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日 열패·상실감 담긴 ‘노구치 발언’을 넘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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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02   |  발행일 2015-09-02 제4면   |  수정 2015-09-02
[특별기고] 日 열패·상실감 담긴 ‘노구치 발언’을 넘어서 가자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엊그제 노구치 히로유키 산케이신문 기자의 칼럼은 도를 넘었다. 글에는 한국에 대한 미움과 경멸이 넘친다.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한 데서는 음습한 살기도 느껴진다. 역사에 대한 무지와 왜곡도 심각하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도왔지만, 한국의 잘못된 선택으로 일본은 늘 대재난에 봉착했다고 한다. 한국은 나라 전체가 비정상인데, 그런 사실도 못 느낀다고 한다. 사대주의는 한국 역사의 DNA며,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 아닌가. 그렇다. 잊을 만하면 지겹게 반복되는 망언이다.

명성황후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그 죽음에 분노하지 않는 한국인은 없다. 을미사변은 일본제국이 일개 야쿠자 집단과 다름없는 범죄 집단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이 살인자들은 궁궐 한복판에 난입하여 한 나라의 국모를 칼로 난자하고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로 태웠다. 조금이나마 양식 있는 일본인이라면 스스로 꺼내기도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더더욱 이웃나라 대통령을 이런 비운의 명성황후에 비유한 저의는 섬뜩하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다. 하지만 이런 무지하고 난폭한 주장이 유수한 언론에 실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말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는가.일본 스스로에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치 중에서도 외교만큼 지혜가 필요한 분야는 없다. 우리도 덩달아 화를 내기보다 침착해야 한다. 그래야 현명하고 성숙한 나라가 된다.

일본은 왜 이처럼 한국에 화가 나있을까? 사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 20여 년간 장기불황의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었다. 그 사이 한국은 일본의 뒤를 바짝 추격했다. 중국은 세계 슈퍼 파워로 성장했다. 일본인들의 열패감과 상실감이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몇 년간 일본의 아픈 곳을 계속 공격하며 조금도 용서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여섯 번이나 만났지만, 아베 총리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만나지 않았다. 한·일FTA는 지난 10년간 지지부진이지만, 한·중FTA는 벌써 체결되었다.

일본 외무성은 올해 초 ‘한국과 기본적 가치 공유’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한국과 같이 갈 수 없다는 심각한 선언이다. 아베 총리는 “중국은 터무니없는 나라지만 이성적인 외교가 가능하고, 한국은 그냥 어리석은 나라”라고 말했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내 생각만 강요할 수 없고, 받을 게 있으면 줄 것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외교의 기본원칙이다. 한·일간에는 역사와 독도영유권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만 집착하면 다른 국익이 손상된다. 한·일 양국은 광복 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공유해왔다. 이게 두 나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양국의 갈등은 두 나라 모두에 큰 손실이라는 뜻이다. 외교에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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