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시리즈 통·나·무] 경북 7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송혜섭 경주 바른이치과 원장

  • 명민준 손동욱
  • |
  • 입력 2015-08-29   |  발행일 2015-08-29 제5면   |  수정 2015-08-29
“학생인 내게 ‘빵 사달라’던 노파의 절박한 눈빛 잊을 수 없었다”
20150829
지난 26일 송혜섭 경주 바른이치과 원장이 환자의 시술 전 치아와 교정 후 치아를 보여주며 미소짓고 있다. 그는 환자의 삐뚤어진 치아를 바로잡아주는 교정틀처럼,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의 인생에 버팀목이 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한강의 기적은 분명히 세상을 밝히고 있었지만, 여전히 길거리엔 넉넉한 사람보다 굶주린 이들이 더 많았던 1980년대의 어느 날이었다. 등굣길에 나선 한 소년 앞을 한 노파가 막아선 채 양손을 모으고 처량한 목소리로 도움을 구했다. “빵 좀 하나 사다 주이소….” 철부지 소년이 보기에도 노파의 배고픔은 절박했다. 소년은 한달음에 빵집으로 달려가 빵과 우유를 사서 노파에게 쥐여줬다. 치과교정 전문의로 성장한 송혜섭 경주 바른이치과 원장(50)의 뇌리에 남아있는 첫 기부다. 송 원장은 사회생활에 찌들고, 가장으로서 양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는 동안에도 수십 년 전 노파의 절박한 눈빛을 잊지 않고 있단다. 매달 조금씩이라도 이웃을 돕고 있는 그는 2012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7호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에 가입했다. 지난 26일 송 원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경주 바른이치과를 찾았다. 그는 기자의 치아구조를 보자마자 “수면 무호흡증이 있죠? 앞니로 음식도 잘 못 끊으실 거고, 시옷 발음도 잘 안되시죠? 아, 미안합니다, 기자님. 제 직업병이 나왔네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의 밝은 미소 속에 담긴 인생살이와 기부철학이 한층 더 궁금해졌다.

◆ 기부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기부를 왜 하냐고요? 저한테는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거창하게 소개할 만한 스토리도 없고요.”

기부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첫 질문에 송 원장이 꺼낸 대답이다. 기자가 당황해하자 그는 “사실, 나도 나름대로 단점도 있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남들을 치료하면서 돈을 버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게 돌아오는 만큼 자연스레 기부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중보건의 때부터 본격 기부
적은 월급 떼어 늘 주위 도와
2007년 공동모금회 통해 나눔

“도움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소년소녀가장·노인 지정기탁


송 원장의 본격적인 기부는 20여년 전 그가 공중보건의로 일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 입대를 대신해 청도에서 공중보건의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던 시절이다. 하루 종일 진료를 해도 그에게 떨어지는 것은 쥐꼬리만 한 월급이었다. 그래도 그는 월급 중 일부를 떼어 내 주위의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송 원장은 “사실 그때 여유가 없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왜 그렇게 기부를 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지금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보고 도움을 줬던 거 같다. 아마도, 환자 환부를 치료하는 것처럼 어려운 부분을 메워 주는 게 습관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시절 그는 환자의 마음까지 치료할 줄 아는 의사였던 것이다.

◆ 배부른 자에게는 고문, 목마른 자에게는 보약

기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도, 거창한 스토리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송 원장이지만 ‘기부 철학’만큼은 뚜렷했다.

송 원장은 “물은 배부른 자에게는 고문이지만, 목마른 자에게는 보약이다. 기부는 정말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줘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기부철학을 바탕으로 2007년부터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에 매달 30만원씩 기부를 시작했다.

2009년부터는 기부금을 올려 현재까지 매달 80만원씩 기탁하고 있다.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은 송 원장의 이 같은 따뜻한 마음에 주목했고, 2012년 그에게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권유했다. 그간의 기부금과 앞으로의 기부금이 누적되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 기준(1억원 기부)에 부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북의 7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송 원장은 특별한 기부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지정기탁’이 그것이다.

지정기탁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제27조 1항에 따라, 기부자가 기부금품의 배분 지역·대상자 또는 사용용도를 지정해 기부할 수 있는 방식이다.

송 원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에 기부금을 기탁하기 전에도 몇몇 단체에 기부금을 내놓았지만, 투명하게 집행되지 않는 것 같아서 찜찜했다. 내 기부금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과 절박한 사람에게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 원장은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에 매달 기부금을 지역의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주문한 상태다.

그는 “치과 치료를 하다 보면 학생환자들이 굉장히 많이 찾아온다. 그 아이들을 통해서 수익금이 나오는데, 혜택도 당연히 그들을 위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소년소녀 가장을 돕고 있다”며 “독거노인들도 딱해서 함께 지정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송 원장은 요즘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지정기탁을 권유하고 있다. 그는 “정말로 목이 마른 이웃들에게 보약과 같은 도움을 줄 줄 아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되겠느냐. 이 기사를 보고도 많은 이들이 기부에 동참해줬으면 한다”고 웃음지었다.

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