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외식상권 이야기 - (1) 동성로 옛 호프골목

  • 이춘호
  • |
  • 입력 2015-09-25   |  발행일 2015-09-25 제42면   |  수정 2015-10-26
호프집 모두 사라진 ‘호프골목’에 ‘하얀 토끼’가 나타나 생기가 돈다
20150925
미즈컨테이너와 서가앤쿡이 공동투자해 론칭한 일본 가정식 전문 캐주얼레스토랑인 ‘토끼정’의 등장으로 각종 청소년 겨냥 각종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호프골목 전경.

식당이란 ‘럭비볼’이다. 지옥으로 튈지 천국으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 군침을 흘린다. 사업 구상을 할 때는 항상 대박이다. 창업 컨설턴트는 대박 비법이랍시고 가르쳐주지만 막상 그런 그가 식당을 차리면 대부분 망한다. 개업하는 날부터 도처에 ‘복병(伏兵)’이다. 복병과 이리저리 싸우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안목이 생긴다. 그게 실력이다. 능력은 용기와 맞물려 있다. 물론 실력은 시행착오의 지원사격을 받아야 형성된다. 대다수 한두 번 망한다. 내공이 약하면 사업이 자기 체질이 아니라면서 그 바닥을 떠난다. 성공한 브랜드는 다 이유가 있다. 시시각각 돌변하는 소비자의 욕구와 세상의 흐름을 ‘즉시타 방식’으로 반영시켰기 때문이다. 스타 브랜드는 새로운 걸 창조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볼 수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한 대목을 집요하게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게 사업가 기질이다. 초기 성공은 그 자체가 ‘함정’일 수 있다. 대박보다 더 어려운 건 ‘대박관리’. 10억·100억·1천억·1조원대별 전략은 판이하다. 그걸 알려주는 책도 컨설턴트도 없다고 믿는 게 현명하다. 성공한 자의 얘기는 모두 자기 얘기일 뿐이다.

요즘 식당 창업이 핫 이슈다. 청년백수와 정년 맞은 장년층이 너도나도 식당 창업에 목을 맨다. 이들은 꼭 매년 악어 떼가 우글거리는 탄자니아 마라강을 건너는 ‘누’ 같다. 어떤 식당이 승리할까.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지역 프랜차이즈 전문가, 상권 분석 전문가 등의 도움을 받아 대구 외식 상권의 어제와 오늘을 진단해 본다. 현재 대구 외식업계를 쥐락펴락하는 대박 식당의 탄생 비화, 그 메뉴로 인해 형성된 새로운 상권에 얽힌 푸드스토리다.

◆ 동성로에 나타난 토끼 한 마리

20150925
토끼정.
20150925
토끼정의 주메뉴인 돼지고기구이인 돈데키(왼쪽)와 크림카레우동.

지난 21일 밤 대구 중구 동성로 2길 옛 호프골목. 1990년대 이 골목에는 호프집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이 골목을 끝까지 사수했던 ‘불칸호프’가 매각처분됐다. 그 자리에 생뚱맞은 상호의 식당 하나가 출몰했다. 바로 일본 가정식 전문 레스토랑인 ‘토끼정(亭)’. 웬 토끼? 그 맞은편에 ‘미즈컨테이너’란 캐주얼 레스토랑이 있다. 지역 외식 상권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식당의 출현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토끼정은 두 명의 소유주에 의해 움직인다. 한 명은 미즈컨테이너 이창희 대표, 다른 한 명은 서가앤쿡 돌풍을 일으킨 <주>에스앤에스컴퍼니 이성민 대표다. 둘이 공동투자를 해서 만든 식당이다. 둘은 틈새를 파고든, 나름의 입지를 다진 프랜차이즈 캐주얼 레스토랑 개척자다.


일본 가정식 레스토랑 ‘토끼정’
크림카레우동 입소문
돈데키·쇠고기찌개 등도 눈길

캐주얼 레스토랑 ‘미즈컨테이너’
파격 실내 인테리어와 주문방식
종업원도 모두 남성
단번에 대구 외식업계 별 등극


토끼정이라는 이름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가져왔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자주 이용하는 단골집의 이름이 바로 토끼정이다. 소설 속 한 구절을 읽어보자.

‘토끼정 주인은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나이는 사십대 중반 정도에 다부진 체격, 그리 무뚝뚝하진 않지만 말이 없고, 고집스럽지만 억지 강요는 하지 않는 바람직한 성격이다. 토끼정에서는 언제나 주인 혼자서 일한다. 그 혼자 식자재를 반입하고 요리를 하고 차를 끓인다. 그가 일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척척 매끄럽고 언제든 허둥대는 느낌이 없다.’

토끼처럼 주조 톤이 하얗다. 이젠 너무 흔해빠진 에폭시투성이 노출콘크리트조에서 살짝 벗어나 화이트톤 타일 등을 앞세워 일본 인테리어풍을 연출했다. 수제 요거트에 연두부를 섞어놓은 것 같은 ‘크림카레우동’(1만1천원)이 입소문을 탄다. 이 밖에 돈데키(돼지고기구이), 일본식 쇠고기찌개와 카레나베 등도 눈길을 끈다.

