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인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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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7   |  발행일 2015-10-07 제31면   |  수정 2015-10-07
[박재일 칼럼]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인가

영화 ‘사도(思悼)’는 굉장히 슬프다. 이준익 감독은 권력의 속성적 비극을 피차 숙명적 콤플렉스를 가진 아버지(영조)와 아들(사도세자)의 심리적 대치 국면으로 묘사했다.

고대신화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인간사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열등감의 대상이다.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다. 아비는 늙을 수 밖에 없고, 종종 젊고 장성한 아들에게 힘의 굴욕을 당한다.

하물며 거기에 권력, 그것도 지존(至尊)의 왕권이 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절대권력이 매개되지 않았다면 영조와 사도의 갈등은 ‘뒤주 속 죽임’이란 비극으로 끝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 속 영조는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라 집안일’이라고 했지만, 그 비극적 상황은 여느 집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조가 아들 사도 세자를 향해 “너 자체가 역모다”라고 질책한 것은 바로 왕권을 매개로 한 사건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들 사도 또한 아버지를 닮아 자유롭고 싶지만, 그럴수 없다. 세자란 직위는 이미 예약된 왕권이다. 그는 영화 속 장면처럼 자유롭게 허공으로 날아가는 화살이 될 수가 없다.

절대권력은 비극을 잉태하기 쉽다. 그래서 문명화된 국가에서는 권력을 나눈다. 절대 왕권을 사법·입법·행정부로 분리하고, 서로 견제케 하는 장치를 고안했다. 그것도 모자라 현대 국가에서는 권력을 보다 세분화한다. 정당권력을 여·야당으로 나누고, 정치권력에 대항한 기업에 자본주의 경제권력을 인정했다. 오죽하면 권력은 시장(경제)에 넘어갔다고 하겠는가.

사회의 여러 단체에도 센 권력은 아닐지라도 권력이 균점된다. 우리는 종종 시민단체의 저항에 나라 정책이 흔들리고, 바뀌는 것을 목도한다. 공무원노조나 전교조에 정부는 무력할 때가 있다. 각종 압력단체도 생겼다. 의사회·한의사회의 충돌에 행정부는 정책결정의 늪에 빠진다. 그것은 권력을 나눈 결과이기도 하다.

바로 다원주의(多元主義) 사회다. 절대권력이, 왕권이 균점될 때보다 문명화된 사회란 점을 깨닫게된 탓이다.

영조가 사도를 놓고 대리청정, 섭정(攝政)을 실험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영조는 사도의 현명한 결정에 “왕은 결정하지 않는다. 신하의 결정을 윤허할 뿐이고, 책임을 신하에게 맡긴다”고 비토한다. 애초에 왕권은 나눈 권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도 권력을 나누면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부자(父子) 사이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 권력이다’며 21세기 한국을 왕조시대의 그것으로 돌리려는 발상을 한다. 권력을 한쪽으로 몰지 않으면 마치 당장 죽을 듯이 사생결단이다.

하고 많은 일들 중에 왜 청와대가, 왜 집권여당의 대표가, 왜 제1야당의 대표가 여전히 권력을 나눌 수 없다는 듯 살벌한 정치 투쟁을 펼치는가. 전략공천을 놓고, 무슨 안심전화를 놓고, 청와대 참모와 집권당 계파가 반박에 반박을 거듭한다. 왕조시대에 나올 법한 (공천)학살이란 용어마저 횡행한다.

급기야 한쪽은 “오늘까지만 참는다”고 했고, 다른 한쪽은 “조심하라. 그렇게 하면 당이 어려위진다”고 했다. 오늘 내가 양보하면, 내일 처분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팽히 대치한다.

야당도 예외가 아니라고 스스로 외친다. 친노(親盧)와 비노(非盧)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듯한 발언들을 쏟아낸다. 당권 장악에 손을 떼라고 쌍방 공격이 그치지 않는다.

다들 권력을 나눌 수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권력을 나누는 것을 곧장 죽는 것으로 여긴다.

나눌 수 없기에 권력은 오로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됐다. 이래서는 한국정치가 나아갈 수가 없다.

권력은 수단이 되어야 한다. 정책 투쟁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권력이 손아귀에 넣을 쟁취의 대상으로만 남는다면 비극만 잉태된다. 국민만 피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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