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힘, 지역신문 .1] 위기를 기회로

  •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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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8   |  발행일 2015-10-08 제13면   |  수정 2015-10-08
수도권 독식 ‘기울어진 대한민국’…지역언론 없인 지역발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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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수도권 일극(一極)주의’에 매몰되면서 이른바 서울지역에서 발행되는 중앙언론과 지역언론 간에는 극심한 인식의 격차가 노정된다. 박근혜정부 들어 영남권 신공항 재추진이 결정되자, 수도권 언론은 사업의 타당성에 딴죽을 걸며 신공항 무용론을 펼쳤다(왼쪽). 2011년 이명박정부 당시 영남권 신공항 건설 프로젝트가 부각된 가운데 영남일보가 보도한 신공항 관련 기사의 제목들. 지역의 입장에서 신공항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이슈화했다(오른쪽).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의 대한민국. 하지만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무색할 만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대부분의 역량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서울공화국의 단상은 언론에서도 나타난다. 이른바 서울에 본사를 둔 서울지역 언론사들이 여론을 과점하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의 체력 저하는 지역언론의 활력도와 궤를 같이한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나아가 언론계 전반은 뉴미디어의 등장 속에 정체성 확립이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면 지역신문에 희망은 없는 것일까. 다원화된 민주 국가에서는 지역의 건전성이 곧 국가의 힘이다. 또 그 지역의 건전성은 지역언론의 역할에서 시작된다. 창간 70주년을 맞은 영남일보는 지역신문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적 모델을 찾는 연재를 기획했다. 지역의 저널리즘이 없이는 지역의 발전도 없기 때문이다. 국내 지역언론은 물론 독일·프랑스 등 해외 지역언론을 직접 찾아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움직임을 조명했다.

◆ 위기의 지방, 위기의 대한민국

‘외국인 투자 수도권 집중’ ‘SOC(사회간접자본) 대규모 사업 수도권 집중’ ‘억대 연봉자 수도권 집중’ ‘문화시설 수도권 집중’

한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수도권 집중’으로 검색한 결과 중 일부를 나열한 내용이다. 잠시만 살펴봐도 모든 분야에 걸쳐 수도권으로의 집중이 이뤄지고 있는 세태를 확인할 수 있다. 오죽하면 지방은 ‘서울공화국’의 식민지라는 표현까지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겠는가.


미디어환경 급변 종이신문 위기
매출 급감 등 지역신문에 직격탄
포털도 지역뉴스 홀대하며 甲질

여론 독점 중앙지는 지방에 횡포
걸핏하면 지자체 비판 열 올리고
지방분권에 나쁜 인식 심어줘…
남부권 신공항 무산시킨 사례도

투자·교육·일자리·문화·정보 등
‘수도권 집중’ 비정상의 정상화는
지역신문 살리는 길에서 찾아야


하지만 수도권 집중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고 방치하기에는 나머지 지역의 쇠락이 너무 심각한 실정이다. 인구만 살펴봐도 대구 인구는 2014년 4월을 기준으로 250만명이 붕괴됐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40년까지 대구 인구는 25만명이나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심각한 점은 최근 10년간 대구 순유출자의 절반 이상인 53%가 20대 청년층이라는 것이다.

안권욱 고신대 교수는 “중앙정부는 국민세금으로 수도권에만 끊임없이 투자해 서울 좋은 일만 시키고 있다”며 “대표적으로 유명 대학이나 병원은 서울에만 집중돼 있고, 이로 인해 지역민은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중앙집권의 피해를 입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지역의 위기를 넘어 대한민국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창용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는 “수도권으로의 집중에 따른 지방의 공동화는 결국 대한민국의 경쟁력 저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 위기의 지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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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지방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지역신문은 어떨까. 비슷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지방자치제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는 여전히 중앙정부에 종속된 상황이고, 지역경제의 침체와 더불어 종이신문의 영향력까지 급감하고 있다. 실제 대부분의 지역신문에서 해당 신문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유가부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한국ABC협회가 올해 1월 발표한 유가부수 현황에 따르면, 지역신문 중 유가부수 10만부를 넘어서는 곳은 부산일보가 유일하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인한 후유증이 크지만 한때 유가부수 20만부를 넘어서는 등 지역 최대의 신문이었던 영남일보 역시 예전의 위상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매출액 역시 제자리걸음이다. 올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주요 10개 지역일간지 2014년 매출액’은 전년대비 2.86% 증가에 그쳤다. 영남권의 경우에도 영남일보만 7.21% 증가했을 뿐, 부산일보 0.09%, 매일신문 2.43%, 국제신문 0.37% 증가에 머물렀다.

