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베트남전쟁은…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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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9   |  발행일 2015-08-29 제16면   |  수정 201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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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파병된 장병들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고향에 편지를 쓰는 모습. <푸른역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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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함께 나란히 사진 찍은 파월병사의 모습. 동맹군으로서 당시 한국군과 미군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푸른역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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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베트남 다낭 청룡부대 1진 철수 환송식. 베트남 현지 배에 걸린 ‘원수 김일성아! 청룡이 왔다. 20일 전쟁? 웃기지 마라’라는 플래카드가 눈길을 끈다. <푸른역사 제공>

2013년 6월, 베트남의 팜티호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남았던 할머니는 “과거의 원한은 내가 다 안고 갈 거야. 그러니 나 없어도 한국 친구들이 찾아오면 잘 대해 줘.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제 그만 미워하라고 해. 그 불쌍한 것들….”이라고 유언을 남겼다.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는 서로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우선 두 국가 모두에서 유사한 반공국가가 출현한 점이 닮았다. 반대로 한국은 상대적인 안정을 구가하면서 현재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한 반면, 남 베트남은 몰락했다는 것이 서로 다르다. 두 국가가 닮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역사의 궤적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세계정세·계급 및 인종관계·이데올로기 등 주로 거시역사적 측면에서 서로 처한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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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의 한국사회사//윤충로 지음/ 푸른역사/ 402쪽/ 2만5천원

저자는 20여년 동안 한국과 베트남에 대해서 묵묵히 연구해오고 있다. 1945년 이후 한국과 베트남의 국가형성사를 주제로 한 박사학위논문을 다듬어 ‘베트남과 한국의 반공독재국가형성사’를 펴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2007년 제2회 김진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파월장병·기술자·위문대학생부터
한국군에 피해 입은 베트남인까지
55명의 참전자들과 구술면담 통해
생생한 전쟁경험 요소요소에 배치



이번에 나온 ‘베트남전쟁의 한국사회사’는 베트남전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든 작은 의문이 모티브가 됐다. 국제관계, 즉 정치·경제·사회적인 다양한 측면에서 전쟁을 논의하면서도 정작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저자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 베트남전쟁을 경험한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로 했으며, 평범한 사람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베트남전쟁을 구술사 형식으로 정리해 이 책을 내놓았다.

책에 등장하는 구술자들은 파월장병, 파월기술자, 대학생위문단, 파월장병 교육장교, 한국군에 피해를 당한 베트남인 등으로 다양하다. 베트남전쟁 동안 연인원 32만명가량의 장병이 파월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55명의 참전자와 구술면담을 했으며, 그들의 전쟁경험과 기억을 책의 요소요소에 실어놓았다.

면담을 성사시키고, 책으로 엮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면담 기획 과정에서 거절당하기도 했고, 구술 허락을 받고 집까지 찾아간 상황에서 구술자의 심경 변화로 발길을 돌린 적도 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구술자들을 찾는 것이었다. 참전군인은 조직체계가 갖춰져 있어 상대적으로 쉽게 접촉할 수 있었지만, 파월기술자와 같은 비군인의 경우 찾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한 이들의 이야기는 사뭇 관심을 끈다. 구술자들의 이야기는 상이한 전쟁 경험과 다면적인 삶의 경로를 보여준다. 특히 한진상사 파월기술자들의 이야기는 1970년대 초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칼빌딩 방화사건의 원인과 진행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 베트남전쟁은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베트남전쟁 파병 당시에 갑작스럽게 타오른 월남 붐과는 반대로 한국군 철수 이후 한국에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식어갔다. 의도적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종전과 더불어 베트남전쟁은 한국인의 기억에서 빠르게 사라졌고, 베트남은 한국의 반공체제 수호를 위한 반면교사로 남았을 뿐이다.

한국에서 다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논란이 벌어지면서부터다. 이와 같은 주장에 참전군인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가 아닌 한국 시민사회 내부에서 첨예한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과거 베트남 전선에서의 전쟁이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 한국 내부에서 기억의 전쟁으로 재현됐다.

저자는 “베트남전쟁은 6·25전쟁 이후 한국이 경험한 가장 큰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주변부전쟁으로 남아있다. 참전자와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것”이라며 “전쟁에 대한 우리 안의 신화를 해체하고 전쟁 피해자의 고통을 직시하고 성찰할 때 한국의 베트남전쟁은 현실이 아니라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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