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대니 콜린스·더 로프트: 비밀의 방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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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2   |  발행일 2015-10-02 제42면   |  수정 2015-10-02

대니 콜린스

자신의 정체성 찾으려는 초로의 성공한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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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성공할 거다. 엄청난 갑부에 무지 유명해지고 여자도 들러붙겠지.” 1971년, 신인가수로 주목받기 시작한 젊은 대니 콜린스(알 파치노)를 인터뷰하던 음악 잡지 차임 매거진의 가이들 로치는 그의 성공을 확언한다. 그로부터 43년이 흐른 2014년 12월, 대니는 기자의 말대로 대저택에 전용비행기, 그리고 40살 연하의 약혼녀까지 있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늘 허허롭다.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지만 성공과 부유함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해치게 되는 건 아닐지 무섭다고 말했던 과거 인터뷰처럼 대니는 스스로를 진짜배기 뮤지션이 아닌 예전 히트곡에나 기대는 어릿광대라고 생각한다.

‘대니 콜린스’는 슈퍼스타가 된 대니 콜린스가 65세 생일을 맞이한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니는 이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레퍼토리의 공연도, 열렬한 아줌마 팬도, 화끈한 파티도 지루하고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런 그가 오랜 친구이자 매니저인 프랭크(크리스토퍼 플러머)로부터 특별한 생일 선물을 받는다. 존 레논이 40년 전 자신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에는 “예술성은 부자가 되고 유명해진다고 바뀌거나 변질되지는 않는다. 너 하기에 달렸다”는 그의 애정 어린 충고가 담겨 있다. 게다가 편지 말미에는 “같이 얘기를 하고 싶다”며 전화번호까지 적어 놓았다.


존 레논이 스티브 틸스턴에
실제로 보낸 편지가 모티브
대니 콜린스役에 알 파치노


바로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영국 뮤지션 스티브 틸스턴의 실제 사연이다. 존 레논은 스티브 틸스턴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난 후 음악에 대한 고민이 많은 그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써서 잡지사로 보냈다. 하지만 존 레논의 편지는 바로 그에게 전달되지 않은 채 34년간 사라졌고, 2005년 미국의 한 수집가에 의해 40년 만에 공개됐다. ‘대니 콜린스’는 존 레논의 편지를 접한 대니의 이후 여정에 주목한다. 슈퍼스타가 아닌, 정체성을 찾으려는 초로 음악인의 느릿하지만 의미있는 행보다.

30년간 곡 하나를 쓰지 않았던 대니는 편지를 계기로 음악에 몰두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 여기엔 술과 마약, 무분별한 여성 편력을 일삼던 과거 삶에 대한 반성과 복기의 시간도 포함된다. 대니는 허울뿐인 월드투어를 취소하고, 자신만의 여정을 새롭게 짠다. 그리고 가장 먼저, 소원했던 아들을 만나기로 한다. 어린 시절을 엄마와 힘겹게 보낸 아들 톰(바비 카나베일)은 대니에 대한 원망이 크다. 아들 집 근처 조그마한 호텔에 머문 대니는 “그래도 가족을 포기하면 안 된다”며 코치하는 호텔 매니저 메리(아네트 베닝)와 교감을 이루며 아들과의 관계회복에 힘쓴다.

일과 사랑, 가족에 방점이 찍힌 ‘대니 콜린스’가 견지하고 있는 정서는 시종 따뜻하다. 알 파치노는 그 중심에서 인정 많고 유머러스한 대니 콜린스를 완벽히 표현해냈다. 50년 연기인생 처음으로 가수 역할을 맡았지만 평소 “록스타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던 그는 극중 L.A. 그릭 시어터에 운집한 6천명의 관객과 함께 인상적인 즉흥 공연을 펼쳤다. 이 장면은 록밴드 시카고의 콘서트 현장에서 휴식시간을 빌려 실제로 촬영했다. 알 파치노의 관록의 연기와 존 레논의 주옥같은 명곡이 제대로 어우러진, 그야말로 가을에 딱 어울리는 영화다.(장르:드라마 등급:15세 관람가)


더 로프트: 비밀의 방

다섯 남자가 공유한 ‘비밀의 방’에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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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있는 건축가인 빈센트(칼 어번)는 절친인 루크(웬트워스 밀러), 크리스(제임스 마스던), 마티(에릭 스톤스트릿), 필립(마티아스 쇼에나에츠)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자신이 지은 건물 꼭대기에 비밀스러운 공간(로프트)을 마련했으니 비용을 분담해 함께 공유하자는 것. 이제 막 결혼한 필립까지 다섯 명 모두는 가정이 있다. 하지만 “남자의 본능을 위해 괜찮은 투자”라는 말에 공감한 친구들은 빈센트로부터 열쇠를 건네받고 밀회를 즐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로프트의 침대에서 나체로 죽어있는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들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서로을 의심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과 관계를 맺은 여자들이 등장하고, 부인들 역시 남편들의 행동을 의심하게 되면서 점차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더 로프트:비밀의 방’은 한 여자의 죽음과 관련된 다섯 남자의 치정을 다룬 스릴러다. 벨기에산 원작 ‘로프트’(2008)에 이어 네덜란드 출신의 앙트와네트 베우머 감독에 의해 2011년 리메이크 되었고, 이번에는 원작 감독인 에릭 반 루이가 할리우드로 넘어가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세 번에 걸쳐 리메이크 된 만큼 새로울 건 없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정과 섬세한 심리묘사는 결과를 알고 보더라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한 여자의 죽음과 관련된
다섯 남자의 치정 스릴러


영화는 뭇 남성들의 판타지를 이룰 수 있는 공간인 로프트를 무대로 치밀한 두뇌게임을 펼쳐간다. 이 과정은 충분히 자극적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각각 인물의 심리묘사가 기발한 콘셉트와 맞물려 시종 팽팽하게 유지되는 스릴러적 긴장감은 제법 맛깔스럽다. 이들에게 로프트는 방해받지 않고 원하는 건 뭐든 즐길 수 있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물론 다섯 친구는 이 공간을 자신의 성적욕망을 충족시키는 곳으로 이용한다. 정신과 의사인 크리스는 시의원의 개인비서 앤(레이첼 테일러)과 뜨거운 관계를 유지하고, 빈센트는 술집에서 만난 사라(이사벨 루카스)와, 신혼인 필립 역시 또 다른 여성과 밀회를 즐긴다.

‘더 로프트:비밀의 방’은 이처럼 남자들의 수컷본능으로 질퍽거린다. 부인 몰래 수없이 외도를 하고 급기야는 다섯 친구의 부인과 여동생까지 서로 얽히며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마치 우정과 사랑, 배신과 질투가 낳은 욕망의 퍼즐게임을 보는 듯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은밀한 비밀까지 공유했지만 한 여자의 죽음으로 인해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치부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이들 관계는 엇나가기 시작한다. 동시에 스릴러로서의 본격적인 재미도 발동된다. 섹스코드가 강했던 초반의 분위기와 달리, 여자를 죽인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사건의 진실에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관계의 끔찍한 현실이 바로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다.

공간적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은 이야기와 구성은 촘촘한 편이다. 범인을 밝혀가는 과정에선 각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감정까지 보태져 충분한 긴장감도 형성된다. 미장센 구성과 감각적인 화면 연출, 그리고 심리묘사가 뛰어난 에릭 반 루이 감독의 존재감이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스릴러 영화의 본질이 가능한 한 관객을 서스펜스 안에 잡아두고 싶은 것이라고 본다면, ‘더 로프트:비밀의 방’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장르:스릴러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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