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산 자인 계정숲 한장군의 묘와 사당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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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25   |  발행일 2015-09-25 제39면   |  수정 2015-09-25
숲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진실로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햇살같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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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모시는 한장군의 묘. 계정숲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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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숲 산책로 옆에 서있는 한장군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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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숲에 있는 한장군의 사당 진충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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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군 오누이와 여원화 상. 자인면 초입 상징공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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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숲 앞의 삼정지. 중앙의 작은 섬이 한장군 말의 묘라고 전해진다.

아직은 갈맷빛으로 울창한 숲이다. 뜨거움이 가신 햇볕과 서둘러 떨어진 잎들이 가을을 마중하는 고른 한낮. 잠풍 그늘 좋은 숲 속에는 잠 든 이들이 몇 있다. 낚시 의자에 앉아 도도하게 눈 감은 여인도 있고, 라디오를 켜 놓고 모로 누워 등걸잠 든 아저씨도 있다. 그리고 내리붓는 햇살을 고스란히 맞으며 스스로의 고요함으로 정적을 깨는 어떤 잠도 있다. 옛 사람 한장군(韓將軍), 현대의 사람들이 가려 고른 이 숲속에 고적하니 잠들어 있다.


누이와 함께 왜구 유인 격퇴 전설
계정숲에 한장군의 묘

1968년 자인중·고등학교 신축 때
두개골이 든 석실묘 발견
한장군 실묘로 확신하고 숲에 모셔

숲 앞 도로 너머 삼정지 중앙의 섬
한장군의 말 무덤 전설

◆ 자인의 수호신 한장군


경산 자인면의 주산인 도천산(到天山)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 끝에 계정숲이 있다. 옛날 계정(桂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해서 계정숲이라는데, 분명하지는 않다. 평지에 가까운 구릉에 이팝나무,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는 자연숲이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숲에는 군데군데 이끼 앉은 좁장한 산책로가 길게 굽이져 있다.

계정숲 표석을 지나쳐 숲으로 들어서면 새벽처럼 맑은 그늘진 오르막길이 잠시. 천천히 빛이 열리며 봉긋하게 솟은 봉분이 햇귀마냥 떠오른다. 잔디가 곱게도 덮여 있다. 묘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 석인까지 갖춰져 있다. 자인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온 한장군의 묘다.

한장군은 신라 혹은 고려 때 사람이라 전해진다. 당시 도천산 일대에는 왜구들이 숨어 살았는데 자주 출몰하여 고을 사람들을 괴롭혔다 한다. 이에 한장군은 여장을 하고 그의 누이와 함께 커다란 꽃관(화관)을 쓰고는 산 아래 버들못 가에서 춤을 춘다. 그들 주위에는 광대들이 놀이를 벌이고 구경꾼이 모여들어 흥을 돋운다. 숨어있던 왜구들이 신명으로 섞여들자 춤추던 한장군은 때를 노려 칼을 빼어든다. 광대들과 구경꾼들의 손에도 비수가 번쩍였다. 한장군은 못 가의 바위에서 왜구들을 참수시켰다. 한장군과 누이가 왜구를 유인하기 위해 춘 춤을 여원무(女圓舞), 그들을 참수시킨 바위를 참왜석 혹은 검흔석이라 부른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자인 사람들은 진실로 믿는다. 한장군은 이름도 모르고 자취도 없이 다만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전해져 온 존재였다. 그러나 1968년 자인중·고등학교의 본관 신축 공사를 위해 땅을 파헤쳤을 때 두개골이 든 석실묘가 발견되었고, 사람들은 이를 한장군의 실묘라 확정했다. 이듬해 5월 한장군은 이곳 계정숲에 모셔졌다. 부러 가려 다진 듯한 양지의 터에.

한장군의 묘 옆에는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진충사(盡忠祠)가 있다. 이외에도 경산 곳곳에 한당이 자리하는데 계정숲의 사당이 한장군의 사당, 나머지는 누이의 사당이라 한다. 사람들은 매년 단오절에 제사를 모신 뒤 여원무와 광대놀이, 무당굿, 씨름, 그네타기 등을 하며 사나흘을 즐겼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자인단오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사당은 강압적으로 훼철되었고, 제의와 놀이도 중단되었다.

광복과 함께 자인단오제는 부활되었다. 그러나 곧 재정 문제로 중단되고 만다. 본격적인 복원은 1969년부터다. 그리고 1970년 ‘한장군 놀이’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국무총리상을 받으면서 그 형태가 다듬어졌다. 현재 한장군 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어 있고 매년 단옷날을 전후해 3일간 열리는 고유한 민속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 상징공원과 말무덤

계정숲 표석 맞은편에 계정숲 버스 정류장이 있다. 그 곁 도로를 따라 길고 좁은 녹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자인을 상징하는 세 가지 조형물이 서 있다. ‘한장군 오누이와 여원화 상’, 노동요인 ‘계정들소리’, 동제 때 한묘 앞에서 행하던 가면 무극인 ‘자인팔광대’가 그것이다. 한장군과 그의 누이가 여원무를 출 때 썼다는 화관은 높이가 3m에 달했고, 그 관을 쓰고 온 몸을 오색치마로 가린 그들은 마치 꽃귀신처럼 보였다 한다. 동상의 한장군과 누이는 갑옷을 입고 칼을 들고 있다. 그들 사이에 화관이 우뚝하다. 정교한 꽃들로 수놓인 화관이 불꽃처럼 보인다.

계정숲 앞 919번 도로 너머에는 삼정지(三政池)가 펼쳐져 있다. 새못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제방을 사이에 두고 저수지가 양면으로 나뉘어져 있는 특이한 못이다. 물 위의 절반이 연잎이다. 몇 송이 연꽃도 피었다. 제방에는 몇 그루 버드나무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고 저수지 기스락에는 낚시꾼이 숨어 앉았다. 그 가운데 물 위로 솟은 작은 섬 하나가 있다. 아랫도리를 석축으로 감싼 기이한 섬이다. 저곳이 한장군의 말 무덤이라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삼정지를 말못이라고도 한다. 어쩌다 한장군의 말은 못 가운데에 묻혔나.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저 잠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잡풀이 멋대로 자란 봉분에 은성한 빛만 가득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25번 국도를 타고 경산시청 쪽으로 간 뒤 919번 도로로 자인 용성쪽으로 간다. 자인면 표지석 왼쪽에 계정숲, 오른쪽에 말못이 있는 삼정지가 펼쳐져 있다. 자인중고등학교에서 발굴된 갑옷, 투구와 같은 유물들은 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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