두 소유주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역 외식업계 거장이 있다. 현재 호텔인터불고 엑스코점 구본건 사장(63)이다. 젊은 날 그는 둘처럼 붕붕 날아다녔다. 구 사장은 79년 중식당 만리장성 맞은편에서 칭기즈칸 요리 전문 ‘한일회관’을 꾸려간다. 83년 동성로 한 골목에서 가마솥밥 전문 ‘골목집식당’으로 출발해 40여 년간 지역에서 새로운 외식문화를 선도했다. 86년 동성로에서 한강 이남 첫 한식 뷔페로 불리는 ‘패밀리뷔페’, 92년 두류타워에 비빔밥 전문 레스토랑인 ‘한가람’, 93년에는 앞산순환도로변에 지역 첫 죽뷔페 레스토랑인 ‘마이하우스’, 이어 두류공원 내에서 퐁듀 전문 레스토랑인 ‘포켓마크’, 95년에는 홈플러스 칠성점에서 돈가스 전문점, 홈플러스 칠곡점에서는 샐러드바, 이어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 식품부에 반찬 전문 코너까지 꾸려갔다. 올해 외식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호텔 사장으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 미즈컨테이너 이야기

20150925
토끼정 맞은편에는 공사장 버전의 실내인테리어의 신지평을 연 미즈컨테이너가 있다.

미즈컨테이너는 파격적 실내 인테리어와 주문방식 등으로 단번에 ‘외식업계의 별’로 등극했다.

다들 서울에서 내려온 줄 알지만 ‘대구발’이다. 직접 카운터로 가서 주문하면 진동벨 대신에 번호가 적힌 공사장용 안전모가 주어진다. 또 웨이터가 서빙하면서 하이파이브를 외치며 손님과 손을 마주치는 것도 미즈컨테이너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 처음에는 떠먹는 피자, 파스타 샐러드 등 색다른 메뉴와 주문 방식 등을 생소하게 느꼈던 고객들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이후에는 하나의 문화로 정착한다. 익숙해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기존에 없던 산업디자인을 접목해 남성들만의 공간을 여성에게 보여줌으로써 호기심을 유발시켰다. 종업원이 모두 남자인 것도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했기 때문이다. 식당에 자리 잡고 있는 공구 등의 다양한 이색 디자인 소품은 전부 이 대표가 마련했다. 고물상과 벼룩시장, 외국 여행 등에서 직접 발품을 팔아 구한 보물 같은 골동품이다. 그는 동국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요식업을 했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을 숨길 수 없었다. 결국 대학교 4학년 때 카페를 열면서 요식업계에 입문했다. 이후 누나가 대구대에서 운영하던 패스트푸드점을 이어받아 미즈컨테이너로 탈바꿈시켰다. 모두 직영 시스템이다. 무분별한 프랜차이즈화 행보를 밟지 않으면서 음식과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있다. 미즈컨테이너가 큰 인기를 끌자 메뉴와 분위기를 비슷하게 따라한 업체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원조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현재는 전부 없어진 상태.

◆ 서가앤쿡 푸드스토리

30대 초반의 이성민 대표. 그는 영남대 경영학과와 경북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말수가 적고 침착한 캐릭터는 아버지 영향이 큰 것 같다. 그는 기존 레스토랑이 너무 무겁고 비싸고 번거로운 요소가 많아 분식집 같은 캐주얼 레스토랑을 꿈꾸었다. 현재 토끼정을 비롯해 대구 7개, 서울·경기 30개 등 전국에 80여 개의 가맹점을 둔 ‘서가앤쿡’, 올해 동구 신천동에 론칭한 ‘소싯적 청춘을 요리하다’를 꾸려가고 있다. 올해 문을 연 대구MBC 네거리 근처에 있는 소싯적은 점심때 줄을 서야 한다.

서가앤쿡은 ‘원플레이트 푸짐 마케팅’을 적중시켰다.

밥그릇 대신 접시를 사용했다. 한 접시에 2인분 양의 음식을 풍성하게 낸다. 마치 IMF 외환위기 직후 들안길에 등장해 대박을 낸 해물 칼국수의 명가 ‘봉창이’의 3인분 같은 2인분용 세라믹 용기를 연상시킨다. 끝선 정렬을 잘 한 추억의 계란 프라이는 모든 메뉴에 고명처럼 올라간다.

수성구 범어네거리에 처음 선보인 서가앤쿡은 2006년 오픈했다. 이들의 성장 뒤에는 정확한 고객 니즈 파악과 메뉴의 연결이 있다. ‘목살한상’과 ‘폭립한상’이라는 이름의 이 세트 메뉴는 서가앤쿡의 대표 메뉴인 목살스테이크와 신메뉴 폭립스테이크를 기반으로 피자나 파스타를 추가로 주문하여 소수의 인원이 왔을 때도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했다. R&D실을 통해 매주 2~3회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시연회를 하면서 고객불만을 해결한다.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SNS를 통한 즉각적인 소통이다. 페이스북 홈페이지(www.facebook.com/seogaandcook)를 통해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이를 즉각적으로 신메뉴에 반영한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