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14] 경주를 달리다-경주박물관~ 황룡사지~경주문화엑스포~ 불국로 ~ 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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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1   |  발행일 2015-08-21 제40면   |  수정 2015-08-21

괘릉은 신라 다문화유적의 절정…‘뽀빠이 닮은’ 무인석상과 짧은 만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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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아저씨가 연상되는 괘릉의 무인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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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지에서 출토된 녹유 사천왕상.(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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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린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석조무인상을 바라보고 있다.(경주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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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릉 배후의 안온한 괘릉마을을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도니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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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시래둑길 남천을 건너는 어린이.



자전거를 갖고 경주에 와서 얻은 가슴에 닿는 말은 ‘신라’였다. 온 세상을 품고 싶었던 신라는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에서 나왔다. 신라라는 국호에 삼국통일의 대업을 품고 있어 놀랍다. 일찍이 신라문화 특유의 국제성과 진취성, 독창성에 주목한 사람은 실크로드학 사전을 펴낸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정수일 소장이었다. 그는 신라가 실크로드를 넘어 로마문화와 공유성을 갖고 있는 것과 로마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 그리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그 특징을 대별했다. 그 대표적 유물로는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수목형 금제 관식, 미추왕릉지구에서 발굴된 ‘미소짓는 상감옥’목걸이, 계림로 황금장식 보검, 천마총 출토 금제팔찌와 금반지 등을 들었다.

신라문화의 특질 중의 특질이라면 ‘생활정서나 환경에 걸맞게 변용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신라문화를 한층 아름답게 꽃피웠다’는 대목이다. 신라는 옛것과 새것을 융복합해 첨단화하는 문화창조의 허브였다. 석굴암 10대 제자상은 인도 아리아인의 고승상을 모형했다. 황룡사 금동석가삼존불상을 비롯해 황룡사 대탑, 영묘사·흥륜사·법림사 장육존상 등은 양식면에서 실크로드상의 불상과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 많은 유물들을 눈으로 확인해 보려면 국립 경주박물관에 텐트를 치고 보면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답을 얻을 것이다. 전통문화의 기반 위에서 북방 대륙문화와 남방 해양문화, 로마문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하여 융합시킨 하나의 ‘다원적 복합문화’를 일군 서라벌 신라는 동방의 이스탄불이고 로마요 사마라칸트였던 것이다.

다문화 인물과 관련해서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이 불세출의 조각가 양지 스님이다. 삼국유사 양지사석 조에는 스님을 ‘기예에 통달해 신묘함이 비길 데 없었으며 필찰(筆札)에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묘사 장륙삼존상과 사천왕상, 전탑 기와를 비롯해 사천왕사 탑의 팔부신중, 법림사 삼존불과 금강신, 연화문, 보상화문, 쌍조문, 녹유귀면와편, 사천왕상전 등이 스님의 작품들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불국사로 가는
갓길 없는 도로는 아찔했다

경주가 자전거 타기 좋다고
자전거길을 잘 닦았다는
칭찬으로 들으면 오산이다

관광수요의 창출 차원에서
제주도가 ‘올레길’이라면
경주는 ‘탈래길’로 맞불을

양지 스님은 미천한 신분이거나 백제인이었다는 설, 서역에 다녀온 신라인이거나 서역에서 온 외국인이라는 설로 삼분되어 있었는데, 최근 서강대 동아연구소의 강희정 박사가 남방도래인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제기해 논쟁의 불을 댕겼다. 그는 “양지 스님이 불렀다는 ‘풍요’는 염불이나 예경, 보시가 아니라 흙을 나르며 공덕을 쌓는다는 내용으로 상좌부 불교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양지스님의 남방도래 가능성은 틀을 이용한 조성 기법과 스님의 행적에 담긴 남방불교의 속성, 탑상전과 공헌판의 연관성 등을 기반으로 추론됐다”고 했다. 탁발, 곧 걸식수행과 공덕 쌓기는 동남아시아 ‘상좌부불교’의 특징이란 것. 핵심 요지는 “당시 당나라 정세를 살펴볼 때 양지 스님이 서역에서 당나라를 거쳐 신라로 들어왔을 가능성보다 동남아시아에서 해로를 통해 왔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서역인이든 남방도래인이든 양지스님은 도래 외국인으로 다문화인이었다. 양지 스님에 대한 해외 연구 사례가 궁금해진다.

사천왕사는 명랑법사가 당나라 대군을 물리치기 위해 창건했다는 절이다. 적의 공습을 앞두고 전쟁 중에도 불사를 하는데 공을 들이다니. 신라인의 그 알 듯 모를 듯한 정신세계를 후손인 우리는 알 수 없다. ‘래여래여 래여애반다라’가 나오는 신라향가 공덕가나 모죽지랑가, 찬기파랑가 등에서 조금 흠향할 수 있을 따름이다.

경주박물관에서 나와 원경으로 펼쳐지는 황룡사지를 바라보니 사진에서 본 몽골초원이 떠올랐다. 사라진 황룡사탑을 생각하니 “내 후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멸망할 것이다”라고 한 칭기즈칸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불태우고 싹쓸어버림으로써 하나의 유형을 만든 유목문화. 그래서 지금 폐허의 황룡사지는 몽골의 문화유산처럼 보였다. 유형의 불교문화에 무형의 노마드문화가 오버랩되는 캔버스다. 황룡사지는 우리 마음의 오아시스이고 영원한 서부처럼 남겨두는 게 시대정신에 맞지 않을까. 유형의 무엇을 만드는 것보다 무형의 추상을 창조하는 것이 덕업일신의 길이기 때문이다.

