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시기·스토리·배급의 힘…1000만 관객을 불러모으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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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31 08:37  |  수정 2015-08-31 09:55  |  발행일 2015-08-31 제24면
‘암살’‘베테랑’ 등으로 본 천만 영화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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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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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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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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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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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최단기간 쌍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지난 15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암살’(7월22일 개봉)에 이어 2주 시차로 개봉한 ‘베테랑’(8월5일)이 지난 29일 ‘천만 영화 클럽’ 입성에 성공했다. 한국영화로는 13번째, 외화까지 포함하면 17번째 천만 영화의 탄생이다. 국내 인구가 5천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인들은 “천만 영화는 관객이 점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도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천만 영화를 위한 필요충분 조건도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천만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요건들은 분명 존재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를 참고해 천만의 조건을 살펴봤다.


방학·명절 등 성수기에 개봉해야 유리
기획력·완성도 높을 땐 SNS서 입소문
개봉 첫주 기선제압…2주차에 판가름

◆암살과 베테랑, 쌍천만 돌파

‘베테랑’의 천만 관객 돌파 속도는 ‘암살’과 타이 기록이다. ‘암살’과 ‘베테랑’은 개봉 첫날 각각 47만명(영진위 통합전산망)과 41만명을 모으며 예사롭지 않은 오프닝 스코어로 출발했다. 이는 역대 여름 극장가 천만 영화 ‘괴물’(39만명)과 ‘해운대’(17만명) 등을 뛰어넘는 수치다. ‘암살’은 개봉 1주 후 ‘미션 임파서블5’가 함께 시장에 진입했다. 이후 쌍끌이 흥행세를 보이며 ‘암살’은 쉽게 700만 고지를 밟았고, ‘미션 임파서블5’ 역시 개봉 1주 만에 300만 관객을 확보했다. 즉, ‘암살’은 1천만 영화 공식에 따라 러닝메이트라 할 수 있는 ‘미션 임파서블5’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보다 쉽게 1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것이다. 반면, 2주 후 개봉한 ‘베테랑’은 ‘암살’과 쌍끌이 흥행이라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독자적 노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는 올 여름시장 관객 패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CGV 리서치센터 조사에 의하면 7월29일부터 8월17일의 극성수기 동안 서로 다른 영화를 관람한 횟수가 작년 1.8회에서 올해 2.0회로 전년 동기대비 10%나 증가했다. 극성수기간 2편 이상 영화를 관람한 관객 비중도 작년 25.8%에서 올해 29.9%로 전년 동기대비 4.1% 포인트 상승했다. 즉, 1~2편에 몰렸던 여느 극성수기와 달리 다양한 작품을 골라 관람하는 패턴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목할 건 ‘암살’을 포함한 대부분 천만 영화들의 라이트 유저(Light User, 연간 1~2회 관람) 비중이 10%를 넘어서는데 비해, ‘베테랑’의 라이트 유저 비중은 10% 이하였다는 점. 결국 흥행세가 계속되면 앞으로 영화를 잘 보지 않는 관객층이 ‘베테랑’을 좀 더 보러 나올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한 달간(7월19일~8월19일) CGV 리서치센터에서 조사한 천만 키워드 SNS 분석에 따르면, 이미 관객들은 ‘암살’과 ‘베테랑’에 대한 기대치가 컸다. 천만 영화로 가장 많이 언급된 작품 역시 ‘암살’과 ‘베테랑’이었다.

