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햇빛 아래로 나온 대구 남산교회‘광복의 종’을 아십니까?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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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8   |  발행일 2015-08-28 제38면   |  수정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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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대구남산교회에 다시 설치된 ‘광복의 종’(작은 사진). 현재의 종은 원래의 종을 1954년 매각하고 그해 새로 구입한 것이다. 72년까지 타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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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나무로 만든 남산교회 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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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설치된 남산교회 철주 종각과 종. 원 안 사진은 설립자 부르엔 선교사.



땅에 묻어 일제강점기 공출 피해
1945년부터 9년간 타종하다 교체
바뀐 종 예배당 간이종각에 보관
이달초 본당 정면 중심에 재설치

“땡그랑, 땡그랑” 1945년 8월19일 광복을 맞은 뒤 첫 일요일인 오전 11시, 대구부(府)에서 가장 높은 남산 언덕 위에서 감격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어떻게 교회에서 종을 울릴 수 있나.”

종소리를 들은 대구부민은 모두 의아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때 모든 자원이 전쟁물자로 강제징수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집에서 쓰던 놋그릇과 숟가락까지 철이란 철은 다 공출당한 상황에서 종이 울렸으니 말이다.

“남산교회는 1914년 미국인 선교사 브루엔(한국명 부해리)이 설립한 예배당입니다. 1919년 대구에서 3·8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이만집 목사, 김태련·백남채 장로 등이 모두 우리 교회 출신입니다. 30년 새 예배당을 신축하면서 이듬해 철주 종각을 새우고 종을 제작해 예배 전에 타종했습니다. 하지만 38년 일제가 황국신민화정책을 쓰면서 신사참배, 창씨개명 등 민족말살을 도모한 가운데 교회 타종금지령이 내려졌지요. 게다가 42년 11월엔 일본으로부터 종각을 해체하고 철주와 종을 헌납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이에 광복을 염원하며 원래 있던 종은 땅에 묻고, 값싼 헌 종을 구입해 매각대금으로 47원 27전을 줬어요.”

대구 남산교회 100년사 주필인 도충구 대구대 명예교수의 증언이다.

지하에 3년간 묻혔던 종은 광복이 돼 9년간 타종돼다 54년 9월 다른 교회로 팔렸다. 남산교회에서는 새 종을 구입해 72년까지 타종하다 차임벨로 대체하고, 그해 교회를 증축하면서 철주 종각을 벽돌종각으로 바꿨다. 새 종은 예배당 천장 위에 보관하다 간이종각을 만들어 예배당 안에 전시했다.

광복절을 앞둔 지난 9일, 남산교회(담임목사 지은생)는 간이종각에 보관됐던 ‘광복의 종’을 꺼내 본당 정면 중심에 설치하고 제막식을 했다. 이와 더불어 남산교회100년사 출간, 브루엔의 한국선교 40년 책 출간기념회도 열었다.

남산교회 ‘광복의 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구·경북지역 최초의 개신교회였던 제일교회에서 분리된 이 교회 출신 독립운동가가 20여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3·8독립만세운동 때 유일하게 순직했던 김용해(김태련 장남)를 비롯해 백남채·남규 형제, 이만집·성해 부자, 이덕생·장성희 부부, 강학봉, 박영조, 박인서, 박상동, 김용규, 김용기, 김태도·은도 형제, 곽재란, 한재복, 이우건, 박태현, 김봉충 등을 배출했다. 이들 가운데 뚜렷한 족적을 남긴 애국지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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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련·용해 부자=부자 모두 대구 남산동 출신이다. 김태련은 이만집, 백남채와 함께 대구만세운동을 주동했다. 큰장(옛 서문시장)에서 열린 집회 때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그는 2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신간회에 가입해 활동하다 31년 일본 교토로 건너가 교회를 설립해 3년간 한글과 성경을 가르치다 일경에 발각돼 강제출국 당했다. 그는 귀국 후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아들 용해는 만세운동 때 아버지가 달성군청(현 동성로)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것을 보고 일경에 저항하다 구타당해 실신했다. 고문의 여독으로 그해 3월29일 순국했다.