미디어환경의 변화도 지방신문의 쇠퇴에 직격탄이 됐다. 현재 전 세계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종이신문의 영향력 감소다. 세계적인 언론사인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가디언’ 등은 종이신문의 발행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의 경우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빠르게 종이신문이 위축 중이고, 그중 지역신문이 가장 큰 희생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언론재단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 신문 구독률은 20% 초반대에 불과하다. 종이신문의 위기가 한창 거론됐던 2006년에도 40.0%였는데 그 절반 정도까지 급락한 것.

이는 포털사이트가 무료로 뉴스를 제공하는 대한민국의 특이한 언론환경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횡포에 가까운 포털사이트의 차별을 받고 있는 지역신문의 경우 더욱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경우 지역신문의 기사는 뉴스메인에 배치하지 않는다. 지역신문이 단독보도를 해도 해당 뉴스를 따라서 쓴 통신사나 수도권신문의 기사가 메인에 배치된다.

자연스레 대부분의 국민이 뉴스를 소비하는 포털사이트에서 배제된 지역신문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지역을 무시하는 관성이 포털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 지역을 무시한다는 것은 곧 지역, 즉 비수도권의 이익을 무시한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백승대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지역의 위상감소와 경기침체 속에 지역 언론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면서도 “그래도 지역 저널리즘은 지역의 발전에 필수적인 만큼 내부적인 노력과 정부의 지원 등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그래도 지역신문은 필요하다”

지난달 23일 대구에서 열린 ‘제1회 수요분권포럼’의 강연자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참가했다. 그는 강연 중에 “중앙언론들이 지역 지자체의 행사를 두고 예산낭비라는 기사를 항상 쓰는데, 그런 기사를 보면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며 “지자체들보다 중앙정부의 예산낭비가 훨씬 심각한데도 중앙언론들은 지자체만 비판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국민들에게 지자체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고, 이로 인해 지방자치와 지방분권도 힘들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소위 수도권중심론자로 불리기도 하던 김 전 도지사까지 중앙언론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신문이 중앙의 이익만을 철저히 대변한 대표적 사례는 이명박정부 시절 벌어진 ‘남부권 신공항’ 프로젝트다. 남부권 신공항과 관련한 수도권신문의 보도행태는 여론 호도에 가까웠다. 수도권 신문들은 남부권 신공항을 기존의 지방공항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신공항 무용론’과 ‘김해공항 증축론’을 들고 나왔다. 이용자가 없어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공항이 왜 더 필요하냐는 논리였고, 결국 정부는 남부권 신공항 추진을 중단했다. 지역을 대변해 남부권 신공항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 지역신문들의 보도를 희석시킨 결과였다.

상당수의 언론학자들은 남부권 신공항과 관련해 “중앙지를 자처하지만 사실은 ‘수도권 지역신문’에 가까운 중앙지가 여론을 독점함에 따라 벌어진 일”이며 “중앙지라 불리는 대다수의 언론들은 지방에 관한 뉴스를 거의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지방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신문들의 위상이 높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수도권신문의 경우 본사에 수백 명의 기자를 두면서도 지역에는 광역단체당 평균 1명 정도의 주재기자만 배치할 뿐이다. 지역의 여론을 반영하려야 반영할 수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해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만약에 중앙지가 지역의 입장을 공정하게 대변해 주고 지역의 어젠다를 제기해 준다면 모르겠지만,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지역공동체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라도 지역신문의 육성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우석기자 cws092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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