CGV 리서치센터 이승원 팀장은 “올해 상반기 외화들의 강세로 침체된 한국영화 시장이 ‘암살’과 ‘베테랑’을 기점으로 흐름이 바뀌었다”며 “하반기에도 기대작이 많은 만큼 한국영화 강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흥행 패턴에 변화

영화관계자들은 천만 영화가 갑자기 쏟아지는 이유를 영화의 기획력과 높은 완성도에서 찾는다. 하지만 스크린 수와 관객이 늘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지난해 인구 1인당 평균 관람횟수는 4.25회. 초기 천만 영화인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때만 해도 천만 영화로 태어나기 위해선 장시간에 걸친 일련의 과정이 필요했다. 즉, 언론을 통해 민족이나 애국심 코드를 자극하거나 한국영화 천만 만들기에 동참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청하는 식이다. 이같은 경우 보통 500만, 600만명 돌파 소식을 듣고 중·장년 관객이 극장으로 나오면서 후반부 관객 몰이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천만 영화로 판을 키우려면 느리게 반응하는 중·장년층의 관객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가 영화 마케팅의 관건이 되고 있다.

◆천만의 요건들

그렇다면 천만 영화를 가능케 만드는 요건은 뭘까. 우선 개봉 시기를 들 수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 그리고 명절(설날, 추석) 같은 성수기 시즌이 중요하다. 영화 관객 2억명 시대를 연 2013년의 경우, 일년 중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가장 많은 달은 8월로 2천906만명이었다. 그 다음 장사가 잘 된 12월, 1월, 2월은 2천만명을 조금 넘었다.

8월 여름시장을 노려 탄생한 천만 영화는 ‘괴물’ ‘도둑들’ ‘해운대’ ‘명량’, 그리고 ‘암살’과 ‘베테랑’ 등 6편이다. ‘변호인’ ‘겨울왕국’ 등 겨울시장(12월, 1월)에서 재미를 본 작품 역시 6편이다. 배급사들이 각자의 텐트폴(흥행 가능성이 큰) 영화를 여름과 겨울시장에 집중시킨 것은 배급사들의 기대가 그만큼 큰 시기라는 방증이다. 반면 3월이나 10월 같은 비수기에는 관객이 1천300만 명 수준으로 현저히 떨어졌고, 이 시기에 개봉한 천만 영화 역시 한 편도 없었다.

천만 영화와 스크린 수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스크린 수는 곧 배급의 힘을 의미하고, 천만영화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꼭 천만 흥행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만한 흥행력이나 작품성이 되지 않는 영화는 극장에서 바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최근 대부분의 천만 영화가 스크린 수를 1천개 이상 잡으면서 독과점 논란에 시달리고 있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경우처럼 1천개 이상의 스크린을 잡고도 500만 관객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영화관계자들은 천만 영화의 징후가 대략 2주차에서 판가름 난다고 말한다. 흔히 영화계에서 말하는 ‘개싸라기’(시간이 지나도 관객이 줄지 않고 더 늘어나는 현상)를 예의 주시하는 이유다. 또 작품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과 관객 동원력이 가장 클 수밖에 없는 개봉 첫 주에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는 것도 정설로 통한다. 늦어도 3주 안에는 500만명을 돌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녀노소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한다. 폭넓은 타깃층을 지닌 영화가 아무래도 흥행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속의 감정은 굉장히 보편적이고 쉬워야 하며, 감동이 있더라도 무겁고 센 것보다는 뭔가 유머러스한 것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그 좋은 예다. 이처럼 영화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나설 때 더 많은 관객이 영화와 만나는 경험을 넓히게 되고, 시장은 좀더 확대될 수 있다. 천만 영화 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 역대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순위
순위 영화명 개봉일 누적관객수
1 명량 2014. 07. 30 17,611,849명
2 국제시장 2014. 12. 17 14,257,163명
3 괴물 2006. 07. 27 13,019,740명
4 도둑들 2012. 07. 25 12,983,330명
5 7번방의 선물 2013. 01. 23 12,811,206명
6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09. 13 12,319,542명
7 왕의 남자 2005. 12. 29 12,302,831명
8 암살 2015. 07. 22 12,057,056명
9 태극기 휘날리며 2004. 02. 05 11,746,135명
10 해운대 2009. 07. 22 11,453,338명
 <영진위 통합전산망 8월29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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