▲이만집·성해 부자=이만집 목사는 남산교회 3대 목사(1917)다. 대구지역 기독교계 자치운동의 선구자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과 밀접하게 교류하며 대구만세운동을 총지휘했다. 그 결과 3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피해 금강산으로 들어가 수양관을 세웠다. 기독교를 한국인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선각자로 알려진다. 그는 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아들 성해 역시 만세운동에 참여해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백남채·남규 형제=백남채는 만세운동 당시 계성학교 교사였다. 만세운동 주동으로 2년간 만기복역했다. 출옥 후 중국 베이징으로 가 벽돌공장을 하며 임시정부에 자금을 조달했다. 광복 후 입법위원, 제헌의원 등을 역임했다. 동생 남규는 연해주와 만주, 상하이 등지서 항일운동을 하다 1919년 임시정부 의정원 경상도 대표위원으로 선임돼 군자금 모금활동을 했다. 90년 애족장을 받았다.

▲이덕생·장성희 부부=이덕생은 ‘광복의 종’을 숨긴 주역인 이문주 목사의 아들이다. 이 목사는 37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그는 후일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하지만 그의 장남인 덕생은 대구만세운동에 참여했고 항일비밀결사조직인 혜성단에서도 활동했다. 21년 독립운동지 신한별보를 제작·배포하다 출판법 위반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 장성희와 결혼한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 가입했다.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그는 부친이 보내온 월 생활비 10원으로 밀가루 1포대만 구입하고 나머지는 군자금으로 쾌척하는 등 궁핍한 생활을 하다 39년 충칭에서 사망했다. 그는 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부인 장성희는 임시정부 애국부인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박영조 목사=남산교회 4대 목사다. 1919년 경주 도동리교회(현 경주제일교회) 목사로 재직 중 3월15일 경주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대구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한 후 남산교회로 와서 담임목사가 됐다. 그는 이만집 목사와 자치운동과 YMCA운동을 이끌었다. 95년 애족장이 추서됐다.

▲박인서 장로=1919년 영주·봉화 등지서 동지를 모아 영주시장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2년형을 선고받아 마포형무소에서 복역돼 수감 중 기독교인이 됐다. 23년 대구로 와서 기독교서적 판매업을 하다 45년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악질분자로 투옥돼 사형 직전까지 갔으나 광복을 맞아 출소했다.

▲김용규 목사=남산교회 8대 담임목사다. 1918년 광복회에 들어간 후 20년 임시정부 군자금을 조달하다 피체됐다. 25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선교사를 통해 미국의 헐 국무장관에게 일본의 학정을 폭로하고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도록 요청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렀으며 교회를 폐쇄하기까지 했다. 39년 대구고등성경학교 교장 재임 시 투옥돼 병보석으로 출감하는 등 37차례나 피검 또는 투옥됐다. 만년에 성로원을 경영하며 사회사업에도 힘썼다.

▲박상동 목사=남산교회 7대 목사다. 대구만세운동에 참여해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나고야 등지서 목회활동을 하며 41년 재일한국기독교 총회장을 역임했다. 43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다시 투옥돼 1년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강학봉 성도=1919년 대구만세운동 당시 만경관 인근에서 제화점을 경영하다 종업원 30여명을 이끌고 만세행렬의 선두에 섰다. 그해 5월 대구 복심법원에서 2년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 6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김은도 성도=대구복명학교를 졸업한 후 남산교회를 다녔다. 한국신학교 재학 중 항일정신을 고취시킨다는 설교사건으로 일경에 요주의 인물로 찍혀 여러 차례 투옥됐다. 감옥 안에서도 전도를 하다 45년 1월 인천형무소에서 순교했다.

▲박태현 전도사=계성학교 재학 중 남산교회에 다니다 대구만세운동에 가담해 대구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했다. 이후 연세대를 졸업하고 칠곡 군수 등을 역임하다 남산교회 전도사가 됐다. 92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곽재관 목사=1939년 일본 유학 중 ‘독서회’를 조직하고 41년 귀향해 대구사범학교 문학서클인 ‘반딧불’ 회원과 교류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해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다 42년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중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44년 재판장에 대들다 재수감됐다. 그해 7월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1년형이 확정돼 옥고를 치르다 풀려났다. 남산교회에서 집사를 하다 후일 목사가 됐다. 90년 애족장이 추서됐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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