유적도 인파도 뚝 끊어진 황룡사지에서 보문관광단지로 가는 길은 분황사로에서 숲머리길로 이어지는 소로를 이용했다. 성골의 차를 타고 일두품의 속도로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강심장의 포토바이커도 쫄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진 못한다. 그냥 길 위에 멈춰서거나 주저앉는 게 상책이란 걸 본능적으로 배웠다.

한여름 보문들을 끼고 있는 숲머리길은 푹푹 쪘다. 자연이 내린 형벌 같은 불감당의 더위를 짊어지고 보문삼거리로 향해 가는데, 다가가려면 멀리 있는 경주 남산이 눈 안에 들어왔다. 내 비지땀은 알천으로 흘러들었다.

명활산성 아래로 순두부 간판이 대감댁처럼 포진해 있는 숲머리마을을 쭉 들어가니 음식숙박촌이다. 마을길을 지나 보문호반길을 타기 위해 보문삼거리로 향했다. 오직 산책하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이 좋은 길을 나는 밤 늦은 퇴근길에, 아침 출근길에 즐겨 이용한다. ‘보행자 전용 자전거 진입금지’에 개의치 않고 남의 길에서 도둑자전거를 탄다. 이 멋진 보문호반 자전거길을 보행자에게만 전유되게 해서야 될 일인가. 보문호반길 같은 자전거전용도로 코스를 갖고 있다면 모를까, 경주가 자전거 타기 좋다고 해서 자전거길 잘 닦았다는 칭찬으로 들으면 오산이다. 자전거길에 대한 투자는 경주의 문화관광 수요 창출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제주도가 올레길이면, 경주는 ‘탈래길’로 맞불을 놓아보면 어떨까. 전국이 경주스타일을 따라할지 모를 일이다.

천년고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경주는 ‘실크로드 경주 2015’ 개막 준비로 해가 뜨고 날이 샌다. 실크로드경주. 이 어울리지 않는 강도깨비 같은 디아스포라의 이름을 어떻게 이해해야 우리는 실크로드를 가까이 할 수 있을까.

국가와 민족 간 이동성 증대로 국제교류가 활발해지고 다문화 사회로 전환하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는, 기존의 단일민족과 순수혈통을 강조하는 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 문명교류에 입각한 다문화주의로 우리의 역사관을 판갈이할 필요가 있다. ‘실크로드 경주 2015’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역사관의 환골탈태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경상북도가 태생의 비밀을 찾아 원시반본하는 것 같아 드라마틱한 사건처럼 보인다. 경주와 경상북도가 김알지의 알을 다시 품은 것 같아 판타스틱하기도 하다.

실크로드는 로마와 중국 장안을 이어준 장삿길에서 ‘문명교류 통로’에 대한 범칭으로 확장되어 문명교류를 상징하게 되었다. 바닷길, 초원길, 사막길을 종횡무진 섭렵한 경상북도가 시대정신인 문명교류사관에 입각해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문화융성을 통해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실크로드 경주 2015는 실크로드의 문화를 경주문화엑스포 공원 안으로 끌어들여 문화난장을 차린 다문화축전이다. 21일 개막해 10월18일까지 두 달여간 열린다. 이 행사를 통해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경주라는 자기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인식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번지.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괘릉은 신라 다문화 유적의 꼭짓점에 해당된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불국사로 가는 갓길 없는 도로는 아찔했다. 신변 안전이 의심스러워 어쩔 수 없이 경감로 길에서 방향을 바꾸어 신라교 아래 강변 길을 이용했다. AV(사륜 오토바이)를 탄 젊은 남녀가 쌍쌍파티를 하는 장면이 보기 좋다. 길 따라 감포 방면으로 향하니 보불로삼거리가 나왔다. 보불로 주변으로 펜션들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장원식당과 섬돌집식당 간판 따라 하동1길로 들어가면 하동지를 만난다. 사람 사는 세상, 마을길은 최고의 포토바이킹로드. 하동지를 지나니 하동 큰마을펜션촌. 다시 마을길에서 보불로로 나오니 네이버 검색엔진에 1진처럼 등장하는 경주맛집들이 나타났다.

보불로와 불국로가 만나는 코오롱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다운힐하니 기품 있는 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였다. 구정교에서 남천으로 횡단해 신사천왕사 시래둑길을 따라가니 7번 국도와 만났다. 시래교를 건너자마자 역주행하는 자동차들 때문에 혼쭐이 났다. 어찌나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지 전진하고 싶은 의지가 꺾였다. 시래교에서 괘릉리까지는 1.7㎞. 괘릉리에 도착하니 충효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있어 괘릉으로 가지 않고 마을로 들어갔다. 소나무 군락과 벼논이 안온한 풍경을 자아내는 마을길을 돌아나가니 괘릉의 호위무사 뽀빠이 무인석상이 영업시간 끝났다고 퇴근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괘릉의 무인석은 늦어도 7세기 경부터는 서역인들이 신라 땅에 와서 살면서 무장이나 문관으로까지 기용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사실성이 투영된 증거물로 이해된다.

석양길 괘릉 라이딩. 날씨는 흐리고 해는 저물고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짧은 해후에 만족해야 했다. 아사달·아사녀가 있는 영지를 찾아나서니 해가 완전 바닥났다. 마동탑마을에 새로 생긴 동죽칼국수 전문 해솔방 주인이 들려주는 아사달·아사녀 이야기를 들으며 허기를 달랬다. 다시 해가 뜨고 날이 밝아 시간 많은 날에, 소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살아 있는 아사달·아사녀의 전설을 머금은 영지를 둘러보리라. 포토바이킹의 성지 경주를 살방살방 돌아다니니 길들이 가르쳐 주었다. 문명교류의 표상처럼 열려 있는 괘릉길 포토바이킹은 다문화 유산에 대한 산 공부였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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