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성의 북한일기] 김진경 총장은 북한 정부가 자신을 구속했던 지난일을 덮고 평양에 과학기술대학을 건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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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8   |  발행일 2015-08-28 제34면   |  수정 2015-08-28
[조문성의 북한일기] 김진경 총장은 북한 정부가 자신을 구속했던 지난일을 덮고 평양에 과학기술대학을 건립하기로 했다

◆2003년 3월28일, 맑음

1997년부터 나진·선봉시에 건립하려던 ‘나진과학기술대학’은 1998년 북한이 김진경 총장을 구속한 사건 외에도 99년 서순덕 교수, 이명숙 사장, 최룡호 부장을 구속함으로써 끝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세월이 흐른 뒤 북한의 고위공직자 원창준 참사가 연변과기대를 방문해 지난 일을 사과하고 나진에 건립하려다 이루지 못한 대학을 평양에 건설해줄 것을 부탁했다. 김 총장은 지난 일들을 사랑과 용서로 모두 덮고 그들의 청을 승낙했다.

평양에 가칭 ‘평양과학기술대학’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 일도 최룡호 부장이 총괄한다. 나진에서 벌어졌던 일이 전화위복이 된 것인가. 나진에 대학을 건립하는 것보다 평양에 대학을 건립하는 것이 더 값지고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에서 행하는 사업이니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 동포 최룡호가 적격자다. 한편으로 그를 앞세워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러 면에서 능력이 있는 최룡호다. 최 부장이 평양출입국 수속을 담당한다. 최 부장은 직책이 총장보좌관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한 것이다. 김 총장과 최 부장은 누가 봐도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최 부장이 평양을 다녀왔다. 4월10일경 평양과기대 건설요원들이 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평양과기대 건설팀에 나도 합류한다. 평양에서 나의 이력서를 받아본 그곳 보위부 직원이 대뜸 나를 알아보더라고 한다. ‘이 사람 나진에서 일한 사람이 아니냐’고 하더란다. 나진에서 못 다 펼친 일들을 평양에서 더 크게, 더 원대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껴본다.

◆2003년 4월2일, 맑음

평양에서 원창준 참사, 북조선 대외사업 이영기 단장, 동행한 김상일씨(보위부 소속)가 학교를 방문했다. 이영기 단장은 얼굴 인상이나 외모 차림새가 영락없는 한국의 멋진 신사풍이다. 그는 정보 책임자라는 추측도 있다. 앞으로 평양에 가서 일할 건설부 직원과 평양에서 오신 손님들과 점심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북한에서 오는 인사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오늘 이 자리가 너무나 뜻깊고 즐거운 자리는 것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사업에 동참한다는 기쁨과 자부심이 함께 한 우리 모두에게 넘쳐난다.

북한에서 즐겨 외치는 ‘가는 길 험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가 있다. 원 참사는 ‘가는 길 험해도 웃으며 우리 함께 가자’라고 말해 좌중의 박수를 받았다. 또 나를 보고는 “조 부장님은 우리 조국의 사정을 너무 잘 알기에 걱정이 없다”고 하면서 친근감을 표현한다. 현 북한 경제의 어려움을 숨기려 하지 않고 도리어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합심해 평양과기대 건설에 힘을 모으자고 한다. 참으로 남과 북의 아름다운 만남의 자리였다. 평양입국은 북한 4·15 태양절 이후 4월17일쯤으로 합의했다.

◆2003년 4월22일 화요일, 흐림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가 온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광둥성, 베이징, 홍콩, 캐나다, 중동, 미국, 싱가포르 등 세계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아직은 속수무책인 것 같다. 감기 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 것 외에는 병의 원인과 치료에 관한 대책이 없다. 병의 확산에 쉬쉬하며 입을 다물고 축소은폐에 급급하던 중국 정부도 그 실체를 밝히기 시작한다. 베이징 시장도 이 문제로 경질됐다. 중국 최대 휴가인 5·1절도 취소되었다. 집단 이동을 막기 위함이다. 이곳 지린성은 아직 안전지대인데 지린성 창춘에 환자가 1명 발생했다고 한다. 이리저리 평양행이 늦어지고 있다. 북한에서도 사스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전 연변과학기술대 건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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