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아이의 질문에 정성껏 답했던 전화안내원 ‘오리’가 주는 교훈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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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5 07:59  |  수정 2015-10-05 07:59  |  발행일 2015-10-05 제18면
배려와 친절은 받아 본 사람이 더 잘 나눠줄 수 있죠
20151005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뭐든 경험한 것을 실천하기가 쉬워
어른이 아이에게 먼저 베풀어야

 

‘이해의 선물’로 널리 알려진 작가 폴 빌라드의 다른 작품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아이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등장인물별로 역할을 정하여 대본처럼 읽었는데, 아이들은 자기 역할에 맞게 감정이입을 잘하였습니다. 책을 읽어가는 도중에 “어머, 귀여워” “아이고나, 어떻게 이런 말을…” “에고고, 감동적이야”라는 추임새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습니다. 소설에 깊이 몰입했다는 증거겠지요. 아이들은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마치 연극을 보듯이 장면 하나하나에 깊이 빠져들었고, 깊은 감동을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저도 모르게 뱉아내는 감탄사가 그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먼저 ‘안내를 부탁합니다’의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주인공인 내가 일곱 살 꼬마였을 때에는 지금처럼 전화를 자동으로 거는 것이 아니라, 전화안내원이 직접 연결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이웃집에 볼일을 보러 가서 집에 안 계신 날이었습니다. 나는 지하 작업대에서 놀다가 망치에 손가락을 찧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쿡쿡 쑤시는 손가락을 빨면서 헤매다가 전화통을 발견하고, 전화통에 대고 아픔을 호소합니다. 전화기의 기능을 모르고 그저 아픔을 털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전화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전화 안내원과의 첫만남이었습니다. 그때 안내원이 가르쳐준 대로 냉장고의 얼음을 꺼내 통증을 식힌 후부터 무슨 일만 생기면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불러 도움을 청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위치, 오리노코 강, 철자법, 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것, 다람쥐에게 주는 먹이 등에 대해 물었습니다. 어느 날 가족이 애지중지하던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몹시 슬퍼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숱한 위로에도 슬픔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화안내원의 ‘죽어서도 노래 부를 수 있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라는 말을 듣고는 거짓말처럼 슬픔이 사라지고 위로를 받습니다. 그렇게 일이 생길 때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에게 전화를 걸면서 둘 사이에는 믿음과 이해가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시애틀에서 보스턴으로 이사를 하여 ‘안내를 부탁합니다’와 헤어지게 됩니다. 새 전화기를 보고는 옛 전화기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오히려 배신감과 공포를 느낄 정도로 전화기에 대한 남다른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지냈습니다.

대학 입학 전 어느 날, 누나의 집에서 무심코 전화기를 들었다가 낯익은 목소리를 만나게 됩니다. 세월을 훌쩍 지나도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너무나 반갑고 놀라워 오히려 긴장할 정도였습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이해는 시간을 건너뛰게 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처음 만나 대화를 하면서 전화안내원의 인자함과 배려심에 놀랍니다. 원래 전화안내원의 이름은 샐리 존슨였으나, 알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의 전화 질문에 대답해주기 위해 책을 사 모으게 되었습니다. 사제가 인간의 물음에 대답을 하듯, 나의 질문에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보고 ‘오리’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내가 수없이 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지리·자연·동물 등에 관한 책을 사고, 질문할 때마다 상세하게 대답해 주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리’에게 아이가 없어서 나를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다시 시애틀로 돌아와서 전화를 했을 때 샐리의 죽음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오리’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해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위로해 준 그 말을 메모로 남겨놓습니다. ‘오리’의 마음을 알고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긴 여운을 남기며 이야기를 맺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간의 받았던 이해와 배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보았습니다. 아플 때 밤늦도록 간호해주는 어머니, 아침마다 사과를 깎아주는 아버지, 성적 때문에 낙심할 때 등을 두드려주시던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 추울 텐데 이불을 걷어찬다고 걱정하며 포근히 이불을 덮어주는 할머니, 속상할 때 함께 울어주는 친구, 등교시간에 급할 때 잠시 멈춰주는 버스 기사, 비오는 날 자기보다 집이 멀다며 우산을 빌려주는 친구, 배가 아파 끙끙거릴 때 보건실까지 데려다 주는 선생님 등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의 가슴 한켠에 웅크리고 있던 따뜻한 이야기가 실타래의 실처럼 줄줄 풀어졌습니다.

그러면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배려와 사랑을 많이 받아보는 게 좋다는 결론을 냅니다. 맞습니다. 무엇이든지 경험한 것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이들끼리 서로 마음을 열고 돕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감동은 풀꽃처럼 나지막한 곳에서 피어납니다. 지금 뿌리고 싶은 배려의 씨앗은 무엇인가요?

원미옥<포산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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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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