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산 자인면 북사리 제석사와 삼성현역사문화공원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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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2   |  발행일 2015-10-02 제38면   |  수정 2015-10-02
‘민중불교의 길‘ 원효의 마음인 듯 정갈한 절집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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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사 대문간 너머에는 머리 숙여 들어오라는 듯 물푸레나무가 누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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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산제석사. 원효대사가 태어난 곳에 세웠던 사라사의 후신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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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대웅보전, 중앙이 원효성사전, 오른쪽은 대문채 지붕 아래에 자라고 있는 물푸레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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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사 삼성각. 늙은 회화나무와 작은 밤나무, 원효성사탄생지유허비 등이 함께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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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역사문화공원 앞에 펼쳐져 있는 자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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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역사문화공원 내의 역사문화관. 원효, 설총, 일연에 대한 국내외 자료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집들은 나직하고 골목은 환하다. 몇몇 빈집들의 휑한 마당에서 쓸쓸한 자취들이 풍겨나오기는 하지만, 길 모퉁이에 펼쳐놓은 고추나 마당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널린 빨래들에서 가난하고 정갈한 살림들도 본다. 이러한 골목 속에 제석사가 자리한다. 기와를 얹은 흙돌담으로 에워싸인 절집은 화려한 단청이나 벽화, 대문에 그려진 인왕상이 아니라면 반갓집으로 보였을 것이다.

원효가 지었다는 사라사 자리에
4백여년 전 다시 지은 절 제석사
대문간에 들어서면
한그루 물푸레나무가
앞길을 용틀임하듯 막고 누웠다

남산면 인흥리의 넓은 구릉에는
경산출신 三聖賢 모신 역사공원

◆ 원효의 탄생지, 제석사

경산의 자인면 북사리. 계정숲의 북쪽, 도천산의 느슨한 자락에 자리한 마을이다. 옛날에는 불지촌(佛地村)이라 했고 그 북쪽에는 밤나무가 무성한 골짜기가 있었다 한다. 신라 진평왕 39년인 617년, 한 만삭의 여인이 밤나무골을 지나다 산기가 일어 해산을 하게 된다. 밤나무에 남편의 옷을 걸고 누워 아기를 낳는데, 오색의 구름이 온 땅을 덮었다 한다. 그 아이가 원효대사다. 원효가 태어난 그 밤나무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 때 사방에 있었던 나무의 이름을 따 사라수(娑羅樹)라 했고 그 열매는 사라율(娑羅栗)이라 했는데, 밤 한 톨이 그릇에 가득 찰 만큼 컸다고 한다.

원효의 아명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으로,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뛰어났다고 전한다. 그의 출가 후 사라수 곁에 사라사(裟羅寺)가 세워진다. 632년경이라 한다. 이후 사라사의 운명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400여 년 전 한 농부가 밭을 갈다 불상과 탑신을 발견해 그 자리에 절을 지었는데 그것이 현재의 제석사(帝釋寺)다. 사람들은 발견된 석조 연화무늬 좌대와 부서진 탑신 등이 신라 후대의 것으로 보이는 점, 지금도 제석사 근처를 밤나무골이라 부르는 점 등을 들어 제석사를 사라사의 후신으로 추정한다.

제석사는 지금 북사리 마을의 한가운데 민가들과 나란히 자리한다. 밤나무 성했던 골짜기의 모습은 찾을 길 없지만 천천히 하강하는 지세에서 산자락을 느낀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담장 가운데 절집 대문이 높다. 대문간의 상인방에 ‘도천산제석사’ 현판이 걸려 있다. 문 양쪽에는 요사와 다실이 이어 붙어 있다. 대문간 그늘에 서면 굵은 나무 한 그루가 앞길을 막고 누워 있다. 물푸레나무라 한다. 무성한 잎이 드리워져 고개를 숙여야만 경내로 오를 수 있다. 문간채 지붕 아래에서 용틀임하듯 굽이진 나무는 하나의 관문처럼 자리한다.

허리 굽혀 올라선 경내는 작지만 정갈하게 펼쳐져 있다. 정면에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왼쪽에 삼성각, 오른쪽에 원효성사전이 위치한다. 원효성사전에는 원효성사상과 그의 일생을 그린 원효보살팔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제석사는 1625년 유찬스님이 짓고 1910년 월파대사가 중창, 1933년 만호스님이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절은 쇠락해 빈터만 남았다가 1962년에 대웅전과 칠성각을 지었다 한다. 2001년에는 칠성각을 삼성각으로 중수하고 대웅전을 중창해 대웅보전이라 했다. 대웅보전 어간문의 화려한 사천왕상과 현판에 새겨져 있는 우리나라 지도가 특이하다. 제석사는 작은 절집이지만 조각들과 다양한 색채로 가득 차 있다. 탱화와 벽화들, 수미단과 문 조각들의 채색은 선명하면서도 은은해 작업자의 수고와 감각이 엿보인다.

삼성각 앞에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거듭했던 이 절집의 내력 같은 모습이다. 그 앞에는 원효성사탄생지유허비와 제석사중수기념비, 헌답공덕비가 나란하다. 담벼락 곁에는 작은 밤나무 한 그루가 곧게 서 있다. 초록의 밤송이가 생글거리며 매달려 있다. 이 나무는 밤나무골 사라수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원효라는 이름은 불교를 처음으로 빛나게 했다는 의미라 한다. 당시 사람들은 향언으로 원효를 일러 새벽이라 했다 전해진다. 원효의 아들인 설총은 동방 18현이자 신라 10현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던 대유학자로 이두문자를 집대성한 이다. 그로부터 600여 년 뒤, 고려 충렬왕 때의 국존(國尊)이었던 일연선사는 삼국유사를 통해 현대의 우리에게 원효와 설총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원효, 설총, 일연은 모두 경산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이 세 분을 경산시는 삼성현(三聖賢)이라 한다.

지난 4월, 자인면의 남서쪽에 위치한 남산면 인흥리에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이 문을 열었다. 공원은 아름다운 자라지와 포도밭, 대추밭으로 둘러싸인 넓은 구릉지에 들어서 있다.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세 분 성현의 관련 자료들을 모아 전시해놓은 문화관을 중심으로 삼성현 이야기 정원, 분수광장, 야외 공연장, 어린이 놀이터, 피크닉장, 다목적 운동공간, 미로원,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산책 나온 어르신들, 아이들과 엄마들,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여럿이다. 전망대인 팔각정에서는 낮은 음악소리와 두런두런한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고 야외 공연장에는 중년의 사내들이 둘러앉아 있다. 아직은 전체적으로 휑한 느낌이지만 어린 나무들은 생각보다 빨리 무성해질 것이다. 분수광장에 물줄기가 솟구치자 어린아이가 까르르 대며 달려간다. 원효는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무애(無碍)라 했다. 가없는 하늘로 향하는 분수를 쫓아 달리는 아이의 몸짓이 무애였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산 시청에서 919번 도로를 타고 자인, 용성 방향으로 가다 상대온천 쪽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이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문화관 입장료는 어른 2천원, 청소년과 군인 1천500원, 어린이 1천원이다. 제석사는 자인면사무소 뒤쪽에 위치하며 면사무소 옆길로 올라가거나 경북기계금속고등학교 앞 골목길로 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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