이 마을의 집들은 17잔의 찻잔으로 변한다. 집집마다 차향이 번지도록 노력한다. 반찬과 농작물까지 서로 나눠 먹으려고 한다. 일손이 부족하면 품앗이도 해준다. 수확기에는 연구원은 직거래장터로 둔갑한다. 근처에 기막히는 연지(蓮池)가 있다. 이웃이 그 연지에 ‘연꽃 차를 따르며’란 그녀의 자작시를 팻말로 세워주었다. 그녀는 2009년 ‘목구멍’이란 시로 12회 대구시조문학상을 받은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갈수록 사제(師弟)가 남보다 못한 관계로 추락한다.

오 원장은 일단 왜곡되고 시대착오적인 ‘사제문화’부터 혁파시켜야 된다고 믿는다. 신입생이 처음 들어와 입학식을 할 때 하는 선서가 인상적이다.

첫대목은 ‘차를 통해서 화내지 않는 공부를 시작합니다’이다.

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짚방석 같은 한복을 즐긴다. 바탕이 맑지 않으면 메이크업을 해도 맑지 않다고 본다.

맑지만 세상사가 마냥 그렇게 곧이곧대로 갈까? 그녀는 아니란다. 평화로움은 ‘치열한 싸움의 산물’이라고 본다.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오영환, 이 세상에서 뭘 가져갈래? 푸른방송 시절에 ‘내게 차는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습니다. 답은 ‘내 영혼의 쉼터’였죠. 나도 다른 사람의 쉼터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차는 이래저래 경비가 많이 들어요. 가능한 한 무료 아니면 실비로 가자고 다짐했어요. 그것 때문에 선후배로부터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강사에게는 거의 강사료가 없어요. 십시일반 정신이죠. 아직 제자란 말 대신 ‘회원’이란 말을 더 선호한다.

“수강료 받고 가르쳐주는 게 쉽다는 걸 알았죠. 수강료 없이 가르치는 게 훨씬 어렵습니다. ‘공짜라서 부실하겠지’란 편견을 안 갖게 하려면 더 노력해야만 됩니다.”

둘째 실천은 다도와 관련된 다식과 차 제조에 대한 연구다. 25년간 전남 함양과 경남 하동 등지의 계약 공간에서 차를 만들어왔다. 이젠 집 근처에 차밭도 갖게 됐다. 그녀는 청차(靑茶)를 좋아한다. 이 차를 금빛이 감돌게 우렸을 때 가장 맛있단다. 10년 전부터 그녀는 자신만의 청차를 ‘진여금차(眞如金茶)’로 네이밍했다. 진여는 그녀의 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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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웰빙센터 강사 시절 한 분으로부터 큰 지적을 받는다.

“진여 선생님, 왜 예쁜 자태로만 있죠. 그 차로 사람의 목숨도 살릴 수 있는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차 관련 대체의학과 식물 공부를 하게 된다. 힐링푸드와 힐링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전통효소도 연구한다. 지금도 효소를 담글 때 댓잎을 활용한다.

다도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게 아니다. 차를 마신다는 건 모든 예술 장르와 공존하는 일이다. 다도는 종합문화예술의 결정체다. 차의 역사와 종류, 차의 물성과 행다 등을 익혀야 한다. 다기를 알려면 도자기를 알아야 하고 도자기를 알려면 수묵화의 세계까지 알아야 한다. 그걸 알려면 서예를 알아야 되고 그걸 알려면 한학도 접해야 한다. 한복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동서양 복식사에 대한 안목도 있어야 한다. 색을 알아야 하고 디자인을 알아야 한다. 예법도 알아야 하며 다식에 입문하려면 사찰·약선요리에 대한 감각도 익혀야 한다. 그 밖에 천과 실로 각종 생활소품 등을 만드는 규방공예까지 익혀야 한다. 10년 전부터 차먹을 만들어서 ‘명상도’를 그리고 있다. 보이차와 효소액을 침출시키고 난 앙금을 미세하게 갈아 끓여서 삼베로 짜내고 난 맑은 물을 졸이면 암갈색의 차먹이 된다. 하지만 개인전은 아직 언감생심.

연구원에는 커피가 없지만 그녀는 커피에 대해서도 아주 관대하다.

“커피는 사람의 기운을 올려주지만 차는 내려줍니다. 둘도 결국 나무에서 출발했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으니 배척할 필요는 없죠.”

언젠가부터 커피와 차를 블렌딩해 먹기도 한다. 찻물에 커피를 타면 커피 맛이 아주 순해진다. 차 한 잔에 커피 반 잔 정도 섞으면 딱 좋단다. 여행할 때마다 커피와 홍차를 같이 섞어 마시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차를 한 잔 마시면 신체가 더 활성화된다고 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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